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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청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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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아나 Mar 20. 2023

청춘은 지속한다


새벽별도 집어 삼켜진 차가운 새벽. 울리는 알람소리에 깨어난 나는 방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옷들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얼렁뚱땅 집을 나선다.

땅속으로 곤두박칠 치듯 떨어지는 엘리베이터는 언제나 그렇듯 나를 더욱 낮은 세상으로 이끌었다.

거리마다 서로 다른 불빛이 공존하고, 나를 태운 자동차는 달과 별의 흔적이 희미하게 어려있는 새벽의 언저리를 넘노닐며 부드럽게 세상으로 달음박질한다.

침묵의 시간. 자동차의 속도가 빨라지며 빛의 터널을 통과하자 희미하게 아른거리던 세상은 동굴보다 짙은 어둠에 휩싸인다.  

주유소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켜고, 두꺼비집을 열어 잠자고 있던 주유기와 전등을 깨운다. 서늘한 새벽 공기가 옷깃을 스치며 저편으로 멀어진다.

매일 새벽, 나에게 행복감을 주기 위한 의식처럼 커피 포트에 물을 받아 물을 끓이고, 드리퍼를 접고, 예가체프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갈아낸다. 그 순간, 원두의 묵직한 향기가 사무실 내부를 채운다.

주전자에서 떨어지는 곧은 물줄기가 곱게 갈아놓은 원두 위로 쏟아진다. 적당한 온도로 끓은 물이 원두를 적시고, 피어나는 커피의 영혼이 아지랑이처럼 모든 공간을 뒤덮는다.

서버로 토닥거리며 커피가 내린다. 드리퍼너머로부터 세어 나오는 커피를 지켜보며, 나는 곧이어 마지할 커피의 향기와 맛에 한발 먼저 빠져든다. 진득한 강렬함, 산미와 쌉쌀한 맛, 부드러운 목넘김까지.

하지만 현실에서의 행복감은 누군가가 나의 비극을 즐기기라도 하듯, 그리 오래토록 이어지지 않았다. 어제까지의 판매 영수증을 확인하며 엑셀에 내용들을 기록한다. 숫자를 기록할 수록 무거워지는 나의 손가락과는 다르게 적혀지는 숫자들은 하릴없이 가볍게만 보인다. 혹여나 누락된 내용이 있나 수차례 영수증을 들여다 보지만, 숫자와 컴퓨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제보다 더욱 낮게 내리 깔린 숫자가 무던히도 증오스럽다.

홀로 머물러 있는 이른 아침.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차량들의 소리를 꼽으며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곱씹는다. 언제나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는듯, 그렇게 이곳에 머무르며 어떤 불안한 감정이 뒤섞인 갈망의 물결에 휩싸인다.

차가 들어온다. 챠임벨이 울리면 나는 파블로프의 개 헐래벌떡 밖으로 뛰쳐나가 차량의 유종을 확인하고 기름을 넣는다. 1대, 6대, 10대가 넘어가고 20대가 되면, 오늘은 몇대의 차가 들어올까 상상하며 멍하던 머릿속이 조금은 맑아지는 듯 하다가도, 지금의 마진을 생각하면 다시금 암담함에 휩싸여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매일 같이 변화 없는 일상이 이제는 버겁기까지 하다. 지친다. 차가 들어오고, 기름을 넣고, 돈을 받고, 차가 나가는 것. 반복되는 일상속에 멍하니 빠져 있다 또 다시 차가 들어온다. 차 내부에서 바쁘게 전화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손님, 혼자서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내리는 빗방울을 쳐다보는 손님, 차에 기름 넣는 것을 구경하거나 시끄러운 음악에 심취해 카드를 건네주지 않는 손님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주유소를 방문한다. 기름을 넣을 때 인사를 건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손님들은 자신들의 일에 매몰되어 있어서 잠잠히 머물러 있다.

나 또한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적응되어 버린 걸까. 하루 종일 힘들게 일을 하고, 그 어떤 성취감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시간을 죽인다.

이제는 더 이상 힘든 일이라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에 묻혀버린 것 같다. 세상은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지만, 주유소는 그저 그 자리에 멈춰있다. 이런 일상 속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빗발은 거세지고 더욱 많은 차량들이 들어오지만 아직이다. 이정도로는 점심 밥값도 벌지 못한다. 주유소 사장이 외제차를 타면 서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악덕업주이고, 식당 사장님이 금팔찌를 온몸에 두르고 카운터에 앉아 계산 만 하면서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 맛집인증인 이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3~5%의 마진율도 나오지 못하고 그와중 카드 수수료만 1.5%....

하루 16시간 근무중에 나는 몇대의 차량에 기름을 넣어야 할까.

이렇게 오늘 하루도 멀어져 간다.



박삿갓TV

https://youtu.be/PhxyVp1PA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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