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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매듭 Jan 03. 2024

<The Whale>을 보고

상실과 절망 속에서의 깨달음

*약스포를 포함하므로 원하시지 않는 분들은 뒤로 가기를 부탁드립니다


고래 묘사만 잔뜩 있는 챕터들이 유독 슬펐다.
자신의 넋두리에 지친 독자들을 위한 배려인 걸 아니까.  —The Whale — 



예전부터 보고 싶었지만 차마 기회가 되질 않아 묵혀만 두었던 <The Whale>을 봤다.


제목처럼 '고래'를 연상시키는 거구의 주인공을 포스터로 해서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첫 시작은 노트북 화면에 비치는 학생들의 모습과 가운데 화면만이 흑백으로 뒤덮인,

웹캠이 고장 난 '강사(브랜든 프레이저)'의 목소리로 시작을 하며 꽤나 담백하게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거구의 주인공을 필두로 주변인물들의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며

스토리가 이어지는데 생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낀 주인공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딸을 초대하며 일어나는 해프닝을 담담하게 담아낸 영화라고 생각한다.


왜 주인공이 그런 거구가 되었는지 이유부터 딸과 재회과정에서 느껴지는 어색하고 불편한 공기와

또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태도,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까지. 거창한 얘기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한 편의 연극을 보듯이 그 인물에 집중하여 얘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 서사에 힘을 더 실어주지 않았나 싶다.


<The Whale>에서 등장하는 배경은 그저 주인공 '찰리'의 집 내부와 간간히 창문으로 보이는 집 앞 풍경,

그 외에는 없다.

집안의 배경은 창문에 비치는 바깥과는 다르게 일관적이며 전체적으로 답답한 느낌을 주며

아마 그의 거구적인 모습도 한몫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치 누가 가두기라도 한 듯이 굳게 닫혀있는 그에게도 그를 찾아주는 지인(리즈)이 있었고, 그 지인의 도움으로 그는 그렇게 삶을 연명해가고 있었다.


그 생의 시간이 사그라들기 직전에 후회로 점철된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오랫동안 머뭇거리기만 했던 딸에게 연락하여 딸에게 '작문을 완성하면 돈을 주겠다'는 핑계로

딸을 불러들여 이야기도 듣고, 또 마지막으로 딸을 보고 싶은 마음도 컸기에 그런 용기를 내었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먹을 때 보이는 탐욕적인 눈빛뿐 아니라 공허한 눈빛연기, 음식을 기계적으로 입에 쑤셔 넣고 씹지도 않고 삼키는 그런 '찰리'를 연기한 브랜든 프레이저의 연기가 정말 본인에게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세상에 그런 인물이 존재하듯이 연기하는 그의 모습에 대단하다고 느꼈다.


몇몇 대사들은 정말 기억에 남기도 하는데, 어쩌면 우리도 세상을 살며 한두 번쯤은 들어봤던 말들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타인에게 무관심할 수 없다고  ............... 사람은 놀라운 존재야(찰리)"

"제발 진솔한 글을 쓰세요.(찰리)"

"누가 누군가를 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리즈)"


찰리는 '구원' 단어를 믿지 않았지만 결국 '딸'과의 서사들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게 되었고,

주인공조차 포기했던 자신의 삶을, 선택을 묵묵하게나마 지켜주었던 지인(리즈)과 딸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자기 연민과 혐오로 시작하여 구원으로 끝난, 주변에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이 있었던 그의 삶은

불행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 공간 안에서 거의 대화로만 이어지는 정적인 영화이기에 어쩌면 너무도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 곱씹을수록 괜찮다고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수미상관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빅터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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