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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Apr 26. 2024

세상은 넓고 회사는 많다

2024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를 다녀와서

"대리님, 안녕하십니까. HR팀입니다."


인사팀 막내로부터 전화가 왔길래 또 본부장님 출장비 지출결의서에 뭐가 잘못되었나 싶었다. 무슨 일인지 되묻는 말에 그는 부탁드릴 것이 있다고 했다. 사연인즉슨 4월 24일부터 3일간 열리는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에 우리 회사도 스폰서로 참여하는데, 하루에 2명씩 부스를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것은 나한테까지 넘어 올 일이 아니라서 의아했는데, 다른 사람이 당번을 맡았다가 업무상 빠지게 되면서 대체 인력을 급히 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새로운 것을 마주할 때 설렘보다는 긴장이 높은 사람인지라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일부러라도 넓은 세상을 보고 올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제안을 수락했다. 팀에서도 사정을 듣고 다녀오라고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그런데 막상 날이 다가올수록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은 가서 설명할만한 실력이 없는 데다가, 평소와 달리 옷도 좀 차려입고 화장도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게다가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집 앞 사무실을 놔두고 차로 30분 넘서 행사장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 손해처럼 느껴졌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팀에 발령을 받아 가게 되면서 인수인계와 업무 마무리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지원 업무를 위해 벼락치기 공부라도 좀 해두려고 했건만 도저히 그럴 짬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오히려 역설적으로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제대로 준비도 못 할 텐데 인수인계나 신경 쓰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는 사이 날짜는 계속 다가오고, 드디어 오늘 내가 당번을 맡은 날이 되었던 것이다.




입사한 지 10년이 넘었건만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에 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참가도 안 해 본 사람이 안내와 설명을 하려니 눈앞이 캄캄했는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나의 부스지킴이 짝꿍 B 씨와 이번 인사발령으로 행사 주관팀에서 일하게 되신 J 대리님이었다.


사업개발팀 출신 J 대리님과 마케팅 기획팀 B 씨의 조합은 환상적이었다. 언어능력과 관련 지식을 두루 갖춘 두 분의 인재 덕분에 어벙한 나도 밝은 미소로 몇 번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교대로 점심을 먹느라 두 분이 자리를 비웠을 때는 다행히 귀여운 대학생 3명이 부스를 방문한 덕분에 편하고 자신 있게 응대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이라 부스에 오시는 분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 행사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회사들과 전에 알지 못했던 신기한 친환경 에너지 사업들이 즐비했다. 새로운 것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나와보기를 역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스를 밖에서만 둘러보다 용기를 내서 안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하기 시작했는데, 눈길을 확 끄는 이벤트가 있었다. 1분 만에 얼굴 특징을 잡아 캐리커처를 그려준다는 것! 홀린 듯 줄을 서고 보니 그려주시는 분이 무려 Shanti님이셨다!

인스타그램에서 그의 작품과 작업정신을 보고 엄청난 매력을 느끼고 팔로잉하고 있었는데 그분을 직접 뵙고 캐리커처까지 받게 되어 영광이었다. 수줍음 덩어리 출신답게 팬이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작업은 끝이 났지만 그려주신 캐리커처가 너무 마음에 들어 부스에서 나오자마자 기념사진을 남겼다.




지막 날이라 조금 이른 마무리를 하고, 부스를 정리했다. J 대리님께서 남은 간식과 음료까지 챙겨주셔서 양손 무겁게 들고 행사장을 나왔다.


그래, 나오길 잘했다. 세상은 넓고 회사는 많고 인재는 그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날이었다.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집으로 출발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얻은 낯설고 소중한 것들을 가득 싣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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