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나는 사랑을 '어떤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이 관계를 지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어떤 맹세보다 중요한 사랑의 태도가 짧은 그림책 안에 깊고 빼곡하다. 책을 펼치려고 애쓰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온라인상에서 주로 쓰는 이름은 '둥글게'이다. 많은 사람이 동요 제목으로 착각하지만, 이상은 노래 제목이다.
꽃을 밟지 않으려 뒷걸음을 치던 너와 부딪혔어.
함께 웃음이 나왔어
하늘이 투명해서 너도 빛났지
- 이상은 작가 작곡, <둥글게>, 2005
가사를 처음 접했던 날,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내 그 가사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내 맞은 편에 바로 그 사람이 있었다.
오나리 유코, <행복한 질문>
36p.
대런 맥가비는 <가난 사파리>에서 독자에게 한 가지 태도를 제안한다. "나는 우리가 먼저 정직해지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혁명은 없을 것이다. 우리 평생에는 없을 것이다. 이 체제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갈 것이고 우리도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한때 정치권력이나 체제가 바뀌기를 '순진하게' 기대했다. 이제는 그저 일정 부분 망가진 울퉁불퉁한 길을 일단 걸어가본다. 내면의 힘을 발견하고 기르는 편에 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려 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힘은 누군가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빈곤은 이런 방식으로 산업화되었다) 나에게도 있다는 걸, '가난한' 우리도 이 세계의 일부이고 책임 있는 구성원이자 시민이라는 걸 믿으면서.
75p
"하나만 물어도 될까? 어떻게 그 스캔들을 극복했어?"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p
책에는 '질문'이 있다. '실마리'를 잡는다면 그나마 나쁘지 않다. 정답은 여러 개이며 결국은 내가 써야 한다. 하지만 이 문장만큼은 내가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한 발 떼는 데 큰 위로가 됐다. "왜 내가 이걸 하고 있는거지?' 내 대답은 늘 같습니다. '안 될 게 뭐 있어?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고 지금 나 말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그리하여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 당부하게 되는건 언제나 결과보다는 태도다. 내가 잊지 않으려 하는 건 이런 것들이다.
"답이 없다 말하는 순간 답은 사라진다. 나는 무관하다 말하는 순간 답은 없어진다." 그래서 양창모는 '하나의 답'이 되기로 했다. 제도는 언제나 사후적이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내는 변화는 거저 오지 않는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애써 일궈 가야 한다. "질문들의 대부분은 정답이 없다. 정답을 찾아가는 최선의 과정이 있을 뿐"이라 양창모는 구멍 난 의료 시스템을 메우고, 넓히고, 나아간다. 시스템을 탓하는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찾고 안 되는 이유는 고치고 개선하면서,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꼭 그만큼을 해낸다. 그의 말마따나 " 새로운 세상이란 장소가 아니라 행동"이다.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는 그 행동 위에서 써 내려간 기록인 동시에 초대장이다.
??p
목적 없이 쏘다니다 돌아와 펼친 책에서 낯선 단어를 만났다. '프릴루프츨리브'. 노르웨이어로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야외 생활'이라는 뜻이다. 신선하다, 공기, 마시다, 야외, 생활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니. 글자를 따라 발음하며 작게 감탄했다.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육체와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철학"이 담긴 단어라고 했다.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두 발의 고독>은 안식월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 중 한 권이었다.
p. 241
허은실 시인, <내일 쓰는 일기>
40대는 책을 버리는 시기라 생각한 적이 있다. 꼭 그때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한번쯤 그런 순간을 맞는다. 지금껏 자신이 믿은 것과 기댄 것, 지킨 것의 목록 앞에서 건조하고 회의적인 얼굴로 책을 솎아 내는 순강늘, 40대는 그간 자신이 읽은 책에 자기 삶을 포갠 뒤 한번 더 진지하게 '어떻게 살 것인가?' 묻는 시기다. 그리고 이즈음 많은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한다. (...)
그러니 많은 이들이 이미 알거나, 안다고 착각하는 이야기를 한번 더 보게 하고, 읽게 하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 지난함을 알면서도 무언가 계속 발화하는 이들을 본다. 장일호도 그런 이중 하나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온전하고 모결한 화자가 아니며, 이따금 "술병 뒤에 숨는", "아픈 게 자랑인"기자이고 여성이다. 그래서 내게는 이 책이 '독서'로 한번 자기 자리를 세웠던 이가, 인생의 예기치 않은 사건 앞에서, 책 속에 말들이 다 무너지는 걸 목도하고도 '다시 책 앞에 선 사람의 이야기'로 읽혔다.
더불어 이 책은 사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다 아는 말'이란 없으며, 그런 '앎'은 앎이 아니라고, 그러니 이웃뿐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새 말이 지나가는 길을 함께 터 주고 넓혀야 한다고 일러 준다. 가끔은 그 일을 '독서'라 불러도 좋다고 조용히 끄덕이면서. 그 발화가 고맙다. 한두 번이 아닌 누군가의 일생에 걸 친 발화라 더 그렇다.
김애란의 추천의 말 중 / 253-25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