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잡힌 꼬리를 즈려밟고.
길거리 점포의 다닥다닥 붙은 지붕, 퍼즐로 엮인 골목길을 탐색하던 두 사람이 철퍼덕 엉덩이를 걸친 곳은 청계천 방산 시장 내, 노상 카페였다. 좁디좁은 길에 데크를 깔아 확보한 공간은, 달랑 의자 두 개와 작은 테이블로도 끝 선에 간당간당했다.
“근데, 부 형사? 왜 갑자기 적극적이야? 이 정도까진 아니었잖아?”
송골송골한 냉기의 촉촉한 손으로 빨대를 뽑은 장춘호가 감질났는지, 플라스틱 뚜껑을 벗기며 물었다.
“으아! 살 것 같다. 이 골목은 바람도 더 뜨거운 것 같아? 인쇄 골목이라서 그런가?”
“덜컹! 덜컹!”
불과 3미터 남짓 맞은편 인쇄소의 열린 문 안으로 쇼핑백을 찍어내는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단번에 냉커피 반을 들이켠 효과였을까? 어닝을 투과한 볕에 뻘겋게 분칠한 얼굴이 겨우 제 낯빛을 찾은 것 같았다.
“솔직히 긴가민가했는데, 부암동에서 현타가 온 거야. 사람 몸이 눈앞에서 나무로 변했잖아? 그때야, 소설이 아닌 현실임을 안 때가. 어찔하더라고, 내 아이의 세상은 정말 절대 선과 캐이런이란 악의 전쟁터가 되고, 결과에 따라….”
부동길은 초점 풀린 주술사가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드디어 위기를 느꼈구나, 저 사람들 봐? 아무것도 모르고 일 만하잖아. 하긴, 그게 다행일 수 있겠지만, 만약 절대 선을 구하지 못한다면 10년, 20년 후엔 영문도 모르고 줄줄이 자살하게 될걸? 그냥 죽는다고. 잘 자고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우울해 약을 먹는다든지, 멀쩡히 산책하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세상이 지옥이 되는 거지.”
“야! 주둥이! 안 그래도 동글이랑 말할 때마다 끔찍한 생각에 버벅대는데, 잡아야지! 아빠가 전국 탑, 혜화 경찰서 강력반 형산데. 그놈들은 분명 이 안 어딘가 있어. 청계천 골목 담을 몽땅 허물어서라도 반드시 잡고야 만다. 그만 일어서!”
두 사람은 장인옥 부하 중 하나의 동선을 따르고 있었다. 부동길이 창신동으로 민수를 데리고 간 다음 날부터 곳곳의 CCTV의 화면을 뒤져 어렵사리 발견한 자였다. 하지만 캐이런의 은신처인지, 장인옥인지는 특정하질 못했다. 부암동 계곡에서 김준석이 그리했듯, 캐이런 역시 외부와 다른 차원을 생성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그가 스스로 나오기 전까진 절대 알 수 없었다. 그 시점은 9월 9일이 되기 일주일 전, 그러니까 7일 전이다. 캐이런이 절망과 악의 화신으로 형체를 드러낼 수 있는 기간은 7일뿐이었다. 그 7일 동안 복중의 태아에게 날마다 의식을 변화해 영혼 정제를 시도하다가, 마지막엔 태어난 절대 선의 첫 숨결에 자신의 기운을 주입하는 것으로 영혼 말살을 꾀하고 있다. 그 안에 의식이 치러질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는 김준석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해 강인한 벅수인 만큼, 시간이 급격히 줄어든 지금으로선 쉽사리 접근하기도 위태로웠다. 인간을 위한 행위로 소진되는 시간보다 캐이런의 기운과 싸울 때의 감소는 급격하기 때문이다.
“장인옥은 홍길동처럼 전국을 들쑤시고 다닌다니까, 쫄다구 하나는 달았을 거야. 나머지 한 놈이 납치한 임신부들을 감시한다고 봐야지. 여기 방산 시장부터는 더듬다시피 훑어야 한다, 가디언이 말한 지역의 시작점이니까.”
장춘호가 앞서 골목 내 한 곳을 유심히 살피는 부 동길에게 붙어 힘주어 말했다.
“장인옥부터 잡아야 하는데, 뉴스에 나오는 사고가 다 그놈 짓일 거 아냐?”
“그렇다고 봐야지? 충주에서 역 주행한 어린이집 버스 정면충돌 사고도 그놈이 지나고 1시간도 안 돼서 벌어졌고, 단양에서 길을 가다 휘두른 칼로 행인 2명과 아이들을 사상케 한 사건도 경찰은 정신 질환이라고 했지만, 그때도 장인옥이 지난 지 10분 후에 벌어진 일이었어. 장인옥에겐 CCTV도 무용지물이니 그들로선 알 수가 없지.”
“씨발! 형사란 놈이 딴짓 거리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더럽네.”
“이해한다. 하지만 기운으로만 느껴지는 놈을 무슨 수로? 아는 사람은 선생님과 민수형. 그리고 나밖에 없는데. 자책 마라.”
“무슨 일입니까?”
그때, 장춘호를 갸우뚱하는 주인이 그의 시선을 막으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허락도, 양해도 없이 남의 사업장을 빤히 살피고 있는 그를 나무란 것이었다.
“아…! 예. 미안합니다. 뭐 좀 찾느라고.”
“그럼 물어봐야지? 그렇게 남의 집을 들여다보면 어쩝니까? 멀쩡하게 생긴 양반이.”
그는 기름때가 잔뜩 묻은 장갑을 벗으면서 코앞까지 다가섰다.
“가쇼! 괜히 치료비 달라 깽판 치지 말고, 전에도 허락 없이 들어와선 철판에 긁혔다고 주접을 떤 놈이 있었소, 저만 살기 힘드나? 멀쩡하게들 생겨 처먹어서. 쯧쯧!”
“잠깐! 잠깐! 사장님이십니까?”
그때, 건너편 철근 가공 공장을 살피던 부동길이 춘호를 몰아붙이는 남자에게 부리나케 신분증을 디밀며 뛰어왔다.
“혜화 경찰서 강력계 부동길 형삽니다. 사건 탐문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바쁘신 것 같으니, 한 가지만 물어보고 가겠습니다, 혹시 근래 수상한 사람을 본 적 없습니까? 가령, 빈 공장이나 점포에 드나드는 낯선 사람이 있다든가 하는.”
부동길의 신분증이 주머니로 들어감과 동시에 한층 누그러진 남자의 미간이 살짝 풀리면서 의례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 거 볼 정신이 어딨어요? 우리 일은 아차 하는 순간 사고 나는데. 거래처 아니면 죄다 낯설고 수상하지! 아까 말했잖소? 별, 깡깡이 같은 인간들이 부쩍 늘었다고.”
남자는 최소한 그가 경계한 날탕들이 아님에 안심한 듯, 주섬주섬 면장갑을 다시 착용하면서 컴퓨터 패널 앞에 섰다. 그가 터치한 노트북 크기의 화면엔 대형 철판이 자동으로 재단될 크기와 모양의 수치가 정밀하게 표시돼 있었다.
“사장님! 그럼, 하나만 더. 오래전, 이 근처에 우물이 있었다는데, 혹시?”
“우물?”
그는 몇 번을 터치한 패널 테두리를 짚고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절레거렸다.
“글쎄요. 이 자리에서 쇳밥 먹은 지 20년인데, 우물이 있단 얘긴…?”
“그래요? 들어본 적도 없단 말이죠?”
“부 형사! 그만 가지?”
“여하튼 덥고 바쁜데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니까 하는 말인데, 여기 위에 CCTV 하나 다시죠? 달면 깔끔하죠. 증거자료가 되니까.”
부동길은 돌아서긴 전, 패널 위를 가로지른 H빔을 가리키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어찌어찌 여기까지 쓸어보긴 했는데, 답답하구먼. 형사도 뭐 별거 없네? 쌍팔년도 하던 방식과 뭐가 달라? 개살구야, 개살구.”
길에서 주운 광고 전단으로 햇볕을 가린 장춘호가 놀리듯 부동길을 흘긴 곳은 5층 건물의 옥상이었다. 그들은 훑었던 한 구역을 벗어나기 전, 탐문 했던 지역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건물 위에서 수색한 곳과 다음 지역을 살피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
볼멘소리로 들렸을까? 코를 찡그린 부동길이 햇볕을 가린 장춘호의 전단을 후려쳤다.
“인간아! 형사가 무슨 벼슬인 줄 아냐? 공식 수사가 아닌데 한계가 있잖아. 나도 회사 잘릴 각오로 동글이랑 마누라 미래를 걸고 도박판에서 패를 받은 거라고. 죽어도 내가 죽는다는 심정을 네가 아냐? 이래서 혼자인 인간은 저만 살면 되니까 생각도 짧고 책임감이 없단 소릴 듣지. 왜 혼자인 질 저만 몰라? 남이 목숨 건 줄도 모르고.”
옥상 난간을 짚고 내려보는 부동길은 뜨끔해 어물거리는 장춘호완 달리 심각한 얼굴이었다. 계장 결재도 없는 일방적인 휴가계는 무려 2개월이었다. 당연히 휴대폰이 불이 나고, 아내를 통해 회유와 압박이 쏟아졌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벅수인 김준석과 절대 선, 캐이런과 인류의 멸망. 진실은 정신 감정을 권유일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을 믿고 일탈을 묵묵히 버텨주는 아내가 한없이 고마웠다.
“내일모레부터 흥신소 애들 몇이 합류 할 거야.”
그가 실눈으로 본 방향은 개발 사업으로 인해 한창 점포들이 철수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낡고 부식된 지붕들이 자투리 헝겊을 덧댄 조각보처럼 얼룩덜룩 이어진 곳이면서, 그들이 기대하는 목적지였다. 부동길은 뻘쭘하게 있는 장춘호의 뒤통수를 치고, 이미 공사 중인 지역과 다른 곳을 가리켰다.
“저 지역엔 계속 공가가 늘고 있는데, 정리되려면 아마 몇 달은 더 걸릴 거야. 복잡하단 얘기지, 우리가 점 찍은 데가 저기다.”
그의 손끝엔 눈부신 유리 건물과 고층 주상 복합 건물 틈으로 추레하고 허름한 지붕들이 있었다.
“미안하다. 장난이랍시고 한 말에 재수 씨와 동글이가 걸린 줄도 모르고.”
“됐어! 인마, 알면서도 욱한 내가 창피하다. 나도 미안하다.”
“근데, 별안간 흥신소 애들이라니?”
마음이 놓인 장춘호가 떨어진 전단을 주우며 물었다. 그때, 이마에서 뚝, 하고 떨어진 땀방울이 시멘트 바닥에 진한 먹물 점을 찍었다.
“정확히는 흥신소 간판을 건 탐정들이야. 특히 사람 찾는 감각은 타고났어. 캐이런은 몰라도, 부하는 충분할걸? 필리핀 출장이 끝나는 모레쯤 합류하기로 했다.”
“필리핀 출장? 흥신소도 외국 출장을 다녀?”
“걔들은 돈만 맞으면 아마존도 갈걸? 바람 난 남편, 마누라. 사기 친 인간들. 수십 년 전 첫사랑까지 찾아 주는데, 정보력도 엄청나서 국 내외 없이 거미줄이야. 여하튼, 혀를 내두를 정도로 촉이 달라.”
“그럼, 민수 형님께 말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일단 우리끼리. 선배는 장인옥을 쫓고 있잖아. 조만간 어느 쪽에서든 꼬리가 잡히면 그때 한 방에 가자고.”
그들은 거대한 두 건물 사이를 주목하고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에 섣부른 낙관을 찍으려는 흥분된 감정에 들뜬 부동길이 장춘호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춘호야! 내 비장의 무기, 희망은 아직 내 손안에 있다고 나폴레옹이 말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보다 우리가 빨리 움직이면 되잖아. 아인슈타인인가? 빠르면 시간도 늦게 간다고 한 사람이?”
“당연하지, 빛이 우주 팽창 속도를 못 따라간다잖아? 늦지도, 늦었어도 안 되지.”
용케도 뜬금없는 말뜻을 알아듣자, 뜻밖이란 동길이 한발 물러서 콧김을 뿜었다.
“너, 뭐냐? 왜, 갑자기 우아해진 거야? 더위먹었냐?”
“아이씨! 이 새끼가 근데? 인마! 너 그러다 내 고상함이 터지면 어쩌려고 그러냐? 심장 잘 간수 해라, 놀라 마비되면 우리 조카 유복자 되니까.”
“유복자? 아쭈? 얘가, 얘가. 뭐지? 갑자기 심하게 낯서네?”
“왜? 다른 거 더해 주랴? 내 유식함에 정말 심장 마비 한 번 걸려 볼 텨?”
“하하! 하하하!”
“하하하!”
장춘호는 부채 삼아 팔랑거리던 전단을 셔츠를 들썩이는 부동길에 부쳐 줬다. 어느덧 세상을 마른 굴비로 엮으려던 태양의 기세는 누그러져, 그라데이션 노을로 도시를 채색해 갔다. 때마침 김준석이 떠오른 장춘호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석양은 반대편의 여명이듯, 끝은 곧 시작이고. 절망은 희망의 꼬리에 붙은 티끌임을 알아야 한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100년 넘은 전통 시장의 명성은 들끓는 인파로 따로 부연할 필요가 없었다. 배오개 시장을 뿌리로 조선 최초의 상설시장이면서 순수 국내 자본으로 설립된 시장이란 독립성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안내판을 배경으로 외국 관광객들의 셀피가 끊이지 않았다. 우 상길은 유독 인파로 북적이는 중앙통에 서 있었다. 그의 좌, 우. 노상 좌판에선 두꺼운 철판에 달군 기름 위에 광장시장 명물인 녹두전과 다양한 부침이 고소한 냄새로 먹음직스러웠다.
“눈치챌 수 있으니, 거리 적당히 잡고. 거듭 말하지만, 잡으려는 건 장인옥이다!”
우 상길은 귀에 꽂은 블루투스 이어폰의 손가락을 떼고, 수신된 목소리에 끄덕이면서, 터무니없는 인파에 제한된 보폭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그가 감시하는 자는 장인옥의 부하 중 한 명이었다. 24시간 쉬지 않고 몇 날 며칠을 주차된 차를 감시하던 중, 방산 시장 뒷골목에 나타난 수상한 자를 발견한 팀원의 사진 보고에 우 상길의 직감이 발동했다. 노 타이 양복과 셔츠. 주머니에서 꺼낸 쓴 선글라스. 모두 검은색으로 상의보다 긴 셔츠를 입고 있었다. 때는 삼복더위로 도시가 찜질방에 갇혀 허덕이는 시기였다는 점이다. 복장과 어긋난 더러운 운동화가 거슬린 남자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나서 시동을 걸었다.
“우-웅!”
옥상에서 내려보다 급히 몸을 숙인 우 상길과 차민주의 귓가에, 치솟은 RPM에 터진 엔진음이 들렸다. 운행한 지 오래된 엔진이 깨어난 굉음이었다. 남자는 차에 탑승하지 않은 채 그늘로 가 또 한 번 주위를 경계했다. 우 상길은 팀원들에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지시 후에 다음을 주시했다. 지루한 30여 분이 지났다. 시동을 끈 남자는 어딘가 전화 통화를 한 뒤, 곧바로 골목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올 때와 달리 새벽다리를 건너 광장시장의 인파 속으로 빠르게 묻혔다. 우 상길은 팀원 20명 중, 15명을 신속히 분산 배치했다. 청계천과 종로를 넓게 차지한 시장 통로가 사방팔방인 것을 고려한 재배치였다.
“팀장님! 그자가 갑자기 포목점 길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보이십니까?”
“포목점 길?”
우 상길은 인파에 떠밀린 걸음을 급히 멈추고 몸을 돌렸다. 그가 가던 방향은 정반대인 북 1문 쪽이었다.
“저기요! 밀지 마세요!”
“아뇨! 뒤에서.”
급작스럽게 돌아서 버틴 그에게 막힌 흐름은 행인들의 신체 접촉을 일으켰다.
“포목점 길이라면 서문 쪽이잖아? 거기 누가 있지?”
당장 반대 방향을 헤치고 가기엔 올리브유를 뒤집어써도 어려울 정도였기에, 상식 없는 뻔뻔한 인간이 되어야 했다.
“그래? 보이긴 해? 지금 한 블록 뒤니까, 마약 김밥 통로엔 누가 있지? 지원 들어가! 신한 은행이 같이 커버치고. 서둘러!”
우 상길과 중앙통은 불과 50미터도 되질 않았다. 그러나 꾸역꾸역 밀려오는 사람들의 틈을 빠져나가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 미안합니다!”
하지만, 잇따른 사과와 난감한 표정으로 비집고 가는 우 상길의 험난한 길은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주말을 인지한 동시에 반대편 득실거리는 머리들 위로 파란 깃발 두 개가 흔들렸다. 행렬 무리가 바닷물 출렁이듯 그가 있는 곳으로 꾸역꾸역 밀려왔다. 마치 깃발이 부표로 보이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뿔싸!’
“어디야?”
“지금 둘이 따라붙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중앙통 개미지옥을 벗어난 우 상길이 그나마 숨 쉴 공간이 있는 시장 내, 사거리에서 차민주와 합류했다.
“저기로?”
그는 외국인의 편의를 돕기 위한 통역 안내원의 뒤쪽 입구를 가리켰다.
“조금 전에 올라갔습니다.”
“나, 팀장이다. 위치 보고 해!”
한눈을 치켜뜬 우 상길이 즉각적인 답이 없자, 이마에 굵은 주름살이 잡혔다.
“송 수신이 원활치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자리를 옮겨 몇 번을 시도해 봤지만….”
“얼마나 됐지?”
“5분 정돕니다.”
말끝이 불안한 그의 표정에 우 상길은 시장 천장을 올려 봤다.
‘놓친 것일까? 그렇다면 밖에서 연락이 왔을 텐데. 설마, 저 위로?’
어지러이 걸린 만국기 위의 천장은, 곡선과 직선의 철제 빔에 엮은 투명 강화 플라스틱으로 하늘이 보일 만큼 시원했다. 그러나, 시선은 따로 있었다. 에어컨 실외기가 있는 2층의 외부 공간. 가려고 든다면 한 사람은 너끈히 지날 공중 통로였다.
“가자!”
우 상길은 용수철처럼 건물로 뛰어 올라갔다. 모서리가 마모된 계단참을 돌아 다음 층으로 내 달리던 상길이 멈췄다. 지나친 화장실. 그는 뒤따르던 차민주에게 눈짓으로 물러서게 했다. 순간, 차민주가 경계 자세로 화장실 유리문을 주시했다. 천천히 유리문 틈으로 내부를 살피는 우 상길, 어떤 낌새를 느꼈는지 안으로 뛰어들었다.
“타닥! 타닥!”
“끽!-끼익!-끼기긱!”
스테인리스 경첩을 꺾은 유리문이 자지러지게 삐걱대다가, 우 상길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동작이 멈췄다.
“민주야! 차민주!”
화장실 구석 소변기 옆과 세면대 바닥에 피떡이 된 팀원 둘이 완전히 의식을 잃고 엎어져 있는 것에 놀란 상길은, 달려온 차민주에 그들을 내주고 내부를 살폈다. 바닥의 깨진 거울 파편과 파손돼 가까스로 반쯤 붙어있는 화장실 문으로 짐작한 격투는 격렬했음을 보여주었다.
“야! 야, 인마! 정신 차려봐! 용수야! 태기야!”
차민주가 그들을 안고 흔들 때마다 조각난 거울 파편이 날을 세워 무릎을 찔렀음에도 그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형님!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얘네 둘을…?”
차민주가 도저히 믿기지 않다는 듯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매우 의문스러울 만했다. 피떡이 된 시간은 대치보다 짧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과 5분이나 10분? 일방적이었단 뜻이었다. 이들은 그렇듯 속수무책이지 않을 실력자들이었다.
“우선 병원으로 옮겨라!”
우 상길은 그 말을 남기고 쏜살같이 남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복잡하고 어두운 미로는 각 구역을 진열대로 구분한 빈티지 전문 매장이었다. 그는 진열대 옷 사이의 좁은 통로를 지나면서 구석구석을 봤다. 먹통의 이어폰이 밖과 차단 한 상태라 점포 하나하나 섣부른 탐색은 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점주로 보이는 이들이 의자에서, 매장에서 옷을 정리한다든지, 끼리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었기에 수상한 낌새와 분리하긴 어렵지 않았다. 그의 느릿한 걸음은 눈과 귀, 느낌의 영역 폭을 최대한으로 수상함을 엿봤다. 그때, 점포 내 한쪽 커튼을 들추고 한 사람이 나왔다. 구매하기 전 옷을 입어 보는 일종의 탈의실로 보였다. 상길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주위 점포를 빠르게 훑었다. 각각의 점포마다 숨을 공간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의 본능은 외부 실외기 통로였지만, 커튼 뒤 수십 개의 공간을 알게 된 이상 무시하기엔 의구심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팀장님! 올라가겠습니다.’
먹통이었던 이어폰에서 차민주의 목소리가 쟁쟁했다.
“밖은? 이상 없어?”
진열된 옷가지 틈으로 머리를 넣은 우 상길이 이어폰에 손을 얹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는 간단한 확인과 보고가 오간 뒤, 미심쩍은 부분을 지시했다.
“얘들 반만 남겨놓고 2층 옷 가게들 전부 수색해야겠다. 특히 점포 커튼 뒤나, 틈 하나 놓치지 말고 샅샅이 훑어, 난 따로 확인해 볼 곳이 있으니까.”
역시나 예상과 들어맞는 통로가 있었다. 밑에서 일부러 고개를 들기 전엔 보이지 않는 이곳은 별개의 건물과 맞닿은 지점에서 끊겨 있었다. 하지만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춘 자라면, 천장의 빔을 타고 건물 사이를 오가는 일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켜켜이 쌓인 먼지에 찍힌 발자국이 있는 좁은 통로. 우 상길은 바닥을 유심히 살핀 후, 건너편 건물로 이어진 천장 빔을 주목했다. 그리고 꺾인 통로 끝 쪽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