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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쥰세이 Oct 27. 2024

증발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한여름의 여행이었다. 이천십팔년 칠월, 엄청나게 습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가 찍은 사진이다. 물놀이를 마치고 옷이 전부 젖어버려 하반신에 수건을 두르고 리조트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물놀이를 마치고 먹는 터라 꽤 배가 고팠을 것이다. 사진을 찍는 줄도 몰랐으니. 그때 그녀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어떤 시선이었을까. 피사체를 선명하게 담아내는 아이폰 카메라로 보였던 건 나의 모습이 전부였을까. 며칠 뒤라는 가까운 미래, 한 달 뒤라는 조금 더 먼 미래에 우리에게 일어날 일이 흐릿하게나마 보이지는 않았을까. 식사에 집중해 그녀가 내 사진을 찍는 줄 몰랐듯 그때의 우리는 우리의 가까운 미래를 알지 못했다. 이 사진을 보면 그곳에서 보낸 시간 중에 깊은 곳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이 있다.  



   피트(ft)라는 단위가 익숙지 않은 우리는 계속 물속을 걸었다. 나의 오른손은 그녀의 어깨 위에 올려져 있었고 그녀의 왼손은 나의 허리를 감았다. 발목이 잠길 뿐이었던 물이 걷다 보니 턱 바로 밑에 닿았을 무렵 한 발을 더 내디뎠다. 발이 땅에닿지 않았다. 무심히 걷는 밤길에 마주한 얕은 땅 꺼짐도 발이 땅에 닿기까지 한 번의 생각이 드나들 만큼의 간격을 느낀다. 그러나 여러 번 생각을 해도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만큼의 깊이였다. 정신을 차린 다음 들어오는 시야는 해난사고 영상같다. 소리를 들었다. 뉴스 채널에서 보도하는 수중촬영 영상 속 오디오에 담기는 소리. 지상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 일 미터 칠십구 센티미터 나 보다 더 깊은 물에 가득 잠겨야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물의 깊이와 양만큼 육중하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차분하고 고요한 소리였다.   



   내가 깊은 물에 빠져버린 걸 알았을 때 헤엄치는 법을 모르는 나는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저어 물속에서 잠시 떠올랐다. 주변엔 이곳에 오기 위해 새로 준비한 그녀의 라탄 모자가 떠 있었다. 그 아래로 울렁거리는 투명한 물속에서 우그러져 보이는 그녀가 잠겨 있었다. 매우 짧은 순간에 한 단 하나의 생각이 있다. 내가 한 생각이라기보다 번쩍 든 생각이었다. ‘내가어떻게 되더라도 얘는 살려야 한다.’ 그녀를 잡아 올려 마지막으로 발이 닿았던 쪽으로 밀어냄과 동시에 나는 지금보다 더 깊은 곳으로 멀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해야 했다. 뒤따라 물 위로 떠 오른 그녀를 조금이라도 덜 깊은 곳으로 밀쳐냈다. 온힘을 다해서. 동시에 나는 좀 더 깊은 곳으로 멀어졌다. 손에 걸리는 건 무엇이라도 잡아보려 했다. 만져지는 건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물뿐이었다. 손에 한가득 쥐어봐도 전부 빠져나갔다. 발이 닿는 곳에서 그녀가 뻗어 준 손을 잡고 겨우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처음 우리가 걸어온 쪽으로 발을 옮겼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은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나의 왼손은 그녀의 어깨에 그녀의 오른손은 나의 허리에 있었다. 서로의 몸에 의지해 걸을 뿐이었다. 물은 점점 얕아져 갔다. 물속에 발을 넣었다 빼는 소리만 들렸다. 기진한 발걸음이었다.  



   물속에 무언가를 떨어뜨린 걸까. 그렇지 않으면 수용성이었던 그 무언가는 세찬 허우적거림에 물에 녹아버린 걸까. 이별 여행이 되어버렸다. 그 여행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줄어갔다. 깊은 물 속에서 흠뻑 젖은 옷이 타국의 따가운 햇볕 아래 처음부터 물기 하나 없었던 듯이 말라버린 것처럼. 점점 줄어가다가 없어져 버렸으니 증발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그날 일은 우리의 이별과 닮아있었다. 짧았지만 길게 느껴졌던 그날 물속처럼 그녀를 밀어낸 나는 꽤 오랜 시간 깊은수렁에 빠져 있다. 물에 빠져버렸던 날처럼 그녀는 나의 수렁으로 전화를 걸어 손을 뻗어주었다. 받지도 잡지도 않았다. 그 손을 잡기에는 삶의 수렁은 그날 물속보다 더 깊을지도 모른다. 피트가 아닌 시간 단위였다. 혹여 미끄러져 침체한 내 삶에 함께 빠져버리는 과오는 더는 범하고 싶지 않았다. 뭐든 잡아보려 했던 물속에서 잡힘과 동시에 전부 빠져나가는 물처럼잡히지 않는 더는 잡아서는 아니 되는 잡으려 하지도 않은 연(緣[1])이었다.        



      

[1]緣 인연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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