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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Nov 11. 2023

나는 무엇이 두려운가

이놈의 유치원 선택이야기: 완결편

어제가 유치원 우선모집 등록 마감일이었으니, 어쨌거나 결정은 내려졌다. 정말 별 것 아닌 일로 머리를 싸매 고민하느라 에너지를 다 쓰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어찌나 하루종일 이에 대해 생각하고 골몰하는지 관련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면 휘리릭 한 편의 글이 완성될 지경이다. 그러니 오늘도 완결판이라고 생각하고 이놈의 유치원 선택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등록 마지막 날인 어제도 하루종일 고민을 했다. 놀랍게도 마지막까지 고민을 거듭하게 만들었던 복병은 어제 글에 등장했던 몬테소리 기반의 성당유치원이 아니라, 우선모집에서 2 지망으로 합격한 유치원이었다.


큰 기대 없이 방문했는데 아이들을 향한 원장님의 마인드가 훌륭하고 누리과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방과 후 특성화 수업도 알차게 구성되어 좋은 인상을 받았었다. 오랜 전통이 있는 만큼 시설은 군데군데 세월이 느껴졌지만 회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는 점이 이 모든 것을 상쇄할 만큼 위치적 이점이 탁월했다.  


이 유치원이 갑자기 2순위로 급부상 한 이유는 나의 글쓰기 메이트이자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아는 동생의 예리한 질문 덕분이었다. 그녀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언니 바람 말고, 둘 중에 소이랑 어디가 더 잘 맞아?"


오호라. 나는 이 질문 앞에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랬더니 몬테소리 기반의 성당유치원에서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교육내용은 아이가 '잘했으면' 하는 것들이었지 '좋아하는' 것들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실로 놀라운 수확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자 회사 앞 유치원이 유력한 후보로 급부상했다. 자유놀이를 기반으로 하는 그곳은 놀이를 주도하고 흥이 많은 우리 아이에게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회사 앞이라니. 무슨 일이 생겨도 바로 달려갈 수 있고 등하원도 수월해진다. 거기다 지금 어린이집에서 친하게 지내는 남자아이 두 명과 함께 갈 테니 적응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윗 층에서 근무하는 남편과 의논을 하고자 두 번을 불러냈다. 두 번 다 남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처음 생각대로 1 지망 유치원에 등록하자는 것이다. 그의 말이 전부 맞았다. 이럴 거면 왜 1 지망으로 그 유치원에 넣었으며, 단합대회 당일 왜 그렇게 숨 가쁘게 서류를 준비해서 조건을 맞췄느냐는 것이다.


 는 말이고 다 이해가 간다 말했다. 그렇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니, 매몰비용이라고 생각하자고 했다. 상기된 표정으로 상한 마음을 토로하던 남편의 태도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회사 앞 유치원에 보내도 나는 상관은 없어. 그렇게 되면 우리가 편하겠지. 그렇지만 나에게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여전히 1 지망 유치원을 고르겠어."




나는 급기야 맘카페에서 우리 동네에서 아이를 1 지망 유치원 보내는 분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채팅을 보냈는데,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분은 이 정도 거리라면 멀지 않다고 생각했고, 추가합격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입학시켰다고 했다. 보내시면서 가장 만족스러운 것 한 가지만 꼽아달라고 부탁드리자 '선생님'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옳거니. 그 말이 참 안심이 되었다.


몇 사람을 더 괴롭히고 나서야, 결정은 1 지망 유치원으로 내려졌다. 등록 버튼은 오후 6시까지만 누를 수 있었다. 버튼을 누르고 창을 닫았다. 음이 흔들릴 때마다 아침에 정리한 '우리 아이 성향과 잘 맞는 이유'를 읽어보았다. 옳다. 옳은 선택이다.




회사 과장님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되어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남편이 우리의 상황을 말했다.


"그카면 회사 앞에 보내라. 유치원 다 똑같다."


6시 2분이었다. 이미 결정은 끝났다는 말에 멋쩍은 듯 덧붙이는 말이 돌아왔다.


"우리 회사 맞은편 골목 올라가는 거기 말이가? 아 거 보다는 앞산 앞이 낫지 싶다. 내 졸업한 OO유치원 보내지 그랬노! 우리 누나랑 랑 다 거기 나왔다."


그곳은 입학설명회에 참석한 뒤 실망한 부분이 있어 미련이 없던 곳이라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밤새 잘 한 결정일지 확신이 서지 않아 뒤척였다. 왜 마음이 편치 않을까. 도대체 나는 무엇이 두려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명품교육'을 시키는 '극성 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다. 이번에 입학하게 될 곳은 교육에 관심이 많고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있는 엄마들이라면 다들 눈독을 들이는 곳이다.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집단에 들어가게 되는 것 같아 그동안 그토록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다.  왠지 자신이 없었다.


책을 읽으려고 해도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 잠을 자고 있는 남편의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럴 때면 고민과 걱정이 없는 그의 단단함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하면 되지. 그걸 왜 못하노. 얼마 안 멀다."


맞는 말이다. 인간 적응의 동물이라, 하면 될 것이다. 왠지 마음이 차분해졌다. 게다가 우리 아이도 꽤나 '영특한 아이'라는 생각을 하자, 엄마인 내가 발달과 교육에 지금보다는 좀 더 관심을 쏟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엄마들과 교류를 하게 되면 분명 얻는 것도 많을 것이다.

결정은 내려졌다. 무엇보다 아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잘 버텨주어야 한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부지런하게 아이를 돌보아야 할 것이다. 문 밖에 사자가 있다고 해서 웅크리고 두려워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을 열고 나가기가 정 두렵다면, 싸워서 이길 만큼의 힘을 기르면 된다. 내가 강해지는 길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해내고 나면 분명 뿌듯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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