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예린[1]이 물었다. 이천이십이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더 발룬티어즈 공연 영상에서였다. 써머 전주가 흐르자, 사람들의 희열 섞인 탄성이 터졌고 그녀는 관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들의 여름은 지금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신가요.” 써머 전주가 시작되면 내 안에 어떤 기운이 감돌게 된다. 가슴 속에 무언가 부풀어 오르다가 머릿속에 몽글몽글 피어나는 여름 뭉게구름 이미지가 생성된다. 한밤중에도 대낮에도 갈 곳은 걸어야 할 거리뿐이라 써머를 들으며 걷고 걸었던 여름의 거리에서 나는 그 질문에 답하고 싶어졌다.
폭풍에 요동치는 파도처럼 불안조차도 불안할 만큼 동요하는 이천이십삼년 여름이었다. 점점 커지는 태풍이 방향을 틀면 영향권에 들어가듯 나를 뒤흔들어갈 일들이 한꺼번에 나에게 닥쳐오기 시작했다. 생각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분별하고 가늠하며 불안을 증폭시켰고 지난밤 겨우 진정시킨 불안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감정의 파노라마로 마주했다. 아침부터 이럴 때면 울고 싶어진다. 정말 울어버리고 싶다. 어렸을 적부터 눈물이 많았던 나는 서른 살을 넘어가면서 눈물이 잘 나지 않는다. 펑펑 울어 눈물을 쏟고 싶은 마음으로 노래[2]를 부른다. 습기만 머금고 비를 내리지 않는 절기 하늘 구름처럼 눈물은 눈물언덕 앞에서 넘칠 듯 말 듯 출렁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가요 울고 싶어라를 부른 故 이남이 씨도 어떤 이유에서든 울고 싶었지만 울지 못했기에 울고 싶어라, 라는 가사를 썼을 것이라 헤아려 본다.
이를 뽑는 날이었다. 왼쪽 위아래 사랑니와 아래 사랑니 바로 옆 어금니를 발치하기로 했다. 살면서 느껴 본 고통의 최악이다. 고통 앞에서 나약하고 초라한 인간의 신음을 내는 나에게 충치가 심해 염증이 많은 치아는 마취가 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치과의사는 그제야 알려줬다(사후 나의 CT 사진을 본 치위생사에게 알게 된 건 특히 많은 신경이 연결되어 있는 어금니, ‘생니’를 뽑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는 것이다). 입 부분만 뚫려있는 두꺼운 초록색 헝겊을 얼굴에 덮어도 면직물의 조직 틈 사이로 수술 조명 빛이 투사되었다. 그 아래로 덜그럭 소리를 내며 묵직한 발치 장비가 전장의 헬리콥터처럼 선반에서 떠올라 입 주변을 부단히 오갔다. 기구가 어금니를 잡는 순간 신경 통증이 치아 뿌리에서 온몸으로 쭈악- 퍼진다. 한 번 느꼈던 공포는 수술대에 누워 있는 백팔십 센티미터에 가까운 내 몸이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츠러들게 한다. 어깨가 말리고 주먹을 쥐었다. 왼쪽 무릎에 오른쪽 무릎이 붙어간다. 수술 의자에 기대어 얼굴에 헝겊을 덮은 채 괴로운 일상의 연속인 나는 치과에 가는 길 동안 예상조차 하지 못한 지독한 아픔을 핑계 삼아 울고 싶어졌다. 살면서 육체에 가해졌던 고통과 차원이 다르다는 구실을 들어 수염이 얼굴을 덮은 군대도 다녀온 서른 넘은 남자는 헝겊이 젖어 갈 만큼 울기로 했다.
세 개의 치아를 뽑고 수술실을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병원을 나오기까지 위생사분들과 데스크 분들이 얼떨떨한 나를 달래 주었다. 지원한 곳에서 회신을 주거나 찾아주는 친구 하나 없는 유월에 나보다 더 나에게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치과를 나와 뙤약볕 아래를 걷기 시작했다. 비어버린 이의 공간을 혀가 자꾸만 건드린다. 눈앞에서 건널목 신호를 지나버려 다니지 않던 길로 돌아가게 되었다. 땅만 보고 걷던 나는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다. 눈에 들어온 건 붉은 타일이 외벽 전체를 둘러싼 오래된 건물과 페인트가 빛에 바래 허연 아파트 동 사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뭉게구름이었다. 한낮의 풍경을 바라보며 빈 치아도 허한 마음에도 뭉실뭉실한 뭉게구름 같은 게 채워지기를 소망했다. 유월에는 배탈이 자주 났고 불안에 떨었던 날들이 많았다. 당장 잇몸에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껴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 맞아떨어져 가고 있다, 고 생각했다. 내 삶이 바뀌어야만 하는 와중에 마땅히 겪어야 할 일들 속에서 자발적으로 헤엄치기로 했다. 오히려 쉬지 말고 계속 삶에서 발버둥 치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오며 이런 마음을 기념하고 싶어졌다. 입구 도로반사경 앞에 섰다. 작렬하는 오후 햇볕에 레이벤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부어버린 왼쪽 볼에 힘을 주어 티셔츠 속 미키마우스처럼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주차장을 지나며 긍정을 넘어선 미친 무언가 같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드는 삶의 비관에도 결국 어떻게든 긍정을 초월하는 무언가로 바꾸어 놓는 나를 유월에 다시 만났다.
[1]싱어송라이터. 밴드 더 발룬티어즈 보컬.
[2]울고 싶어라. 이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