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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쥰세이 Dec 04. 2024

겹칠 대로 겹치고 쌓일 대로 쌓인 텍스트




  샤워를 마치고 더운 김이 잔뜩 낀 욕실에서 나왔다. 콧속에 드는 건조한 바람이 싫어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지 않아 수건으로만 머리카락 물기를 닦아낸다. 화장품을 바르고 의자에 앉아 인스타그램을 켰다. 수건으로 닦아도 물기가 남아 고드름처럼 끝이 뾰족하게 뭉친 머리칼들이 눈을 찔렀다. 머리가 꽤 길어있었다. 헤어샵에 가지 않은 지 삼 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여느 때 앞머리는 눈을 찌르지 않았지만 물을 먹으면 꼭 오른쪽 눈을 찔렀다. 이 주 정도 된 일이었다. 매일 밤 같은 장소에서 마주하는 상황이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머리를 넘겼다. 그럴 때면 다소 축구선수 헤더[1]동작 같다. 넘어갔던 머리가 다시 내려오면 마를 때까지 허공에 서너 번의 헤더를 더 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 물기가 사라지고 마르고 나서야 불륨감을 찾아가는 머리칼들은 눈을 찌르지 않았다.



  머리하러 가는 길. 자동차 유리에 비친 모습은 매번 맘에 든다. 잔잔한 바람에 날리는 머리는 온 길로 되돌아가 조금만 더 붙어 지내보자는 제안을 건넨다. 차 유리 앞에서 잠시 느려졌던 걸음은 다시 힘을 주어 걸었다. 더는 이 불편한 동거를 유지하고 싶지 않다. 매일 밤 눈을 찌르는 칼을 거두기로 한다. 평일 오후 한 시를 넘어갈 즈음 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아 내 발걸음이 멈춰서는 일이 거의 없는 때가 좋다. 여유 있게 샵에 도착했다. 예약 여부를 묻는 데스크 스태프에게 두 시 커트 예약을 말했다. 주변이 어수선해져도 별 관심 없이 휴대전화 화면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가장 늦게 온 나는 먼저 온 사람들보다 머리 자를 준비를 한다. 이럴 때면 조금의 우월감을 느낀다.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해 달리는 고속버스 창가에 앉아 줄지어 선 차량을 보며 지나가는 기분 같다. 스태프를 따라 샴푸실 의자에 누웠다. 머리가 미온수로 젖어간다. 매번 묻는 “물 온도 괜찮으세요?”에 “무릉도원이요?”라고 되물은 인터넷 썰이 생각났다. 입속을 살포시 깨물어 웃음을 참았다. 머리를 감겨주는 기분이 좋다. 손아귀 힘이 센 남성 스태프였다. 두피에 감각을 집중시킨다. 미세한 물줄기들이 머리를 충분히 젖게 하면 물에 녹아가는 샴푸가 열 개 손가락의 일이 수월해지도록 돕는다. 손가락은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거침없이 헤집는다. 두피를 쿡-쿡- 만져주면 현재는 아득해졌다. “수고하셨습니다.” 알람 같은 소리가 들려오면 무릉도원은 사라진다. 수도 레버가 내려왔고 물이 끊겼다. 나의 의지와 반대로 의자는 올라왔다. 현실을 마주 보게 한다. 눈을 감은 건 잠시였지만 통유리로 드는 볕에 눈이 부셨다. 잠시 어디라도 다녀온 것 같다. 헤어디자이너가 기다리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오늘은 어떻게 자르실 건가요?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주며) 이렇게 해주세요.

저번에도 이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항상 비슷하죠. 뭐.



  한낮에 뭉쳐진 머리칼들이 눈을 찌르기 시작했다. 나는 알고 있다. 칼춤 추는 망나니가 뿜어낸 술에 젖은 칼 같은 머리칼들이 눈을 찔러와도 곧 형을 거둘 어명처럼 헤어 디자이너 가위에 전부 잘려 나갈 머리칼들을 알기에 눈앞의 칼춤을 내버려두었다. 얼마 후면 매일 밤 눈을 찔러왔던 머리칼들은 사라져 버린다. 디자이너는 하얀 미용 가운을 나에게 둘렀다. 가위소리가 들렸고 가운 위로 머리카락들이 살포시 떨어졌다. 하얀색 가운 위로 떨어진 한올 한올의 머리카락은 만년필촉을 타고 그어진 잉크처럼 가늘었고, 눈을 찔러오던 머리칼 뭉치는 붓에서 떨어진 먹물처럼 묵직했다. 미용사가 머리칼을 잘라가면 어느샌가 몽롱해진다. 점심시간을 지나 드는 볕과 오후의 온도 한몫했겠지만 흐리멍덩해진다. 흰 가운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보며 겹칠 대로 겹치고 쌓일 대로 쌓인 텍스트로 보였다. 무언가 하는 말은 있는데 당장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휴대전화 속 입장 QR코드 같기도 했다. 잘려져 나간 지난 상념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본다. 고교 재학 동안 학생주임 선생님은 ‘머리카락은 번뇌와 통하는 안테나’라는 말로 두발 단속을 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잘린 새까만 머리털을 보면 학생주임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곤 한다. 내 머릿속에서 자라 나와 매달려 있던 상념을 미련 없이 잘라낸 것만 같다. 머리가 가벼워지고 몸이 아닌 어딘가 개운했다. 



  오랜만에 짧아진 머리가 어색하다. 긴 시간 머리에 두르고 있던 검은 천을 거두어 낸 것처럼 얼굴이 환하다. 목덜미에 닿았던 머리카락들도 전부 사라졌다. 긴 머리를 유지하는 여자들의 삶의 무게를 생각해 보는 오지랖을 부렸다. 디자이너가 헤어왁스로 모양을 잡고 스프레이로 고정한 머리가 맘에 들었다. 저녁이 지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샤워하려 옷을 벗었다. 어차피 물에 젖어 무너져 버릴 머리였지만 상의를 벗으며 옷이 머리에 닿지 않게 머리에 탑이라도 쌓여 있는 것처럼 조심히 벗었다. 샤워기에서 내리는 수십 개 얇은 물줄기가 두피에 흘러 얼굴을 지나 몸 전체를 적혀갔다. 헤어제품이 잔뜩 묻어있는 머리는 물에 젖어도 뻑뻑하다. 물로 충분히 헹궈낸 후에 샴푸를 듬뿍 짜서 머리를 감았다. 이럴 때는 머리를 감는다는 것보다 빤다고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짧아진 머리는 물기를 닦아내는데 수건을 몇 번 문지르지 않아도 충분했다. 샤워를 마치고 더운 김이 잔뜩 낀 욕실에서 나왔다. 화장품을 바르고 의자에 앉아 인스타그램을 켰다. 그리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머리를 넘겼다. 두 눈이 반작- 떠졌다. 눈을 찌르는 머리칼이 없는데도 고개를 돌렸던 것이다. 두 주 동안 샤워를 마치고 매일 밤 하던 일이 버릇이 되어있었다. 이 버릇을 잠시 열렸던 무릉도원에 놓고 오지 못했다. 머리를 감겨준 스태프 손에 뜯어져 수챗구멍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헤어디자이너 가위에도 잘려 나가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잘려 나갔어도 버릇은 붙어 있었다.



  넘길 머리가 없는 머리를 넘기고 나서 언젠가의 내 모습을 돌아본다. 여러 해를 함께한 사람을 이별 상실감에 괴로워, 며칠 만에 몇 주 만에 가능하다면 그만 만나기로 한 그날 잊고 싶어 했던 내가 보였다. 십사일이면 머리를 넘기는 일도 몸에 익는 데 몇 해를 함께한 사람을 바로 잊어보려 했던 모습이 보였다. 또 다른 나였던 누군가를 당장 내가 괴롭다는 이유로 빨리 잊으려 했던 내 모습에 코에서 한숨이 나왔다. 대낮에 헤어샵 하얀 가운에 쌓인 텍스트 같은 검은 머리카락이 생각난다. 그때 읽어낼 수 없었던 말을 오늘 밤이 되어서 헤아려 본다. 머리카락과 같이 내 안에서 자라 나온 상념이 하려던 말은 아마도 ‘잘라내도 잘리지 않는 존재들, 잘라내도 다시 자라나는 존재들’,로 가늠해 본다. 한동안 의자에 앉아 짧아진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1] 축구에서, 머리로 공을 다루는 패스나 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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