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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일기장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장은 우리의 자화상

by 글사랑이 조동표

모처럼 초등학교(그 시절에는 국민학교) 시절의 일기장을 느긋하게 훑어보았다.


일기는 아버지의 권유와 학교에서의 정기점검 대비, 그리고 내 성격이 맞아떨어져 열심히 썼었고 다행히 지금까지도 보관되어 있었다. 해외주재 시에도 분실하지 않고 갖고 다녔던 보물이나 다름없는 존재이다.


네이버밴드나 카카오톡으로 이름을 들어본 친구들은 제법 많이 일기장에 이름이 등장하고 있고, 의미 있거나 반가운 내용들이 눈에 띄면 많은 친구들에게 일기장을 사진 찍어 개별적으로 공유해 주었다.


코흘리개 1학년 시절은 그림일기여서 내용은 없었다. 그러나 2학년부터는 질 나쁜 연필로 질이 더 나쁜 갱지 위에 순진하고 어린 눈에 비친 느낌들이 가감 없이 표현되어 있었다. 신설된 기린국민학교로 전학을 가버린 친구들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특히 이 OO 김 OO 최 OO...


2학년이면 어린 동심의 표현일진대, 때론 성적에 대한 경쟁심도 드러나 있었고, 싸워서 누구를 때렸다거나 맞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6학년까지의 주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온갖 놀이 문화에 얽힌 친구들과의 어울림은 알롱구멍, 댕깡, 막가 맞추기, 딱지치기, 따이한과 빨치산놀이, 계급장 따먹기, 미국 소련놀이, 땅따먹기, 오징어살이, 구슬치기, 쌈치기, 거머리살이, 술래잡기, 빵울 치기, 야구, 축구, 배드민턴, 팽이치기, 연날리기, 자치기, 썰매 타기, 곤충 잡기, 양서류 잡기, 물고기 잡기, 날아다니는 새 잡기도 했다고 쓰여 있네.


눈깔사탕, 박하사탕, 뻥튀기, 튀밥, 풀빵, 솜과자, 아이스깨끼(케이크), 종합드롭프스, 풍년제과의 전병 과자, 제사와 명절의 전과 적, 시루떡과 인절미, 미군 배급용 옥수수 빵...


우리는 참으로 다양한 놀이와 음식을 즐겼었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 때론 체벌에 대한 원망.

부모님과 어른들에 대한 효심과 다자녀였던 형제자매들과의 갈등.

식구들과 친인척들과의 관계형성 과정.

친한 친구가 전학 가는 순간의 아쉬움과 새로 전학 온 친구에 대한 경계심.

나이가 두세 살 많은 고아 친구들과의 어울림은 또 다른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하였다.


책이 귀해서 돌려보기가 일상이었던 시절의 아동잡지들은, 소년중앙, 소년세계, 새소년, 어깨동무가 대표적이었네.


과외활동이었던 주산부, 독서감상반... 사생대회, 백일장대회는 왜 그리 많았는지...


반공방첩, 멸공통일로 귀속되는 국가관 이식, 무수히 많은 반공 영화 단체관람.

간첩소탕과 월남전 영화.

성웅 이순신 장군 영화...

삼남극장, 제일극장, 전주극장, 중앙극장, 아카데미극장...


김일의 박치기에 열광하며 한데 모여 응원했던 TV 시청 문화의 태동기.

숨죽여 가며 숨어보던 만화들... 김삼, 고우영, 길창덕, 이상무, 이근철...

007, 삼국지, 수호지, 꺼벙이, 만복이, 타이거마스크, 마린보이, 우주소년아톰, 철인28호, 황금박쥐, 요괴인간 등등등. 이중 상당수가 일본 만화를 번역만 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우리들의 무대로는 마당재, 기린봉, 남중, 전주상고, 건설운동장, 종합운동장, 진안사거리, 문화촌, 인봉리, 전도관, 국군묘지, 석수리, 용진, 연방죽, 아중리, 병무청, 측우소 등등 노송동 거리와, 설레는 소풍 장소였던 중바위, 각시바위, 팔각정, 완산칠봉, 덕진 등등이 있었네.


일일이 하나씩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6학년 졸업까지의 과정들이 나름대로의 시선으로 묘사되어 있다.


일기장에 등장하는 이름 속에는, 이제는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언론에서나 접할 수 있는 친구들도 있고, 이미 타계한 친구나 소식이 끊긴 친구들도 있었다.


벌써 졸업하고 50년이 넘어간다.


가장 순수해 보였던 4학년 4반 때인 1971년 11월 1일의 일기를 음미하며, 나는 그 순수한 국민학생에서 그동안 얼마나 속물화되었는지, 그 당시 추구했던 가치가 이제는 어디에 남아있는지, 그 당시 동무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는지 생각해 본다.


어떤 선생님과 친구는 이미 타계하였건만 기린봉은 여전히 울뚝 서 있고, 환갑을 훌쩍 넘겨 숱 빠진 흰머리를 쓰다듬는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친구들아~~ 다음 동창회에서 꼭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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