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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도서관탐방기

백반맛집 갈마도서관에 가다

by 소형



어제 올리는 걸 잊어버린 정신 ㅠ 뒤늦게 올립니다.

예전에 도서관 백반이 3000원이던 시절 썼던 글입니다. 독특한 느낌이었던 도서관 체험이네요.


백반기행

내가 집 근처 노은 도서관을 가지 않고 굳이 갈마 도서관을 찾아가는 이유가 있다. 그건 백반이 맛있는 지하 식당 때문이다. 식당의 점심시간은 12시부터, 저녁시간은 5시부터 배식을 시작한다. 의자 끄는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한 열람실 분위기가 조금씩 들썩 거리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드니 좌석이 좀 비어있다. 시간을 보니 11시 55분. 아차!. 나도 빨리 지갑을 챙겨 들고 지하 식당으로 내려간다.. 다행히 아직 줄이 많이 길지는 않다. 이전에 12시 3분에 나왔을 때는 긴 줄이 지하 식당 앞 휴게공간을 지나 꺾어진 계단을 타고 넘어 1층 로비까지 이어져 있었다. 12시 땡 치면 식당 철문이 열리고 배식이 시작된다. 한 발짝씩 줄어드는 열에 맞춰 앞으로 전진할수록 맛있는 냄새는 강해진다.

나는 식당의 매표하는 아저씨, 영양사, 그리고 식당의 아주머니들이 합주단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 합주단이 연주하는 곡은 라벨의 볼레로이다.. 이미 머릿속에는 줄 서서부터 볼레로의 작은북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식당 철문을 지나 식권을 판매하는 중년의 아저씨께 3000원을 낸다. 아저씨는 맛있게 드세요. 하고 높낮이가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읊조리고 식권을 직접 찢어 통 안에 넣는다. 나는 돈을 내면 뭐를 받아오던 습관에 의해 반사적으로 내밀어진 손이 무안해 괜스레 머리를 넘긴다.

식당은 천장이 열람실에 비해 1미터 정도 더 높고, 긴 식탁에 민트색 등받이 의자를 마주 보게 두 줄로 배치한 8~90명 정도가 한 번에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식당 안을 둘러보며 뭔가 기이함을 느낀다. 70%는 채워진 좌석에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는데 아무도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무도 그 흔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지 않고 오로지 밥만 먹고 있다. 철식판에 철제 식기가 쨍쨍거리는 소리만 공간에 가득하다. 천장이 높은 공간에 소리가 울려 꽤 소란스러운데 사람의 음성은 없으니 공사장에서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내 머릿속의 볼레로는 식당 안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점점 커지며 고조되어 간다. 오늘의 식단은 해물 순두부 국, 어묵 부추잡채, 닭볶음이다.. 위쪽이 가려진 배식구에서 아주머니 얼굴은 보이지 않고 손만 불쑥 나와 반찬을 퍼주시는데 그 양이 꽤 푸짐하다. 자리에 앉아 주변을 보니 모두 오로지 먹는데 열중하고 있다. 건너편 좌석에 엄마와 7살 정도의 사내아이가 앉았는데 밥 안 먹고 딴짓할 법한 이 아이도 큼직한 어른 수저로 얌전히 밥을 퍼먹고 있다. 왜 이렇게 열심히 밥만 먹냐고 질문하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무시하거나 그럼 식당에서 밥을 먹지 뭐를 하냐는 반문을 들을 거 같은 분위기이다. 그러고 보니 평소 밥 먹는 속도가 느리고 밥 먹을 때 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나도 턱이 아플 정도로 열심히 씹어 삼키고 있다.. 유명한 발레단의 군무를 본 적이 있는가? 군무를 하는 발레리나들을 보면 팔각도뿐 아니라 손가락각도까지 칼같이 맞아 신기한데, 보고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력을 느끼고 옆 사람들의 인력에 이끌려 움직여야 동작이 딱딱 맞춰진다고 한다. 내가 바로 그 상태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끌려 나의 손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 원래 이렇게 빨리 먹지 않는데.. 아니 한 숟가락에 이렇게 많이 푸다니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빠르게 입안에 음식을 그러넣는 자신을 낯설게 바라본다.

반도 먹지 않아 주변이 썰물 빠지듯 비기 시작한다. 시간을 보니 12시 40분.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광경도 꽤나 기이한데, 그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퇴식구를 향해갈 때 모두 앉았던 의자를 도로 밀어 넣는다.. 내 앞에 7살짜리 너는 그냥 가겠지? 하고 쳐다보는데 아니 이 어린아이까지 탁자 안에 의자를 밀어 넣고 간다. 식당 안에 사람이 적어지자 나도 점점 초조해진다. 손을 움직이고 턱을 움직이는 속도를 더욱 빨리해 보지만 어째서일까? 식당에 가장 늦게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항상 마지막에는 혼자 남아 사력을 다해 먹고 있다. 가지런하게 전부 밀어 넣어진 의자 덕에 식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고 식당 합주단의 연주는 끝이 났는데 오늘도 나 혼자 다 먹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식사시간이 끝나가면 지휘자 역할인 영양사님이 민트색 가운을 입고 나와 식당 안을 점검하는데, 끝내 혼자 남아 먹고 있는 나를 보고 부담 없이 천천히 먹으라는 듯이 미소 짓는다. 나는 군무의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늦깎이 무용수처럼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하고. 밥을 다 먹고 나 역시 의자를 책상 안에 밀어 넣는다. 퇴식구에 잔반을 털고 물을 마신 후 식당을 나온다.

이 멋진 합주단의 연주에 맞춰 군무를 추러 갈마 도서관에 방문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매일 바뀌는 간소한 반찬들은 방금 만들어 배식하기 때문에 따듯하고 맛있습니다. 일요일은 식당이 운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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