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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달 Sep 07. 2023

뭐 해?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작가님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보고_



사랑이란 빛이 쉽게 바랜다. 할퀴고 흠집 나면 금방 제 색을 잃어버리고, 먼지가 쌓이고, 더 이상 쳐다볼 수도 없이 흉물스럽게 변한다. 결국은 마음속을 아름답게 범람하던 거대한 사랑은 조그맣게 찌그려져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된다. 그즈음, 사랑은 나를 할퀸다. 잔뜩 부수고, 흠집을 내어 상처가 나게 한다. 상처받아 마구 칼을 휘두르는 사랑을 애써 방치하다 쫓아낸다. 쫓겨난 사랑, 아직도 아물지 않은 나의 피부는 재생이 되기까지 그것을 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는 사랑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지만 또 다른 누구를 기어코 사랑해내고 만다.



사랑이란 변덕. 나와 사랑은 몇 번이고 결별했지만 우연이든, 필연이든 만나게 되어 또다시 똑같이 반복한다. 사랑, 그래 사랑은 지겨운 거랬지. 그런데도 나는 또 누군가를 사랑하고 말 거야, 그렇지 않으면 상처받을 수가 없잖아. 상처를 받아야 시간이 지나는걸.



이 책에서의 이석원 작가님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사랑을 상처 주고, 그의 사랑은 또다시 그를 할퀴었지만, 또다시 사랑을 한다. 연애는 재수 없는 것일까? 막상 마주치면 절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용케도 요동치게 만드니까. 우리는 친구라며, 남녀 사이에도 친구는 존재한다며 둘러대는 친구를 보고 ‘사귀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이란 그런 거니까.



이석원 작가님은 김정희라는 자신보다 10살 어린 정신과 의사를 만나면서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랑은 성인적인 면모를 지닌다. 둘 다 이혼을 했거나 하는 중이었던 것. 이미 사랑에 수많은 상처를 받고 주었던 사람들이라는 둘의 공통점인 회색빛 빛바래는 사랑에 오히려 희망을 갖고 가깝게 된다.



그러나 김정희라는 여성은 화자(이석원 작가님)에게 기묘하고 예측할 수 없는 만남을 자꾸 제안한다. 연락을 받지 않는, 자신만이 연락을 할 수 있다는 듯의 제스처와 심지어 몸을 몇 번이고 섞었는데도, 관계 중에 꼭 잡았던 손을 잠자리 아니면은 내어줄 생각이 없다. 아니, 심지어 ‘종종 만나 몸은 섞지만 사귀는 커플에서나 하는 모든 행위는 하지 않는 관계’를 제안한다. 화자는 당황스럽지만 일단 받아들인다. 어쨌거나 기가 차지만 나쁠 거 없다는 생각.



그러나 통제할 수 없는 사랑은 흘러넘쳐 티를 내고 만다. 화자는 연인을 하자는 은연 중의 마음을 비춘다. 그런, 연인인 듯 연인 아닌 둘은 마음보다 몸이 앞선 관계를 맺으며, 수많은 갈등과 사건을 겪는다.



많은 사랑과 인간관계를 맺었다고 항상 능숙한 것만은 아니다. 여물지 못한 농익음은 과거의 지난 아픔들만을 회고하며 시험하듯 또 누군가를 만난다. 처음에 사랑인가? 싶은 의문이 피어날 때쯤 회피한다. 초반에는 아름답겠지만 마지막 끄트머리에서는 그 누구보다 추한 꼴이 되어 서로를, 아니 나 자신을 좀먹을 거니까. 사랑하면서 느낀 행복보다 상처로 인한 괴로움이 더 강렬하니까. 머릿속에 더 남아버리는 거다. 근데 진짜 사랑은, 연애는 오직 상처뿐일까. 상처뿐인 사랑은 과연 사랑일까.










과거에도 그랬듯이 현재에도 그럴 것이라는, 일종의 빅데이터적 접근으로 인해 화자(이석원 작가님)와 여자주인공 김정희는 '연애'회피한다. 그래도 당신과 행복할 잠깐은 누리고 싶은데. 지난 과거들로 쌓여온 노하우나 경험이 꼭 들여 맞지는 않다. 그들의 과거는 현명함을 준 값진 원료이기도 하면서, 섣부른 판단으로 앞으로의 미래를 속단하게 만드는 유일한 근거이기도 하다.


 

옳다고 믿었던 것들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겪기 싫다고 내세웠던 판단들이 전부 오답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방어는 서로가 아닌 나를 위한 것. 뜨거웠던 과거를 이유로 명료하고 간단한 방법을 찾은 듯했지만, 상처 없는 사랑이 어딨을까. 농익은 것이 언제나 좋은 답을 내놓진 않다.



나를 지키면서도 쾌락은 누리고픈 마음에 옳다고 생각한 판단은 기가 막히고, 어이없고, 이래도 되나 싶은 것들이었음을, 사실상 알고 있어도 자꾸만 눈감고 싶었던 나날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미묘하고 복잡하고 납득시키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감정을 삼키는 것에 능숙해졌다고 믿고 있었지만, 우리의 사랑은 매번 새롭다. 그러면-삼킨 것이 역류할 수도, 그대로 소화될 수도 모르는 일이지만-몸을 웅크려 연락조차 망설여지는 간질거림에 가끔은 속아도 되지 않을까. 사랑에 괴로움이 필수라면.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라면. 괴로움에 당해놓고도 싱긋 웃을 수 있는 사랑이라면. 몇 번이고 된통 당해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까.










뭐 해?


라는 문자를 받는 순간, 굳건히 흔들리지 않았던 마음이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래, 그 잔인한 요동에 껌뻑 속아 잔뜩 상처 입어야 사랑을 하겠지.


그래도 답장은 해야겠지 않을까,라고 든 순간 뇌 속에 박힌 사랑의 파편들,


상처받아도 또 사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었어.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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