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 10살, 혼자 비행기 타기엔 너무 어린 나이
4학년으로 넘어가는 여름방학은 아이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겨준다. 케빈과 분신같이 떼어낼 수 없는 사이가 된 아이는 평소와 같이 케빈의 집에서 생각 없이 놀다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게 된다. 해외여행이라고는 아주 어린 시절 가족여행으로 다녀온 태국이 유일했던 아이에게 케빈 가족과 동행하는 2주간의 대만 여행은 고민할 필요도 없는 제의였다.
둘도 없는 친구 케빈을 따라 대만을 간다는 사실에 아이는 여행이 확정된 그날부터 출발 당일까지 한없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들떠있었다. 하지만 갓 10살이 된 아이에게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이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즐거움은 금세 사라진 체 체크인을 하고 부모님과 인사를 하고 난 후부터 아이의 마음속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이의 부모님은 비록 아이가 중국어에 능숙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보호는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비동반 서비스를 신청했다. 비동반 서비스란 아이가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는 순간부터 도착지에 내려 안전하게 보호자를 만나는 순간까지 항공사 직원이 동행하는 서비스다. 감사하게도 불안감이 우울감으로 바뀔 틈을 주지 않고 쉼 없이 아이에게 말을 걸어준 항공사 직원 덕에 아이는 무사히 안정된 마음으로 대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날을 기준으로 나흘 동안 아이는 그리운 부모님 생각에 우울할 틈도 없이 케빈의 가족과 대만의 주요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힐 만큼 가치가 있는 소장 문물을 자랑하는 대만 고궁박물원부터 대만의 역사적 건축물들을 작은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하는 소인국 (小人国) 테마파크까지, 아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만이라는 나라의 매력에 푹 빠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추억 넘치는 낮과는 달리 꼭대기 층에 위치해 있는 손님용 다락방 안에서 지내는 아이의 기나긴 밤은 한없이 외롭게만 느껴졌다. 조금만 더 지나면 볼 수 있는 부모님이 어찌나 그리웠는지 서러움이 북받쳐 베게에 기대 우는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침마다 퉁퉁 부은 얼굴로 나오는 아이의 슬픔을 케빈과 가족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하루의 긴 여정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떨어져 있는 부모님과 통화하는 도중 아이는 결국 폭포와 같이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케빈 가족이 보는 앞에서 폭풍오열하는 진귀한 광경을 연출해 낸다. 케빈과 가족분들 입장에서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손님으로 초대해 편안한 숙식과 최고의 추억들을 선물해주었다만 돌아오는 건 서러운 10살 아이의 오열. 오늘날까지도 너무 감사하고 죄송하다.
아이의 오열에 끝내 마음이 약해지신 부모님은 결국 아이의 대만 여행을 단축하기로 한다. 약 2주 정도 될 예정이었던 아이의 대만 여행은 일주일 조금 안 넘은 시점에서 끝이 나버렸다. 소중한 친구 따라 대만이라는 멋진 나라를 방문해 누구보다 편한 환경 속 추억을 쌓다가 더 즐기지는 못할망정 급 상하이행 비행기를 타기로 한 결정은 아직까지도 인생에서 제일 아쉬운 순간들 중 하나로 남는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여전히 케빈과 케빈의 가족들은 나에게 은인들이고, 대만 여행은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추억을 선물해 주었던 최고의 여행 중 하나이기에 그에 한없이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