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편하게 데리고 가는 장소를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저출산으로 인해 어린아이를 귀하게 반기는 것으로 우리 사회 인식이 많이 변했다지만,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하여 순식간에 사고를 치며, 기분이 좋으면 마구 뛰고 싶어하고, 신나면 꺅~ 꺅~ 소리까지 지르는 아이에게 주의를 주고, 또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보호자의 책임이기 때문에 아이와의 외출은 늘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외출을 안할 수도 없다. 3세 이후부터 아이들은 예의를 배워야 하고, 공중도덕을 지켜야 하고, 또 매너를 갖추며 성장해야 한다. 아이들을 언제까지 키즈존에서만 묶어둘 수는 없다.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배워나가야 한다. 그것은 부모만의 몫이 아니다. 사회가 함께 해야 한다. 아이가 기저귀를 떼고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는 때가 되면 이 땅의 엄마들은 집안의 한 두 명씩은 있는 에너자이저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을 찾고 또 찾는다.
프랑스에 있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이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태운 유모차를 끌고 버스에 지하철에 태워 다닌다는 것, 그리고 미술관에도 많은 유모차에 앉은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 조용히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아이들은 관람분위기를 해치치 않았다는 표현이 더 옳겠다. 그 아이들이라고 뛰고 소리치는 아이 본연의 모습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여러 경험을 통해 미술관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배웠을 것이고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뮤지엄 산 Museum SAN은 아이들의 우아한 산책을 경험하게 하여 준다. 실내외로 연결되는 동선은 흥미진진하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 Museum SAN].
지난 가을 실내디자인론 수업 과제를 위해 우연히 들렀다가 아이와 함께 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에 다시 찾아갔던 곳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 가기 좋다고 추천한다고 하여 흔한 테마파크를 소개하는건 아니다. 이곳은 뮤지엄이다! 기본적으로 주의를 주면 이해할 줄 아는 시기의 아이와 가기 좋은 뮤지엄이다.
게다가 이 곳은 세계적인 건축가, 노출 콘크리트 공법과 빛과 물, 돌 등의 건축재료로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완성한 안도 다타오 건축가가 설계한 곳이다. 뮤지엄 산은 안도 다타오 특유의 재료들과 장치들이 감성적인 설계로 표현되었다.
자연의 일부로 호흡하는 그의 건축 철학이 곳곳에 느껴져 건물을 모두 경험하고 관람이 끝나고 되돌아 나올 즈음이면 묘한 울림으로 감동을 준다.
좁은 공간을 넓게 느끼게 하기 위해 여러 벽면을 지나쳐야 하는 방식의 설계가 발달한 일본 특유의 건축문화가 그대로 녹아들어 [뮤지엄 산]은 마치 정교한 미로처럼 여러 통로로 교차된다. 또한 실내에서만 모든 것을 해결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외부와 연결되어 있는 삼각, 사각, 원형 courtyard를 두어 잠시 나와 환기를 하고 또 실내를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지루해할 틈이 없다. 거대한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 속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감각을 깨워내고, 엄마들은 그런 아이들과 여러 교감이 가능하다.
뮤지엄이지만 전시에 관심없는 아이들에게는 건물 내외부 곳곳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노출 콘크리트의 미니멀함 속에서 찾는 아름다움도 있다. 각 공간마다 슬랫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의 빛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그리고 소통이 되는 공간들을 직접 마주하면서 색다른 감각을 깨워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각 공간을 즐기는 아이의 적극적인 관람을 지켜 보면서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설계의도가 몹시 궁금해졌다. 지금껏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그림 등 전시품을 보기 위한 평면 사각 공간이었지 이처럼 즐기게 되는 다채로운 형태의 동선을 경험해 보지는 못한 까닭이다. 세 살 아이가 먼저 앞장서 걸으며 엄마에게 빨리 와 보라고 손짓하는 건 분명 재미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관람을 끝마치기 전 우리 모자가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소개하는 마지막 공간에 이르렀을 때, 전 세계 아이들이 이 곳을 방문해 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설계의도에 적어놓은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관람 내내 가졌던 의문이 풀렸다. 세계적인 건축가는 외딴 강원도 산 정상에 이 멋진 뮤지엄을 설계하면서 아이들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어느 건축가가 이런 뮤지엄을 상상이나 했을까. 전시작품을 보고 나가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부모를 따라 아이들이 함께 와 주기를 바라고, 아이들이 재미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을 이 건축가가 그래서 더 위대해 보였다.
이곳은 아이들이 얼마든지 환영받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실내에서 뛰어노는 것이 허락되지는 않는다. 뮤지엄 본관 1층에는 Museum SAN 설립자인 한솔문화재단이 수집해 온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 2층에는 한지박물관과 출판에 관한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미술관이다. 1층 원형전시관에서는 古백남준 작가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어 있다. 그러니 보호자들의 주의 아래 아이들은 이곳에서 미술관 관람에 대한 매너를 배워야 한다. 규칙 안에서 자유롭기는 관람을 위한 필수개념이다.
뮤지엄 내외부로 연결되어 있는 동선을 따라 걸으며, 세계적인 건축가가 아이들이 어떤 공간을 경험하기를 기대했는지 그 의도를 느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산 정상에 펼쳐지는 이 엄청난 풍광을 바라보면서 건물을 재미난 표정으로 해석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그동안 실내 키즈카페에서 뛰어놀게 했던 우리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뮤지엄 산]을 즐길 수 있는 '우아한 시간'을 선물해 주자. 물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보호자의 만족도는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질문은 "엄마, 우리 지금 어디 가요?" 다. 매우 반짝이는 눈빛과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힘들지만 어딘가를 다녀올 때마다 아이가 한 뼘이나 더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이처럼 매력적인 성장을 멈추게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