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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엄마 닮아서 그래요.

왜 비웃어요?

 아이는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어릴 적 별명이 도덕 선생님이었던 것처럼 아이는 올곧은 행동과 말만 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뉴스를 보고 있으면 한참이나 흥분해서 떠들어댔다. 조목조목 따지기를 좋아했고 결론이 날 때까지 물고 늘어졌다.


 아이의 아빠는 논리 정연한 성향이 아니다. 농담도 잘하고 장난도 심한 편이다. 아이가 싫다는 행동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것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해주면 좋으련만 그게 아마도 큰 어려움인가 보다. 


 자주 놀리는 아빠 때문에 화내는 아이를 달래기도 하고 남편에게 놀리지 말라고도 했지만 싸움은 길게 계속되었다.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아빠에게 당하는 딸아이가 많이 힘들어했다. 아빠는 아이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며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한 날은 그림 그리기에 빠져 있는 아이를 보며 웃고 있었다. 눈길을 느낀 아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말했다.


 “왜 비웃어요?”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비웃다니! 나의 미소는 흐뭇함이었는데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때 나는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있거나 자존감이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의 미소가 비웃는 것으로 느껴진 이유가 뭘까?”


“이유는 모르겠고 그렇게 느껴졌어요.”


“그랬구나, 엄마가 너의 그림을 보는 것이 싫었을까?”


“그건 아니에요”


“엄마는 그림에 몰입하는 네 모습이 예뻐서 흐뭇하게 웃고 있었던 거야. 우리 서현이가 엄마의 흐뭇한 미소를 비웃는 것으로 느꼈다니 마음이 아프네. 왜 그렇게 느껴졌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겠니?”

아이는 생각에 빠졌다가 한참 후 말했다.


“저는 제 그림이 완벽해졌을 때 보여주고 싶은 것 같아요. 그림이 잘 안 그려지거나 그리는 과정에서 수정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내가 잘 그렸다고 생각된 그림만 보여주고 싶어요. 내 그림이 완벽하지 않아서 엄마가 비웃는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죄송해요, 엄마.”


 아이는 다른 것은 몰라도 그림에 있어서는 완벽주의에 가깝다. 완벽주의 라기보다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다른 공부에 있어서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편인데 유독 그림에 있어서는 스스로 만족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높은 인정을 받고자 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성향이 그렇다 보니 언쟁을 할 때도 많다. 그냥 대충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말한다. 


“엄마 닮아서 그래요.”

틀린 말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따지기를 좋아하고 불의를 보면 못 참았다. ‘싸움닭’이라 불릴 만큼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하며 입 바른 소리를 하고 다녔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도덕 선생님이라고 했다. 


 친구들이 욕하는 것을 무척 싫어해서 남자아이들이 습관처럼 욕을 하는 날이면 뒤통수를 소리 나게 때려주곤 했다. 덕분에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욕지거리를 하는 친구들이 사라졌다. 자기도 모르게 욕을 했다가도 금방 알아차리고 미안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폭력이었는데 웃으며 받아준 친구들이 참 고맙다.


 그래서 엄마 닮아서 그런다는 아이의 말에 반기를 들 수가 없다. 예전과 내가 많이 달라졌고 유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예전 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 그래 네가 엄마 딸인데 안 닮고 배기겠니? 하고 만다.


 그래도 나는 아이가 지금 내가 유해진 것처럼 지금부터 조금씩 부드러운 성격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충 넘어갈 줄도 알고 상대의 잘못을 눈감아 줄 줄도 아는 유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을 이겨 먹는 게 결코 좋은 것이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 


 지금부터라도 매일 보여 줘야겠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아이의 잘못을 눈 감아 주고 보기 싫은 남편의 행동도 웃으면서 받아주는 너그러운 엄마,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 늘 그랬듯이 나를 보며 배울 아이를 위해서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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