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는 작년에 사 둔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다. 대개는 12월 초부터 집집마다 트리를 놓고 연말 분위기를 낸다. 우리 집 트리는 어제까지만 해도 창고에 얌전히 들어가 있었다. 이제 와서 트리를 꺼내기에 너무 늦었지만 늦게라도 꺼낼까 하다가 귀찮기도 해서, 올해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었다.
그러자 무슨 일이든마감 직전까지 미뤄두지만 안 하고 넘어가는 법은 결코 없는 남편이 나섰다. 남편의 마음속에 오늘이 디데이였던 모양이다. 남편은 지하 창고와 베란다 옆 대피공간과 거실 팬트리를 샅샅이 뒤져 트리를 찾아냈다. 일 년 전에 넣어뒀더니 찾는 것도 일이다.
내가 아이를 씻기고 오는 동안 남편은 트리를 조립하고 가지를 하나하나 펴서 뼈대를 만들었다. 아이의 몸에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혀주는 동안 전구를 트리에 둘러 불을 밝혀 둔 남편. 말하자면 피자의 도우를, 케이크의 시트를 만들어 준 셈이다.
"이제 나머지는 소이가 할 수 있지?"
토핑을 올리고 오븐에 굽는 일, 크림을 바르고 과일을 올려케이크를 완성하는 일처럼 나와 딸은 밋밋한 트리에 각종 오너먼트를 올려 꾸미기 시작했다.
남편이 언젠가 사 준 흑염소 진액을 담았던 상자에 트리를 꾸밀 재료들이 모두 들어있었다. 오너먼트를 하나하나 꺼내서 요리조리 달아보며,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별 것 안 해도 점점 풍성해지는 트리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특히 딸이 트리를 꾸미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행복했다. 우리 둘은트리를 가장 예쁘게 꾸미는 방법에 대해재잘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진작 해줄걸.'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냥 넘어갈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미안해졌다. 좀 더 부지런하고 감성이 풍부하고 따뜻한 엄마였다면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즐거울 텐데. 괜스레 미안해지는 밤.
"소이야, 엄마가 사진 찍어줄게! 옆에 서봐!"
사진이라는 말에 알아서 포즈도 취하는 딸. 깜찍한 표정과 포즈로 우리가 함께 만든 트리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을 한껏 드러내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하길 잘했다. 마감에 쫓기듯 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만든 크리스마스트리이지만, 만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고 만들고 다시 정리하는 일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지만, 내년에도 다시 트리를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달라지는 귀여움을 보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번거로움은 감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