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청춘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비아나 Aug 02. 2022

청춘은 살아간다


어느 날 너는 잡히지 않는 멀리로 떠났다. 가지 말라 붙잡았지만, 더 이상 쓸모없다며 놓아둔 작은 인형 하나만 버리고 떠났다. 그리고 나도 버리고 갔다. 버리고 간 것은 사실 쓰레기나 마찬가지다. 나는 너에게 쓰레기였다. 오늘도 밝아오는 석양에 나무의 그림자가 검붉게 타들어 간다. 내 입을 떠난 김을 밤공기가 단숨에 들이 삼킨다.

너와의 만남에서 오해를 하는 것도, 묵묵히 넘겨진 오해를 삼키는 것도 모두 나의 몫이었다. 너는 언제나 나에게 받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했으면서도, 내가 너에게 주었던 커다란 은혜는 서둘러 망각했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 말하면서, 은혜는 굳이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은 빚이라 말했다.

너는 항상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늘 내 곁에 없었다. 나는 생일날 케이크에 꼽혀서 고개를 까딱거리던 인형과 함께 벤치에 홀로 앉아 거리에 찾아온 봄을 나만의 방식대로 즐겼다. 어떤 날은 길바닥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자색 꽃잎을 보며 이유 없는 눈물을 삼켰고, 어떤 날은 메리야스 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는 노숙자처럼 벤치에 누워 봄기운에 몸을 말렸다. 또 어떤 날은 도로가 보이는 2층 창턱에 걸터앉아 커피를 마시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시발점을 찾으려는 듯, 된소리를 짧게 외쳐 본다. 그러자 창밖 초승달 뜬 강물 저편에서 '우' 하는 메아리가 울린다.

우리의 소설이 끝나고 시작된 나의 끝없는 소설은, 네가 떠나고 나서야 너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비극이었나 보다. 어쩌면 너를 만난 것이 운명이었듯, 나는 필연적으로 비극적 결말에 다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이 소설의 끝이 희극이길 바란다. 허나 나의 비극이 소설의 완성일지라도, 개연성 짙은 우리의 인연의 결과가 비극일지라도, 나는 그조차 기껍다.

자꾸만 흐르는 눈물에 너의 그림자가 녹아내려 글자가 된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고 사라질 바에야, 아무도 읽어 주지 않더라도 내 가슴속에 새기련다. 다음 봄이 왔을 때 되새기련다. 모든 것들은 지나고 난 뒤에라야 지금보다 약간은 더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기에.

체념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거울 속에 비치는 나의 눈동자에서 일만 페이지가 넘는 소설의 서사를 읽는다. 내가 보는 풍경은 색이 사라진 풍경.
자, 이제부터 가장 탁한 밤이 시작된다. 이 빛바랜 어둠을 언젠가 만난 적이 있다. 그것은 어느 날의 하늘이기도 했겠지만, 내가 어느 날에 더 이상 원하지 않던 하늘이기도 했을 것이다. 몇 시간이고 지겹도록 바라보아도 짙어질 게 없는 흐릿한 밤. 나는 가장 탁한 어둠 앞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앉아있다. 그저 가장 푸른 새벽이, 너와 내가 함께 있던 그 새벽이 되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 유튜브 박삿갓TV


청춘은 살아간다

https://youtu.be/2tLmb-kyfy0


매거진의 이전글 청춘은 노력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