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재일조선인의 슬픈 역사, 연극 <이카이노 바이크>

경계인들이 함께 써 내려간 생존의 연대기

by 소행성 쌔비Savvy


오래전에 이 작품을 보았다. 배우들의 열연이 슬픔을 배가시키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쓴 작가의 신분 혹은 정체를 알고 난 이후로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이 작품은 재일조선인 김철의 작가가 썼다. 그는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국적은 북한인 재일조선인으로 작가이며 배우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한국에서 초연되었을 때 자신대신 등신대로 인사를 했었다. 북한 국적자로 한국 입국을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종종 한국에 오고 공연도 하며 일본의 한국인 그리고 경계인의 삶을 다루는 작품을 계속 발표한다.


이 작품은 제주에서 4.3 항쟁의 여파를 피해 일본으로 간 재일한국인들의 이야기이다. 오사카 이카이노, 현 이쿠노 구의 일부 지역으로 ‘돼지를 치는 곳’이란 뜻을 뜻을 지닌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동네다. 이곳에서 모여 살던 한국인 2대에 걸친 이야기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으로 재일 한국인이 아닌 재일 조선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중삼중의 아픔과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이중엔 고향은 못 가더라도 우리나라엔 가겠다는 마음으로 북송선을 탄 사람도 적지 않다. 수창은 그중 한 사람이다. 수창의 절친 경우는 수창을 그리워하며 일본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그러나 자식들은 여전히 조선인 학교에 보내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한다. 김철의 작가는 경우의 아들에게 자신을 이입시키지 않았을까 한다.


변영진 연출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배우들의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시킨다. 이 작품도 역시 그랬다. 구르고 넘어지고 맞고 때리고 달리고 소리 지르고 울고 웃는다. 극이 끝날 때쯤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머리카락엔 별도의 헤어 제품을 바르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젓어 스타일링이 될 정도다.


배우들의 이런 큰 연기는 오히려 슬픔을 배가 시킨다. 흡사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보여 깔깔대며 웃다가 쏟아내는 대사를 들으면 코끝이 찡하게 울린다.


무대엔 어설프게 만든 바이크 한대만 있을 뿐 어떤 장치도 없다. 나머지는 모두 배우들이 채운다. 무대는 1950년대 이카이노와 1990년대 서울로 연결된다. 스이타사건(일본에서 벌어진 반전운동), 재일동포 북송사업, 재일 조선인 학생들의 절망 등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니 한 편의 역사 드라마라 해도 좋다.


좋다. 알아야 하는 일이고 공감해야 하는 사건이다. 이 슬픈 역사를 변영진 연출은 또 멋지고 소란스럽게 풀어냈다.


프로그램 끝에 이렇게 쓰여있다.


“연극 <이카이노 바이크>는

고향을 잃은 자들의 이야기다.

떠밀려 돌아온 일본인과,

돌아갈 수 없던 조선인.

두 상실이 충돌한 이카이노.

그곳에서 망명은 일상이 되고,

도망은 저항이 된다.

이 작품은, 국적도, 뿌리도 없는

‘경계인들이 함께 써 내려간 생존의 연대기다.”


김철의 작

변영진 연출

문성일 정명군 김보정 이주순 박도연 김대일 심우성 신대열 출연

불의전차 작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 증발되기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