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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 기 홍 Oct 16. 2024

벅수 12화 잡았다! 이놈.

12. 잡았다! 이놈.     

   부동길이 합류시킨 흥신소 탐정들은 감탄할 정도로 맥을 짚어갔다. 그들은 첫날 4인이 별개로 흩어져 활동한 뒤, 이튿날부턴 2인 1조로 수색 구역을 정리해 갔다. 부동길이 그들에게 제공한 단서는 극히 미미했다. 납치한 임신부들 때문에 거점이 필요할 거란 것과 장인옥이 속초에서 기습해 왔을 때 선글라스를 착용했다는 점.  그리고 대략적인 구역을 지정하면서 동공의 상태를 말했고, 우물은 언급하지 않았다. 탐정들은 실밥 하나도 어려운 허상의 꼬투리를 바탕으로 탐문 수색 5일 만에, 부동길과 장춘호를 카페 테이블에 앉혔다.

“부 형사님. 놈들을 찾은 것 같습니다.”

4인의 탐정 중, 리더 격인 강태호가 조개형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줬다. 역광이 들어 뿌연 화면을 부동길은 휴대폰을 들고 일어서 손바닥으로 가렸다. 머리를 디민 이는 당연히 장춘호였다. 사진은 낮과 밤이 여러 컷으로 찍힌 허름한 건물이었다. 두 사람이 실눈으로 사진에 집중하고 있을 때, 냉커피를 반쯤 마신 강태호의 부연 설명이 곁들었다.

“세운 상가 서쪽 방향 청계천 뒷골목입니다. 소규모 철강, 전기 업체들이 대부분 이주를 마친 골목인데, 그중, 빈지가 꽤 돼 보이는 2층 건물입니다.”

강태호는 그들이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냉커피의 빨대를 입에 넣었다.

“태호야! 여기, 종로와 청계천 중심으로 대충 약도를 그려봐.” 

동길은 작은 노트를 꺼내 펜과 내밀었다. 한 볼 가득 냉커피를 빨아들인 강태호가 쓱쓱 대략적인 지점을 그렸다. 광장시장과 세운상가는 특정 표시로, 청계천의 물길과 큰 화살표는 시청과 동대문 방향이었다. 그리고 까맣게 색칠한 그가 말한 의심 장소. 약도를 유심히 보던 부동길과 장춘호의 오간 눈길 뒤엔 옅은 미소가 남았다. 까만 점의 위치가 김준석이 예상한 지역과 얼추 비슷하다는 기대감이었다.

“여기가 마전교, 그리고 새벽다리. 배오개, 이 지점은 한창 공사 중이겠네?”

“왜요? 바로 촉이 와요?”

강태호는 자신 결과물에 호응을 보인 둘에게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젯밤에 직접 확인했습니다. 비록 선글라스를 벗은 한 놈이었지만, 필이 팍 오더라고요. 그자 사진을 보면서 얘길 들으세요.”

주저함이 없는 확신은 나름의 뚜렷한 정황 근거를 토대로 설명되었다. 그는 가장 기본적인 식(食)에 관한 것부터 읊었다. 다수의 임신부와 그들은 반드시 먹는 것을 해결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모든 편의 시설이 끊긴 공가 지역에선 불가능했기에, 어디선가 조달해야 했을 터, 인근의 식당을 주목했다고 했다. 비록 넓은 지역이 개발로 공가가 되었지만, 반대편 지역은 아직도 원활한 생산과 판매의 상권이 살아있었다. 강태호는 근방의 골목골목 숨어있는 초미니 식당까지 샅샅이 수소문하던 중에, 의문의 배달지를 기억하는 식당 직원에게 단초를 얻은 것이다. 그녀는 텅 빈 공가 입구에 일주일 동안 3번을 배달 간 적이 있었다고 했다. 주문자 대면 없이 빗물 배관 뒤의 돈만 가져왔다며, 주문량 또한 혼자 배달이 버거운 기본 5인분, 때때로 7인분까지. 이상한 점은 가끔 그와 비슷한 메뉴와 양을 직접 가지러 온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항상 선글라스를 착용한 어두운 표정의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기다리다 값을 지불하고 가길 반복했었고, 그가 다녀간 뒤엔 식당 주인과 그녀는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꼈다고 했다. 단지 그곳뿐이 아니었다. 다른 서너 곳의 식당 역시, 주기적으로 배달했던 그곳을 썩 내키지 않게 기억한다는 말이었다.

“과연 노숙자들일까요? 아님, 빈집을 떠도는 뽕쟁이들? 노숙자들이라면 돈은? 뽕쟁이들이라면 배달은 몰라도 직접 가져가긴 몰골이 금방 티가 날 텐데, 모험이겠죠? 그렇다면 남는 건 하나! 정상적인 사람들이란 말인데, 그들이 임신부들과 부 형사님이 찾는 놈들이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그 사진, 분명 겉으론 멀쩡한 놈입니다. 밤에는 창문을 가렸지만, 보시다시피 희미하게 불빛이 보이고.”

논리적인 추론이었다. 부동길과 장춘호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확인해 보면 알겠지, 강 사장! 수고 많았다. 이번에 큰 빚을 졌어.”

꾹 잡은 손에 홀가분하게 웃은 강태호가 일어서면서 한 마디를 더 보탰다.

“그런데, 하나 걸리는 게 있어요. 그 건물은 임신부를 잡아놓을 공간이 못 됩니다. 

죽든 살든 개의치 않는다면 모를까? 물도 전기도 끊긴 곳에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장기간 이런 더위를 버틴다? 더더구나 낡은 슬레이트 홑겹 지붕은 멀쩡한 사람도 하루면 응급실행인 거 아시죠?”


   빗물 배수관을 타고 2층 외벽 창가로 오른 장춘호의 긴장된 얼굴이 더러운 유리에 투영됐다. 꼬마 건물의 내부는 한눈에 살필 수 있을 만큼 협소한 공간이었다. 숨소리를 죽이고 공기의 흐름도 깨지 않은 장춘호는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들자, 창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구야!”

장춘호가 열어준 문으로 반쯤 들어온 부동길이 코를 틀어막고 오만상이 되었다.

“이게 다 뭐냐?”

대여섯 평 남짓한 바닥에 어지럽게 널린 배달 용기와 플라스틱 물병들, 한증막 같은 좁은 공간에는 남아 썩은 음식의 악취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이 새끼들, 진짜 짐승인가?”

부동길은 급히 장춘호를 밀치고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휴우! 후우!”

“강태호 말대로 여긴 임신부를 가둬 놓을 곳이 못 돼.”

“그럼, 저 많은 음식은?”

부동길은 쌓여 있다시피 한 포장 용기를 턱으로 가리키며 반문했다. 하지만, 그 역시 아니란 걸 직감한 터였다.

“가디언이 장인옥 포함해서 셋이라고 했어. 아마 두 놈, 아니면 세 놈이었겠지.”

“이틀 동안 낮엔 없었고, 밤에도 하루만 봤다고 했지? 또 다른 장소가 있는 걸까?”

“가능하지. 어쩌면 여긴 임신부를 가둔 곳이 아니라 대기 장소였는지 몰라.” 

장춘호는 볼 것 없는 실내를 다시 한번 살피고 부동길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먼저 내려가, 난 원래대로 해 놓고 창문으로 나갈 테니까.”

그는 동길이 나간 후에도 재차 실내를 확인하며 사소한 실마리라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처음 느꼈던 것 외엔 아무것도 얻질 못했다. 그는 들어온 반대 창문을 걸기 전, 빽빽이 이어진 지붕들을 멀리까지 바라보다가 입술을 씰룩였다. 지금 시야에 잡힌 곳 중 어딘가 똬리고 있을 캐이런. 김준석 외 누구도 본 적 없는 절망과 악의 화신. 그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젠 진짜 냄새가 난다. 아주 가깝게!’ 

     

   우 상길이 막아선 길목은 중앙통이 아닌, 다른 블록 사거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2층에서 봤던 쪽문 출입구와 연결된 곳이었다. 포목 진열대 옆엔 각각의 광장시장 입구를 지키던 팀원들 일곱 명이 같은 곳을 경계하면서, 쪽문과 연결된 건물 내부로 투입한 아홉 명이 토끼몰이 중이었다.

‘네 놈이 아직 그 안에 있다는 걸 안다.’

그의 확신은 병원에 후송된 용수의 휴대폰에 찍힌 얼굴 사진이 결정적이었다. 계단 위에서 찍힌 그자의 사진에서 강렬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왜? 어떤 이유로 감응하는진 몰랐지만, 그 느낌은 막연한 전율이었다. 또한,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절실함은 일종의 사명감이 되어 몹시 어색하기도 했다. 역시 몰랐다. 왜 그런 간곡함이 강하게 솟구치는 건지. 속초 별장에서 장인옥과 혈투 후부터 생긴 변화란 것만 어렴풋했다. 

“와장창!”

그때였다, 입구의 유리문을 박살 내고 떨어진 팀원이 우 상길의 발밑까지 굴러와 피를 토했다.

“우욱!”

그리고 나타난 검은 선글라스의 남자. 그는 등 뒤편 적들을 빠르게 돌아보고, 냅다 우 상길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그 순간. 상길의 손이 그의 발목을 낚아챘다. 그러자 가벼운 공중제비로 중심을 잡은 그가 쌓인 포목 위로 사뿐히 착지했다.

“크크크!”

빨랐다. 그를 향해 날아오른 우 상길의 발차기 타이밍이. 순식간에 정강이를 걷어차고 연이어 뻗은 주먹으로 안면을 강타하자, 남자는 컥! 하는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한 바퀴를 굴렀다. 벗겨진 선글라스로 드러난 그의 동공은 속초의 장인옥과 닮아 섬뜩했다. 다르다면 두 줄이 아닌 한 줄 세로 파충류 눈동자라는 것.

“크아아!”

웅크린 자세에서 곧바로 날아오른 남자의 손가락이 우 상길의 얼굴을 간발의 차이로 비껴가는가 싶더니, 다른 손의 날 선 손가락이 방심한 안면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윽!”

주춤주춤, 몇 발짝 후퇴한 우 상길의 귓등에서 금세 피가 튀었다.

“카아!”

진열된 물품들을 마구잡이로 던지며 또다시 달려든 남자는 어느새 우 상길의 코앞에서 쇠꼬챙이를 꺼내 가슴팍을 노렸다. 그러나 상체를 틀어 무위로 만든 상길이 그의 뒤통수를 내리치자, 남자는 피를 토하며 진열대 위로 굴러 떨어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 상길은 일어나려는 그에게 부위를 가리지 않는 맹타를 가했다. 그야말로 숨 쉴 겨를 없이 얻어맞아 허우적대는 팔다리가 점포 몇 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윽!-악!-아 악!-헉!”

그가 날아가 꽂혀 비틀대며 부딪친 진열대의 점포 주인들은 혼비백산해 가게를 뛰쳐나갔고, 인근 상인들과 행인들 역시 홍해 갈라지듯 하여 삽시간에 일정한 거리 밖으로 도망쳤다. 백주에 백 년 시장통을 뒤집은 살벌한 광경이었다. 상길은 무너진 포목에 기대 숨을 헐떡이는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와의 거리는 약 3, 4미터. 마지막 일격으로 그를 잡으려는 그가 차민주에게 신호를 하려는 그때, 괴성을 토한 남자가 득달같이 반대편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 악!-캭!”

미친 듯이 달려든 남자에 놀라, 구경하던 행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미노처럼 넘어졌다. 그 틈을 노린 남자가 산양의 절벽 타기처럼 높이 쌓인 포목을 넘고, 길을 달려 복잡한 중앙통으로 질주하자, 상길이 찰나의 반응으로 바닥을 차고 올랐으나 행인들의 안전을 우려해 멈칫했던 순간만큼의 거리가 벌어지고 말았다.

“잡아!”

차민주의 외침은 본능적인 포위망으로 순식간에 팀원들을 양방향으로 몰았다.

“크아아!”


   주말의 인파로 미어터진 중앙통을 달리는 남자에, 음식 좌판에서 난데없는 날벼락을 맞은 손님들이 기겁해 넘어지는 바람에 음식들이 그릇과 함께 나뒹굴었다. 

“아 악!-엄마야!”

간발의 차로 뒤를 쫓는 우 상길은 그 순간, 남자가 뛰는 방향에서 꿈틀거리는 무리를 보았다. 검은 머리들이 들쑥날쑥 전방의 상황에 고개를 드는 모습은 공사장의 타르 거품이 끓어 터지는 가마솥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무섭게 득시글대는 머리통들. 

‘저 속에 묻히면 놓친다.’

그때였다, 쫓던 측면에서 뛰쳐나온 차민주가 남자의 어깨를 채고 공중에서 떨어졌다.

“쿠당탕!”

“카악!”

차민주가 남자를 끌어안고 떨어진 점포는 중앙통의 노상 실비 횟집이었다. 사방으로 날아오른 회 접시와 술병들이 박살 나면서, 생글생글 회를 썰던 여주인도 칼을 내던지고 구석으로 주저앉아 머리를 감쌌다. 수조에 이마를 찧어 안면에 피가 흐르는 남자를 마주한 여주인의 경악한 표정. 그녀의 발버둥으로 회칼이 그의 손에 닿았다.

“칵!”

“악!”

피와 침이 범벅인 남자의 칼이 찍은 것은 차민주의 손등이었다. 회칼은 예리함을 보여주듯 손쉽게 손바닥을 뚫고 좌판에 날 끝을 삐죽거렸다.

“아 악!”

“카아악!”

세로의 눈동자가 찰칵이며 두 번째 칼부림이 구부린 차민주의 볼을 향하는 아찔한 그 순간.

“퍽!”

“끅!”

체념한 차민주가 질끈 눈을 감을 때, 칼보다 빠른 우 상길의 발길질이 남자의 옆구리를 걷어차 버렸다. 

“끄으악!”

고꾸라진 그가 떨어뜨린 칼이 상길 앞에서 팽그르르 돌아갔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칼을 집어 사정없이 등에 쑤셔 박았다. 섬찟한 눈빛의 다음 행동은 남자의 허벅지였다. 등에서 뽑은 칼끝에 딸려 온 핏물이 솟구쳤음에도 불구하고 칼자루를 고쳐 잡는 잔혹함으로 사정없이 찔러 넣었다. 분명코 지켜보는 이들에겐 그는 악귀였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살인귀의 탈을 쓴 인간. 그러나 우 상길의 심장은 달랐다. 절대 살려 둬선 안 될 존재라는 애초의 생포 목적을 무시하고 있었다. 

‘쿵쾅! 쿵쾅! 쿵쾅! 쿵쾅!’

“끄그극!”

온몸에 선혈이 낭자한 남자의 기괴한 눈이, 좌우로 철컥거리며 우 상길을 보고 있었다. 이어서 터진 수많은 구경꾼의 적대적인 야유. 유혈 낭자한 남자의 무력한 모습이 이유를 막론한 동정의 대상이 된 것이었다.

“우!-우!-우!”

그들이 적극적으로 관여하기엔 상길의 서슬 퍼런 눈빛과 표정은 냉랭한 얼음장이었다. 쓰윽! 야유에 잠시 멈칫했던 칼끝이 남자의 심장 위 옷에 닿았을 때, 신음하며 지켜보던 차민주가 그를 말렸다.

“팀장님! 일단 끌고 간 다음에.”

수십 명의 휴대폰 카메라를 의식한 만류였다. 때와 장소, 그리고 SNS의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는 그는, 지금까지의 소동이야 실장의 영향력이 커버하겠지만, 살인은 전혀 다른 문제였음을 우려한 것이다. 우 상길은 크게 숨을 몰아쉬고 주위를 돌아봤다. 

‘도대체 왜? 내 안의 거부되지 않는 실체는 뭘 바라길래, 살인을 당당하다고 여기는 걸까?’

찢어진 귓가의 출혈로 뻘게진 와이셔츠 깃과 눈동자인 그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회칼을 손에 들고 있었다. 야차가 흡사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겁에 질린 저 많은 군중에겐 신화 속 괴물이 자신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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