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왕복 4시간가량이 걸려 회사를 다닌 적이 있었다. 집은 경기도 화성시 병점동, 회사는 인사동이었다. 어쩌다 운 좋게 병점역에서 출발하는 1호선을 타면 종각역까지 1시간 20분 동안 앉아서 갈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천안이나 신창에서 이미 사람을 가득 태우고 올라온 열차를 타야 했다. 그리고 그럴 때는 내릴 때까지(적어도 신도림까지는) 갈수록 압축되어 가는 오징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이 역에서 가까웠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걸어서는 20분, 버스로는 앞 뒤 걷는 시간 포함 10분 정도가 소요됐다. 딸아이의 안쓰러운 출근길을 걱정하는 아버지께서 이른 아침부터 역까지 데려다주시는 날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러면 그나마 걷는 것보다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하루를 편하게 시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퇴근길에는 나 홀로 그 시간들을 견뎌야 했는데, 6시에 칼퇴하는 날도 별로 없었거니와 그렇다한들 집에 총알같이 달려와도 저녁도 거른 채로 8시가 되곤 했다.
나는 인사팀이었고, HRM 분야를 모두 도맡아 하는 유일한 실무자였으므로, 업무가 바쁜 시즌에는 막차시간에 맞춰 퇴근하는 날도 많았다. 그럴 때면 1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했고, 겨우 씻고 하루를 마무리한 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다시 7시 전에 집을 나서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이런 날이 반복되고 누적되다 보니 몸이 망가졌다. 소화기관이 점점 말을 듣지 않았고 젊은 나이였지만 몸 이곳저곳에서 이상신호를 보내왔다. 일만 힘든 것이 아니라 사람까지 힘든 상황이니 버티지 못했던 것이 당연했다.
나는 그즈음에 영상매체를 켜놓고 멍 때리는 행위의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나는 원래 그런 것을 시간낭비로 여겼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수동적인 것들 뿐이었다. 몸과 뇌를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책을 읽고 새로운 지식과 개념을 씹고 뜯고 맛보는 희열조차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만큼 몸과 뇌가 고단했다.
장거리 출퇴근, 장거리연애, 주말부부의 삼단계 스텝을 밟는 동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나는 이제 누구보다 위대한 직주근접의 삶을 누리고 있다. 청약 당첨된 신축 대단지 아파트, 자가, 그런데 회사에서 집이 보이는,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10분 이내인 삶.
와. 너무 좋다. 이런 삶도 있구나. 누군가가 하루에 4시간씩, 5일이면 20시간을, 거진 하루를 길바닥에서 버리는 동안 나는 그야말로 '집콕만 해도' 하루를 번다. 이 쾌감. 이 감사함. 이 미친 효율성!!!!! 청약당첨 사실을 확인하던 날 같은 회사를 다니는 남편과 내가 서로 얼싸안고 빙글빙글 돌았던 추억이 선명하다.
그때의 짜릿함이 지금은 당연함으로 자리 잡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불과 10년 전, 출근도 하기 전에 퇴근하고 싶었던, 고작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뿐인데 열차를 기다리다 지쳐 벌써부터 퇴근하고 싶었던, 이십 대 중반의 안쓰러운 나를 떠올릴 때면, 익숙한 것이 곧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 떠오른다.
소중하고 감사한 보금자리를 가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접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