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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달 Feb 18. 2024

너의 난처함에 때아닌 위로를 얻으며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눌 수 있는 것들



상담사를 하고 싶다고 설치던 때도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라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의 긴 우울 덕에 삶의 힘들고 모난 부분만큼은 폭넓게 향유했었고, 그렇기에 공감대나 해줄 솔루션도 또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런 이유로 인진 모르겠지만, 종종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때가 잦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더 많이 들을수록 말수가 없어졌다. 초반에는 이러쿵저러쿵 친구의 마음을 짐작하며 뭐라든 말했는데 (그것도 꽤나 유려하게) 그러나 이제는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럽고 이따금 무서웠다.


나와 타인이 절대로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사실 그게 우리의 모든 것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대부분일 수도 있다. 우리는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다른 가정환경을 겪고, 다른 경험을 했다. 어쩌면 같은 상황에 같은 경험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동안 켜켜이 쌓여온 실낱같은 경우의 협소한 경험들 때문이라도 인간의 감정은 모두 다르다. 대체로 단란하고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과, 위태롭고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같은 상황을 겪고도 다르게 생각하는 것과 같이. 굳이 이런 양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미세한 차이만으로 우리는 확실히 다르다. 보잘것없이 보이기도 할 정도로 사소한 부분부터, 당분간의 삶을 결정하는 큰 부분까지, 면밀하게, 모두.


우리가 완전히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이 이렇게도 아주 오랫동안 쌓여가는데 감히 나의 경험으로 널 재단해도 될까. 네가 꺼낸 단상으로 너의 우울을 보살펴도 되나. 주름처럼 어쩔 수 없는 우울이 있고, 지문처럼 불변하는 기억이 있다. 네 흐느낌에 새어 나오는 암울한 말을 들으면 그런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그렇다고 네가 부서지는 걸 차마 내 눈으로 볼 순 없는 걸. 나는 네가 아프지 않기를 원하는데. 어쩌면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던 내가 잠깐 너에게 특별해진다고 해서, 내 말이 너의 감정과 상황을 전부 해결할 수는 없을 텐데. 그렇지만 친구가 우는 걸 두고 볼 순 없어서, 하고 싶지 않던 뻔한 위로의 말만 했다. 괜찮아. 다 나아질 거야. 힘내. 무기력해진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나아질 보장이 없잖아. 힘을 내기엔 이제껏 힘 꽉 쥐고 살아왔는데, 또 그런 고통을 쥐여주긴 싫다. 그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올 리가 없는걸, 사실 내가 제일 잘 안다.


나의 상황을 회고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여의치 않은 상황을 말하고 무엇을 기대했는가. 잘 모르겠다. 그냥 들어주는 것도 충분했다. 싱거운 위로라도 나를 생각해 주는 게 고마워서 별로 도움 되지 않는 말도 도움이 되었다고 전했다. 사실 정말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다르기에 나의 마음과 정확히 합치하는 감정을 가질 리가 없는데도, 넌 항상 나를 위해 답 없는 풀이 과정을 쓰고 있었다. 변변히 그래왔지만 난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그러나 넌 항상 나를 위해 틀릴게 뻔한, 영원한 난제인 나를 풀려고 애쓰고 있었던걸 알면 조금은 안심됐던 기억이 있다. 날 사랑해 주는구나. 그런 어리숙한 안전함.


그래. 난 힘들고 그게 한순간에 바뀔 리도 없고 또다시 똑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네가 날 위해 풀었던 수많은 난제를 생각한다. 무엇이든 해주고픈 마음에 미안한 표정으로 건넸던 싱거운 위로를 기억한다. 단순하고 명쾌한 답보다 너의 어쩔 줄 모르는 당황함에 때아닌 위로를 얻으며, 또다시 거대한 우울감 앞에서 끝없는 투쟁을 한다.


너는 울기도 하고 토해내기도 하고 한없이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네 발개진 얼굴을 보며, 비슷한 농도로 부어오르던 내 뺨을 생각한다. 네게 해줄 말이 없지만, 난 여전히 너를 위해 닿지 않을 싱거운 위로를 할 것이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그러다 보면 너도 내가 항상 곁에 있다는 걸 가끔은 알지 않을까. 무엇이든 용서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걸. 그저 나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어쩌면 유려하고 화려한 말들보다, 뻔한 말이라도 나를 위한 진심이 담겨있는 위로가 와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며-


숨소리조차 전쟁 같은 현실 속에서 틈 없이 적요한, 그러나 사랑만큼은 요란한 말들이 더 위로가 될 수 있다고, 그렇게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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