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추운 겨울은 아궁이로 불을 땐 아랫목만 시커멓게 탄 온돌방이 생각난다. 형제자매들이 큰 이불 하나에 발만 집어넣고 몸을 녹이다 발로 차서 아버지 밥공기가 엎어지기라도 하면 이불에 밥풀때기가 다닥다닥 말라붙어 봄까지도 붙어있곤 하였다.
구멍 뚫린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는 윙~윙~ 황소바람 소리 들어가며 잠을 청하였고, 방안 빨랫줄에는 딱딱하게 굳은 식구들 내복 빨래 사이로 허연 입김을 내뿜었는데 도넛도 쉽게 만들어졌다.
구들장 있는 아랫목만 따습고 이불 바깥은 차가운 공기에 연신 콧물을 훌쩍였다. 열심히 노느라 살이 튼 손을 호호 불어가며, 옆집에서 물려받은 찢어진 표준전과를 읽어가며 숙제를 하였다.
할머니는 손자 손녀들에게 군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껍데기를 벗겨주셨고, 내 강아지들 먹여 살리려 안간힘을 다하셨다.
언 손을 호호 불면서 갱지 연습장에 바둑이 철수 영희를 쓰다 틀리면 연필 끝의 지우개로 지워보지만 질 나쁜 공책은 늘 찢어지기 일쑤였다.
언제쯤 낙타표 문화연필로 새하얀 공책에 일기를 써보나 애꿎은 엄마에게 푸념해 보곤 했지만, 자식들 많은 집에서 모나미 볼펜에 끼워 쓰는 몽당연필이라도 있으니 그게 어디냐는 핀잔만 들었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주는 상품이 공책이나 연필이 주를 이뤘다.
군밤장수의 외침과, '찹쌀떡 있어~~'를 외치는 추운 밤 소년의 목소리가 차가운 가로등 사이로 아련히 멀어져 갈 때, 이불 밖으로 빼꼼히 내놓은 얼굴 속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는 어디선가 봤던 텔레비전을 언제쯤 우리 집에서도 볼 수 있을지 즐거운 상상을 하였지만, 현실은 찌직거리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추기 일쑤였다.
아~ 연탄가스와 동치미 국물이 뭐가 좋다고 그 얼마나 많이 마셔가며 컸는가? 매일매일 연탄가스로 사망한 뉴스를 접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나 또한 열 번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자랐고, 대학 시절에는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고 취한 채로 곯아떨어졌다가 집단으로 연탄가스에 중독되었는데, 운 좋게도 자취방 주인아줌마에 의해 발견되어 얼음이 둥둥 뜬 동치미 한 사발에 간신히 눈을 뜨고 구급차에 실려 수원시립병원에 실려갔다 살아나기도 하였다.
그 못살던 시절에도 도둑은 또 어찌 그리 많았는지 혹한에도 도둑은 끊이지 않아 창고에 저장된 연탄에 마늘까지 도둑을 맞았고, 안방에는 도둑 퇴치용 막대기가 세워져 있었다.
강아지만 한 쥐새끼 식구들의 오줌 지도로 얼룩진 천장에서는 밤새도록 서생원들의 운동회가 열리곤 하여 늘 잠이 깨기 일쑤였다.
아침이면 밤새 하얗게 변한 동네 골목마다 나일론 양말에 펑크 난 면양말을 두 컬례씩 겹쳐 신은 털신을 질질 끌며 귀마개를 하고, 벙어리장갑 양손으로 가방과 신주머니를 들고서 "종철아 학교 가자~"를 외치곤 하였다. 늘 벙어리장갑만 끼고 자란 나는 다섯 손가락이 가지런한 장갑을 낀 친구가 그렇게도 부러울 수가 없었다.
교실에는 당번 둘이서 양철 양동이에 퍼온 조개탄 난로가 타오르기 시작하고, 그 난로 위로 도시락이 수북이 쌓이기 시작하면 꼭 누군가의 도시락에서 김치 국물이 흘러내렸다. 걸신이 들렸는지 4교시가 끝난 후에 밥 먹는 놈은 아예 없었다. 매캐한 연기 그을음에 콧구멍이 까맣게 되어 서로 마주 보며 손가락질하던 그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