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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임용 Jan 27. 2020

WEEKLY MUSIC : 2020년 1월 4주차

이 주의 추천음악



1. 뱃사공 [기린]



오만한 화두를 던져보자. 힙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모든 장르의 아티스트에게 통용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힙합만큼 진정성이 중요한 가치로 존재하는 영역은 없다. '진짜는 모두가 알아보는 법', 'Real Recognize Real' 등 진정성과 관련된 내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라인들이 가사에서 유독 자주 쓰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많은 래퍼들은 음악 안에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풀어내고, 언행일치를 통해 그 가치를 삶 자체에 녹여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막상 그것에 성공하였다고 해도 뜯어보면 내용 자체가 어쩐지 평범한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뱃사공의 음악은 눅눅하다. 자신과 동료 아티스트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것을 '거지 무드'라고 칭하는 것 같은데, 이는 사람들이 (특히나 한국에서) 힙합이라는 장르와 쉽게 연결 짓기 힘든 감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뱃사공의 이야기는 그 어떤 힙합 음악보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뱃사공이라는 한 명의 사람이 마침 음악을 할 뿐 그 속에 담긴 그의 눅눅한 '거지 무드'는 보편적이다. 하지만 만약 뱃사공의 음악이 단순히 보편적이기만 하다면 그냥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의 음악이 특별한 이유는 그 보편성에 상당히 깊고 구체적인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EP [기린]의 가사는 뱃사공의 개인 커리어 중에서도 가장 진정성 있다. '어쩜 모든 게 다 쓸데없는 고집 / 근데 그걸 버리면 난 뭐지?'라고 말하는 <다와가>에선 개인의 가치관과 사회적 통념 사이에서의 고민이 드러난다. 또 그 과정 중에 스스로가 흔들렸던 모습('fuck you 날렸던 쇼미 / 심사 제의 솔직히 했지 고민)을 용감하게 고백한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진짜' 래퍼로서 치명적일 수 있을 텐데, 뱃사공은 오히려 그 당시의 자신의 심리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작품에 순도 높은 진정성을 첨가한다. '야망이 없는 내가 난 괜찮아', '문제가 많아도 난 답은 안 찾네' 같은 <먼저가>에서의 가사는 상당히 개인적이나 한편으론 진부한 자기 계발서에서 청춘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글귀보다 훨씬 따뜻하다. '진정성'하면 빼놓을 수 없는 김태균(테이크원)과 함께 <기린>에서 뱉어낸 자서전적인 가사는 특히 돈과 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에게 큰 힘을 준다.

밴드 이안소프 출신의 프로듀서 Chilly는 [기린]을 총괄하며 완성도 높은 신스팝이 힙합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뱃사공은 이에 호응하듯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래핑을 보여주며 인상적인 수작을 완성해냈다.






2. 김뜻돌 <어른이 된다면>



김뜻돌이라는 아티스트에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능력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진지한 사색을 대중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여 무거움과 가벼움의 적당한 혼합물을 만든다. 그녀는 심각하지 않은 목소리로 그것을 굳혀내 세상에 던진다. 리스너는 아무렇지 않게, 가벼운 반응으로 김뜻돌의 음악을 받아들인다. 그러다 음악이 마음에 완전하게 스며들면 그 속의 가벼운 요소는 전부 증발하고 그녀의 진지한 사색이 우리의 마음을 압박해온다. 이 과정은 매우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오히려 깨달은 뒤의 무게감은 비슷한 의도를 지닌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보다 훨씬 강렬하다. <사라져 (feat. 사뮈)>에서 정점을 찍은 김뜻돌의 개성은 싱글 <어른이 된다면>에서도 이어진다.




가사에 집중해서 감상하길 추천



<어른이 된다면>은 김뜻돌이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 불러주는 곡이다. 이 작품엔 어른이 된 '나'와 어린 시절의 '나'의 시선이 얽혀있다. 어른이 된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고, 어린 시절의 내가 앞으로 어른이 될 나를 상상하고, 그 상상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어른이 된 내가 추억하고……. 다양한 해석의 시각이 열려있기에 언뜻 봤을 땐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각을 처음부터 한 번에 적용시키지 않고, 하나하나의 프레임에 맞추어 음악을 감상해보면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초반 인트로와 벌스에서 사용된 기타 스트로크, 쉐이커는 한국 인디씬에서 귀엽고 아기자기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앨범인 조정치의 [미성년 연애사]를 떠올리게 한다. 첫 번째 벌스는 확실하게 어린이의 시선이 담긴 가사인데, 덕분에 그 귀여움이 훨씬 강조된다. 하지만 그다음부터 등장하는 어른들을 위한 가사부터 <어른이 된다면>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음에 가볍게 다가가서,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 전형적인 김뜻돌의 수법이다.

<어른이 된다면>의 가사는 유독 뭉클하다. 어른이 되어 깨달아버린 거칠고 시린 현실은 담담하게 쓰여 더욱 슬프고, 그 인식을 지닌 채 어린이의 시점으로 돌아가 현실을 순수한 마음으로 맞닥뜨리고자 하는 생각은 괜스레 눈물샘을 자극한다. '나'는 순수하지 않다. 싸우는 법을 잊어버리고, 이기는 법도 잊어버렸지만, 그렇다고 지는 건 싫다. 내가 성공하는 것보다 다른 이가 성공하는 것을 보는 것이 더 힘들다. 그리고 어른이 된 내가 가진 이런 때탄 마음은 냉혹한 현실보다 더 싫다.

김뜻돌은 <어른이 된다면>의 출구를 닫아 놓았다(결말을 열어 놓았다 - 어떤 표현이 정확할지 모르겠다). 현실은 더럽고 내 마음은 추하다. 난 어렸을 적에 어른이 된다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아니, 난 아직 어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앞으로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다. 현실이 그런 걸. 아니, 어쩔 수 없는 게 맞나?…. 

결론적으로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그게 중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3. Oscar Lang <Hey (ft. Alfie Templeman)



Oscar Lang은 어설프다. 앳된 모습의 그에겐 장난스러움을 과하게 드러냄으로써 쿨해보이려는 의도가 다분히 비치는데, 미안하지만 그게 너무 티가 난다. NME와의 인터뷰만 봐도 그렇다. 자신들의 음악을 "맥 드마르코, 존 레논, Wii Shop Music을 둥글게 뭉쳐 케빈 파커(테임 임팔라)의 X꾸멍에 넣은 것 같다'고 표현한다던지, "당신들이 우리의 음악을 들으면 중요한 부위에 따끔따끔하고 간질간질한 느낌이 퍼져나갈 거예요"라는 식의 문장을 만든다던지, 아무튼 진지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그 모습이 괜히 밉지가 않다. 오히려 사랑스럽다.

그가 밉지 않은 이유는 음악 활동을 어릴 적부터 시작했음에도 작품 자체엔 허세가 없기 때문이다. 2011년, 11살의 나이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Oscar Lang은, 2016년 'pig'라는 예명을 달고 정식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는 십 대로서 느끼는 감정을 음악에 솔직하게 표현했고, 풋풋한 사춘기 소년의 솔직하고 서툰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2017년부터 자신의 본명을 달고 활동하고 있는 Oscar Lang은 벌써 성인이 됐다. 이번 Hey에선 그에 걸맞은 성숙하고 여유로워진 모습이 눈에 띈다. 뮤직비디오는 dayglow의 <can i call you tonight>처럼 크로마키를 활용한 키치한 컨셉의 작품인데, 퀄리티가 나쁘지 않아 비슷한 영상들 중에서도 나름 신경 썼다는 것이 느껴진다. 환상적인 시각효과가 보는 재미를 주고, Oscar Lang의 어설프지만 귀엽게 과장된 제스쳐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내용의 가사 또한 이제 막 성인이 된 아티스트 Oscar Lang에게 상당히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과거 예명이 pig였던 걸 보면 살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느꼈던 모양이다. '이제 살 빼려고 버둥거리는 건 끝이야 (And I'm so done trying to lose my weight)'라는 가사가 재밌다. 미워할 수 없는 Oscar Lang의 매력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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