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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야기

어린 시절의 큰 기쁨은 만화 훔쳐보기

by 글사랑이 조동표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만화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같은 반에 최재석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얼굴이 뽀얗고 공부도 잘했었다. 그 친구가 '소년중앙'이라는 잡지를 정기구독했는데 나는 별책부록으로 나오는 만화에 더 관심이 있었다.


'우주소년 아톰'을 빌려서 보게 되었는데, 그때 그 만화가 일본인 만화가인 오사무 테즈카가 그렸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아톰이 부서져 온몸이 해체되기도 하고 그를 만든 과학자이자 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 아톰을 재결합해서 다시 살려내는 장면들을 보면서 만화에 쏙 빠지던 그 시절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소년중앙의 부록으로 본 만화들은 '요괴인간', '타이거마스크' 등등 엄청 많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만화들 대부분이 일본 만화를 번역한 것이었다.


내가 한국인 만화가들이 그린 것을 보게 된 것은 순전히 친구들 때문이었다. 만화방 출입을 못해 본 나의 손목을 친구들이 몰래 잡아끌어서, 친구 따라 슬그머니 만화방에 들어간 것이었는데, 아마도 토토가 시네마천국을 발견한 것과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만화방에서는 수많은 만화들을 볼 수 있는 데다가 군것질까지 할 수 있었다. 그때 본 만화들 중에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한국 만화가는 이근철과 이상무, 김삼 선생님이다.


이근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전차부대를 주로 그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특이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중심적인 세태에서 독일군은 거의 공공의 적에 가까운데 독일전차부대의 활약상을 그려내다니... "으잉!" 이 소리치는 단어가 기억에 남는다. 그 이근철의 만화를 다시 보고 싶다. 이근철 만화를 빌려서 집에서 숨어 읽다가 아버지께 들켜서 파리채로 종아리 맞고 6권의 책은 압수당하고...


또 한 사람 이상무는 ‘독고 탁’ 시리즈를 주로 그렸는데, 독고 탁은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고독한 영웅, 반항적인 영웅인 셈이었다. 독고 탁의 형으로 독고 준이 있는데, 형은 잘생기고 우등생이며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한 엄친아였다. 그런데 독고 탁은 늘 혼자이고 모든 면에서 형인 준과 비교의 대상이 되어서 마음속에서 고독과 우울, 분노를 삭이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묘하게 그 시절의 반항심리와 어울려 쾌감을 주곤 했다.


김삼의 만화는 '소년 007'이 기억에 남는데 모자에 안경을 쓰고 멋진 양복을 입었던 소년이 악당과 싸워 이기고 우주세계까지 모험을 하기도 했던 SF적인 장면도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기억나는 것은, 소년중앙 보려고 어지간히 아버지와 엄마를 졸라댔다는 사실이었는데, 소년중앙 부록만화가 단연 으뜸이었고, 새소년과 어깨동무는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었을 때, 내 손에 넘어왔다.


잡지 만화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우주소년 아톰, 철인 28호, 바벨탑, 내 이름은 허리케인, 요괴인간, 유리인간, 타이거마스크, 철인 28호, 태풍을 쳐라...

고우영의 삼국지, 수호지, 십팔사략, 일지매, 구월산유격대도 읽었고...

길창덕의 꺼벙이...

이두호의 임꺽정... 등등이 아스라이 기억난다.


중고 시절은 만화를 못 보고 연애소설과 고전, 무협지를 숨어서 읽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 본 만화책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이현세의 '외인구단'에 나오는 까치, 엄지, 마동탁...

박봉성의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허영만의 '세일즈맨', '식객' 등등...


어른이 되어 접하게 된 만화는 내게 다시 한번 신세계를 열어 주었다.


회사에 들어와서는 일본 만화를 읽다가 밤을 새기도 했는데, 시리즈가 100권이 넘는 것도 있었다. 아내도 만화를 좋아해서 내가 어서 빨리 읽기만을 재촉하였다. 히로카네 켄시의 '시마과장' 시리즈는, 시마가 신입사원에서 과장을 거쳐 부장, 임원, 사장, 회장, 상담역까지 올라가는 긴 여정을 묘사한 것이다. 36년간 롱베스트셀러로 나온 것인데, 로맨스나 야한 장면도 거침없었지만 기업의 생리와 번창 등, 샐러리맨 사회를 너무 절묘하게 그려내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매번 언제 신간이 나오나 기대하며 살다가 일본 출장 시에는 아예 원어판을 사 갖고 와서 번역하며 읽기도 했다. 이 만화에는 경쟁사로 삼성그룹도 등장했다.


오늘도 만화 빌리러 가볼거나...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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