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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청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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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아나 Aug 10. 2022

청춘은 뭐든 한다


오늘 같은 촉촉한 날씨는 그녀와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한다. 맞춰 놓은 알람이 울린 지 벌써 10분이 지났다. 침대에 파묻혀 눈을 가늘게 뜨고 4분 단위로 핸드폰을 쳐다본다. 창문에 토독거리며 튀어 오르는 빗방울이 부잡스럽기도 하고,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며 슝슝거리는 바람 소리가 거슬리기도 하다. 아랫집에서 풍기는 빵 굽는 냄새, 옆집에서 들리는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누군가 클락션을 누르며 도로를 질주하는 소리도 또렷이 감지된다.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모닝커피를 챙겨 마시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상상을 한다. 무슨 양말을 신을지, 면도를 할지 말지 망설이기도 해본다. 오늘은 무슨 예약이 있고,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도 생각한다.


상상은 흐르고 흐르다, 종국에는 하루를 끝마치고 다시금 포근한 잠에 빠져들 바로 이 자리, 침대 속으로 몸을 침잠시키는 밤까지 그려보기도 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핸드폰을 쳐다보면서 이런저런 망상들로 하루를 몽땅 그리는 아침. 그렇게 알람이 울리고 한참이 더 지난, 더 이상 머물러 있을 명분이 없어진 나는, 어쨌든 이곳을 나가야 그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움츠렸던 몸을 느리게 일으켰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고, 정수기로 향한다. 물 한 잔 벌컥이고, 씻고, 머리단장을 마친다. 그리고는 신발장 가장 깊숙이 넣어둔 우산을 꺼낸다. 이제는 온전히 그녀를 느낄 시간. 그녀를 만났을 때 신었던 신발을 꺼낸다. 나는 퀭한 눈으로 문을 열고 집을 나선다.


길 위로 축축함이 세차게 떨어진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은행잎이 소복하게 들어찬 동그란 물웅덩이 위로, 달빛을 품은 물방울이 쏟아진다. 화가 날 정도로 슬픔에 잠기기 충분한 깊은 가을, 올곧은 빗줄기는 계속해서 바닥을 두드리고, 웅성거리는 물의 웅덩이를 만든다.


빗물이 쌓인다. 그 위로 거친 발길이 쏟아진다. 화가 나면 물을 때리라던가? 내리꽂히는 발걸음에 노란 은행잎이 물웅덩이 안에서 헤엄치듯 이리저리 흔들린다. 폭우에 갇힌 산의 헐떡이는 숨결이 밀려온다. 몸의 리듬에 맞춰 나는 걸음을 옮긴다. 부드럽고, 침착하고, 가볍게, 물고기가 바다를 떠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흘러가듯, 걸어간다. 빗물이 나뭇잎을 거세게 핥는다.


- 유튜브 박삿갓TV


청춘은 뭐든한다

https://youtu.be/_MC5X-kB8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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