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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욱 May 26. 2019

중국 성장 시리즈: 축구에 웃고 축구에 울고

EP 4: 3학년,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울기 딱 좋은 나이

자신 있게 '적응은 끝났다'라고 생각한 아이는 우유부단한 마음으로 평화로운 3학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린 마음에 축구에 모든 걸 바쳤던 아이는 되려 축구 때문에 반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울음을 터트리는 불상사를 맞이할 줄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당시 아이가 다니던 국제학교는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로 넘쳤지만 아이가 속한 반만 유난히 대만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신기하게도 이 무리의 대만 친구들 또한 아이와 같이 축구를 좋아했다. 유일한 차이점은 대만 친구들이 아이보다 실력면에서 월등히 뛰어났다는 것뿐. 어린 건지 어리석은 건지 아이는 실력의 차이를 망각한 체 그저 그 무리가 축구를 잘해서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그 짧디 짧은 점심시간에 같이 축구하려고 온갖 애를 썼다. 다행히 중국어에 비교적 능통해진 아이가 침투하기에 대만 무리의 벽은 그리 두껍지 않았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는 서서히 문화적 바탕에 의한 사고방식의 차이를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1시간에 가까운 점심시간 역시 아이가 오로지 축구만을 통해 완벽하게 그 무리의 일부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아이는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어렸다.


그렇게 애매한 관계를 간신히 유지해오던 아이에게 드디어 3학년 최대 시련이 닥치게 된다. 평화로운 학기가 중반을 지날 무렴 아이들의 실력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체육 선생님은 학년 대표 축구팀을 구성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대만 무리의 리더, 동시에 당시 학교에서 제일 축구를 잘한다고 소문난 케빈이라는 친구한테 팀 구성의 권한을 넘긴다. 아이는 케빈과 많이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같이 보낸 수많은 점심시간을 믿어 학년 대표팀에 발탁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틈만 나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나름대로의 팀 구성을 만들어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대망의 학년 대표팀 발표의 당일 아침 아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극히 뻔한 전개처럼 느껴지겠지만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아이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고 결국 오후 수업 시작하기 바로 전 반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서럽게 울어버렸다. 아이의 공개적 울음이 신기했던 건지 소식은 라이브 뉴스 버금가는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갔고, 울기 시작한 지 5분도 체 안지나 고개를 들어보니 대만 무리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이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특히 케빈은 그중 독보적으로 가장 당황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떨리는 말투로 열심히 변명을 했지만 뭐라고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지우고 싶은 기억의 일부를 삭제해버린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거라곤 끝에 축구팀에 합류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얕은 미소를 띤 아이의 표정이 전부다.


2008년: 3학년 축구팀


울보 사건 이후 사이가 더욱 어색해질 거라는 걱정과 달리 시간이 지나 아이는 대만 무리에 완벽히 적응했으며 케빈과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너무나도 가까워진 나머지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케빈의 집에 놀러 가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고 자연스럽게 케빈의 가족과도 친해졌다. 이는 더 나아가 아이 인생의 첫 '나 홀로 대만 여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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