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잘 마시지만 술이 당기는 날은 일 년에 한두 번 많으면 세 번이 될까 싶다. 지난 토요일 저녁 식사 자리에서 술을 마셨다. 병에 담긴 과일 담금주를 몇 병 비웠고 가족들이 식탁에서 떠나도 더 찾아 마셨다. 술을 찾아 마시는 건 드문 일인데 잔을 비워가며 반복해서 노래[1]를 들었던 탓에 여러 사람이 보고 싶어졌다. 그때 내가 이기심보다 이해심이 더 많았더라면 좀 더 살가웠더라면 이라는 유통기한이 한참 지났어도 폐기하지 않은 라면을 기억의 서랍에서 꺼내 부스럭부스럭 만지작거린다. 스스로가 청승맞아 보여 잔을 꺾고 방에 들어갔다.
방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몸 안의 피는 평상시보다 빠르게 뛰고 있다. 손목에서 귀 뒤에서 가슴에서 그렇게 느껴졌다. 불현듯 욕구에 사로잡혔다.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방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해 두고 싶어졌다. 그 욕구는 점점 더 강해져 간다. 술기운이 가득 한 채로 무슨 짓인가 싶었지만 욕구는 술기운을 압도하고 책상 앞에 앉게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아이폰 메모장에 적어 두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글의 덕을 봤을 때가 생각났다. 가로등 불빛 같은 전기스탠드 아래에서 작은 웃음이 샜다. 피식-.
이천이십년 여름 초입에 받은 메일이었다. 꽤 오래전부터 받고 싶은 메일이었지만 오 년 동안 스무 번 이나 기다렸어도 오지 않았기에 메일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지만, 고대해 마지않는 메일이 도착해 있는데도 하필 그때 처음으로 메일함을 확인할 필요를 못 느낀 게 아이러니였다. 메일이 도착한 뒤로 이틀이 지나서야 휴대전화 화면 앞에서 갈 곳을 잃어버린 왼손 엄지손가락이 습관적으로 메일함을 열었다.
[2020 여름편 서울꿈새김판 당선자 인터뷰 요청]
이 공모에 꼭 당선되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그간 스무 번과는 다른 이유였다. 다시 보고 싶지만 왠지 영영 그럴 수 없게 되거나 더는 연연하는 감정이 사라져 버릴 만큼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우연히 만나게 될 것만 같았던 사람에게 나를 상기시키고 싶었다. 내가 잊히지 않고 싶었다. 이런 연유로 서울도서관 정문에 내가 쓴 글이 커다랗게 걸린다면 다시 내가 생각나기에 충분할 만한 일이 될 것 같았다. 그 사람이 거닐던 곳에서 나의 문장을 마주한다면… 문장 아래 새겨져 있는 나의 이름을 읽어준다면… 이천십구년 마지막 달에 “조심히 가세요…” 라는 인사를 하고 반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떠오른다는 건 이름이나 생김새의 이미지가 jpg 파일로 멎어있는 일이 아니다. 아주 잠시라도 그 사람과 걸었던 거리에서 마주한 눈이 뇌리에서 gif 파일처럼 움직였다.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꼭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사람들이 빠진 번화가의 카페 이 층에서 제출 마감 직전까지 머리를 싸매고 문장을 다듬어 제출했다. 소파에 늘어진 채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쓴 문안처럼 거리를 두고 있더라도 서로의 의식 속에서 어떻게든 이어져 있고 싶었다.
당선작은 레퍼런스를 두고 있다. 이천십팔 년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한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에 관한 사회적 관심 제고 슬로건 공모에 제출했던 문장에서였다. 그 문장의 구조를 유지한 채 일부를 수정했다. 연이어진 거리 두기에 고립을 느끼는 사람들을 달래주길 바랐다. 그 당시 피어주지 않았지만 내가 심었던, 무엇을 심었는지조차 잊고 있던 글,씨가 자라난 것이다. 오랫동안 물 주지 않고 돌보지 않았지만 죽지 않고 자라나 내가 소원하는 순간에 만개해 주었다. 이럴 때 나는 필연을 느낀다. 이 년 전 작성했던 문장이 공모에서 수상하지 못한 건 언젠가 이 문장이 필요한 시간과 새겨질 공간이 있기에 그랬을 것만 같은 거시적 필연을. 지금 내가 쓰는 노력이 당장 바라는 일로 이루어지거나 그렇지 못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낙담만 할 일은 아닐 것 같다. 나의 애‘씀’은 가늠조차 못 하는 순간에 필연이라는 이름으로 언제 어디서 등장해 줄지 모른다. 테트리스 게임 속 포화상태의 블록들을 클리어시켜 줄 비어 있는 자리에 꼭 맞는 모양으로. 그리하여서 나는 계속 글,씨를 심어야 할 것 같다.
‘벽지 가득 곰팡이가 핀 어둡고 습했던 골방에서부터. 나 좀 살자고 나 숨 좀 쉬자고 써대던 글이 서울시 한복판에 닿았다. 방구석의 내가 나의 세계가 변해간다. 사람들을 만나서 웃기 시작하고 다음 만남을 기대한다. 다시 누군가를 좋아할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짧은 시간 느꼈던 감정이 있었다. 여전히 일희일비하며 조급해지고 시야가 좁아지지만 때로는 크고 넓게 보며 전과 다른 세계에서 오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돌아보고 고갤 돌려 거울 속 나에게 미소 짓고 무언가를 써 내려간다.’
-당선 후 남겨두었던 단상 중에서…
[1] 보고 싶다 - 김광석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