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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미아 3장 2화

해외지사 2: 정보와 협상, 그리고 꽌시

by 글사랑이 조동표

강남역 미아 3장 2화 - 해외지사 2

정보와 협상, 그리고 꽌시


중국의 여름은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더 무거웠던 것은 공기보다 보이지 않는 환경이었다. 그는 그 차이를, 처음에는 단순한 문화 충격으로 이해하려 했지만, 곧 그것이 단순한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체계와 질서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는 중국 생활의 기억을 지금도 또렷하게 떠올린다.

처음 부임했을 때의 시간은 천진에서 단신으로 지냈던 3개월이었다.

그 후 아내와 아들딸이 합류해 북경 선수촌 아파트에서 보낸 1년. 이어 북경 외국인 타운에서의 또 다른 1년. 마지막으로 치료약 전문회사를 설립하고 상해 푸동 지역으로 옮겨 수개월을 보낸 시간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혼자서 처음 맞이한 천진의 초여름이었다.

해가 막 떠오른 시간, 낯선 도시의 아침 공기는 이미 머리까지 후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천진 회사 건물은 백 년이 넘은 목조건물이었다. 삐걱거리는 복도 바닥은 마치 오래된 기관총처럼 불규칙하게 토악질하듯 소리를 냈다. 그 위를 걸을 때마다 그는 자신이 어떤 낯선 질서 위에 서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건물이 늙어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체계가 오래되었음을 알리는 소리에 가까웠다.

그 건물 안에는 회사가 있었고, 회사는 법인 형태를 갖고 있었으며, 법인은 조직도를 갖고 있었고, 조직도는 권력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 권력은 한국에서 그가 경험했던 그것과는 달랐다. 그곳에서 권력은 성과나 지위로 측정되지 않고, 관계(꽌시)와 정보로 배분되었다.


그 낡은 건물 안에 있던 화장실은 또 어찌나 충격적이었던가! 말이 나온 김에 화장실 이야기를 해보자.


1층 화장실은 좌식이었지만 문을 열 때마다 이상한 악취가 몰려와 코끝을 찌르곤 했다. 휴지는 휴지통에 버려지지 않고 바닥 물기에 흥건히 적셔져 있었다. 변기는 곧잘 막혀 있었으며, 그 위에 앉으면 덮개가 안 맞아 균형 잡기가 어려웠다.


2층 화장실은 더 노골적이었다. 재래식으로 앉아 용변을 보는 곳이었는데, 문틈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힐끔 들어왔다. 그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까 전전긍긍하였다. 그 광경은 그에게 묘한 수치심을 남겼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모호한 세계, 규칙이 있으나 동시에 없는 세계.

그것은 비즈니스에서도 그대로 반복될 것 같았다.

그의 속마음은 온통 당혹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건 문화충격 그 이상이야...”

그는 밤마다 절규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황당했던 것은, 공공시설 화장실 광경이었다.

북경공항의 화장실에 들어서자, 어떤 중년 남자가 문을 열고 아무렇지 않게 용변을 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부끄러움도 당황도 없었다. 오히려 그의 놀란 눈을 향해 묘한 여유가 떠올랐다. 그때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내가 가진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일상 속 무심함 속에, 질서에 복종하지 않는 체계의 단서가 있었다.

그는 순간 속삭였다.

“규칙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 다르다.”


공항 화장실에서 남자가 그를 응시하며 용변을 보던 장면은 당당함이 아니라 계산된 여유였을까.

‘누가 누구를 보았는가?’

그 질문 속에서 이미 힘의 좌표가 정해졌다. 대륙에서는 시선의 주도권이 규칙의 주도권을 의미했다.


그의 눈을 의심할만한 일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에게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그 장면은 마치 그의 마음속 마지막 남은 경계마저 무너뜨리는 듯했다.

그것은 단순히 화장실 문화의 문제가 아니었다.

경계·관계·질서·적응이라는 더 큰 주제의 서막이었다.


황당한 대륙의 풍경은 또 있었다.


2002년 연말, 그는 가족과 함께 중국 남부의 명승지를 둘러보는 여행을 떠났다.

쿤밍, 리장, 따리, 샹그리라.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에는 오래된 풍경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그 지역을 지나는 동안, 그의 눈에는 색다른 중국이 펼쳐졌다.


역시나 화장실 문화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쿤밍역의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아내와 딸은 혼비백산해서 뛰쳐나왔다. 넓고 탁 트인 공간에 바닥에는 구멍만 뚫려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마주 보며 일을 보는 형국이었다.


식당 화장실 아래에는 돼지 일가족들이 꿀꿀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불안한 손은 문고리가 없는 문틈 사이로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어야만 했다.


해적선 같은 크루즈선을 타고 강을 건너가는 일정이 있었다. 음식이 맞지 않아 속이 불편했던 그가 남자 화장실에 들어서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소변 대변의 구분은 개방된 칸막이 하나였다. 서서 소변을 보는 남자들 시야에는 앉아서 용변 보는 사람이 한눈에 보였고, 앉아서 일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엉덩이를 드러낸 채 소변보는 남자를 쳐다보는 구조였다. 그는 서로가 민망한 표정도 없이 각자 알아서 잘 해결하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모습은 그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대륙은 거칠었고, 무질서했고, 동시에 터무니없이 효율적이었다.

“시장도, 사람도, 시스템도, 이 나라는 다른 방식으로 돌아간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가 없다. 경계가 사라지면 규칙도 사라지고, 규칙이 사라지면 협상만 남는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뒤엉킨 그 공간은 이미 협상의 장이었다.

숨어 있는 메시지는 하나였다.

“이곳에서는 규칙보다 협상이 빠르다.”

협상을 거슬러서는 살 수 없다.

시장은 그렇게 움직였다.


협상, 그 단어는 곧 이 회사 전체의 작동 방식이 될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대륙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시장’이나 ‘영업 현장’이 아니라, 문명과 질서의 다른 형태라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메시지로 통합되었다.

“이 세계는 시장경제가 아니라 관계(꽌시) 경제로 움직인다.



관계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사건은 또 있었다. 진짜 수업은 유명한 북경 301 병원의 술자리에서 개강되었다.


어느 여름날 북경의 유명한 군인병원 의사들과의 점심 접대 자리였다. 빈속에 들이붓는 술자리. 그에게는 견디기 힘든 백주(白酒)의 연속이었다. 바깥 기온 40도가 넘는 대낮에 52도 백주(白酒)가 그의 식도를 태우며 내려갔다.


술은 단순히 환영의 표시도, 예의도 아니었다. 백주는 목을 통해 들어오는 게 아니라 권력의 질서를 따라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의사들은 표정이 없었고, 술은 명령처럼 따랐다. 낮술의 무게는 차갑게 식은 체온처럼 그를 점점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다 몸이 꿀렁거리며 괴로운 상태를 마주했다. 화장실에 가서 토해내고 머리에 찬물을 들이붓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군인 의사(장교)들은 요령 있게 그가 건넨 한잔씩만 마셨지만 그는 인원수대로 마셔야 했다. 북경에서 천진으로 돌아오는 길은 인사불성으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는 접대를 관찰하며 깨달았다.

“지금 이루어지는 건 영업이 아니라 관계 협상이다. 이 자리에서 결정되는 건 매출이 아니라 채널이다.”

술은 정보의 화폐였고, 영업의 도구였으며, 관계의 계약서였다.


의사들의 무표정은 무심함이 아니라 힘의 여유였다. 그 표정은 “우린 당신을 평가 중”이라는 미세한 신호였다.

그들은 병원의 권력자였고, 병원은 치료약의 시장이었으며, 시장은 회사 매출의 전부를 결정했다. 한국 지사에서라면 마케팅 전략과 세일즈 기획으로 접근할 문제도, 중국에서는 술과 접대와 관계로 처리했다.


술자리에서 이루어진 것은 접대보다는 채널의 거래였고, 채널은 실적을 만들었다.

실적은 인사를 움직였으며, 인사는 권한을 만들었고, 권한은 시장을 열었다.


‘이 시장에서는 영업이 아니라 정보-관계-권력이 매출이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그는 술자리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관계없이 영업은 성립하지 않았다. 관계는 술 없이 형성되지 않았다. 술이 곧 언어였고, 언어가 곧 권력이었다.


중국 대륙의 풍경과 중국인들의 일상 속 관계, 즉 ‘꽌시(關係)’의 본질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는 속으로 그렇게 읊조렸다.


관계란 그런 것이었다. 그날 점심은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라 이곳에서 영업이 움직이는 방식의 교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천진으로 돌아오는 길, 폭우가 갑자기 도로를 덮쳤다. 시야가 거의 사라질 만큼 쏟아지는 비, 최 고속의 와이퍼는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시야는 흐릿했고 어느 순간 차량이 길게 늘어섰다. 갑작스러운 정체 끝에 나타난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취한 눈을 뜨고 길 한쪽을 무심히 보니 대형 트럭이 전복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덮개에 가려진 시신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 무심한 듯 강압적으로 서 있는 공안(公安)의 수신호와 외침을 들으며 그는 뒷골이 서늘해졌다. 양손을 뒤로 깍지 끼고 서 있는 공안도 보였다.

그는 감히 공안을 쳐다보지 못했다. 힐끗 올려다보니 이미 모든 것은 규정되어 있다는 듯, 감정하나 없는 무표정이었다. 그 순간 그의 폐 깊은 곳까지 서늘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이곳에서는 생사도 관계와 질서의 일부일 수 있구나.”

천진으로 돌아오는 길 폭우 속에서 전복된 트럭과 덮개 아래 시신, 그리고 무표정한 공안을 봤을 때, 또 다른 정보 하나를 얻었다.

감정 없는 질서는 강하다.

대륙에서는 생사조차 계산 속에 들어 있었다.


그는 그날 두 가지를 분명히 결심했다.


첫째, 낮술을 피해야 한다.

둘째, 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언어를 바꾸어야 한다.


부정부패와 현실의 단면을 목도한 적도 있었다. 의료 영업 현장에서 그는 여러 가지 현실을 마주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술이 아니라 관계의 본질에 대한 이해였다.


“월급이 하나라면 굶어 죽죠. 한 달 수입은 두 채널에서 벌어요. 월급, 그리고 회사 돈.”

비서를 통해 들으니 천진의 수액제 영업팀장이 농담처럼 말했다고 한다.

농담이라는 태도는 진지함을 덮는 포장지였다. 급여 외에 회사 자금을 빼돌리는 관행은 만연되어 있었고 생각보다 심각했다.


병원 담당 직원은 좋은 실적을 얻기 위해 거래선 배정을 두고 암암리에 뇌물을 주고받는 일이 횡행했다. 그 사이에 배달사고도 빈번했다. 모두가 알고 있으나 아무도 모르는 척했고, 회사는 그 위에서 돌아갔다.


기실 병원 담당 직원은 제품 배분권을 지닌 비공식 권력자였다.

그 권력은 병원-제약사-유통망-직원의 구조를 관통하며 실적을 재조정했다.

그는 그것이 부패가 아니라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계에서는 윤리가 아니라 질서가 우선이다. 질서를 만든 것은 권력과 관계이며,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언제나 돈과 이해다.’

그 현실은 그에게 단지 비즈니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권력, 돈이 얽힌 복잡한 사회구조”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문화적 단면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경험담이 아니었다.

앞으로 그가 맞닥뜨릴 더 큰 갈등과, 더 큰 압력의 예고편이었다.

진짜 전장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그것은 중국이 아니라 본사에 있었다.


일본 본사는 대륙 시장의 잠재력을 읽고 있었다.

한국 지사는 실적과 권한 사이에서 인내하고 있었다.

중국 지사는 이미 '이익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세 지점의 경계선에 그가 놓여 있었다.


대륙은 서서히 비상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시장은 열려 있었고, 공급망은 움직였으며, 병원은 기다리고 있었다.

본사도 알고 있었다.

한국 지사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도 알았다.


중국 지사가 보낸 실적은 본사로 올라갔다. 본사는 곧 대륙 시장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대륙의 실적은 어느덧 한국 지사의 실적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한국 지사의 성과는 일본 본사의 인사 라인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때부터 묘한 삼각 구도가 형성되었다.


일본 본사: 시장 확장 + 권한 통제

한국 지사: 실적 + 영향력 유지

중국 시장: 관계 + 정보 + 속도


그는 아직 관찰자였다. 하지만 관찰자로는 오래 머물 수 없다. 특히 글로벌 조직에서는 말이다.

관찰자가 오래 있으면 정보가 쌓이고, 정보가 쌓이면 권력이 되었다. 권력이 생기면 누군가 견제한다. 그리고 견제는 언제나 먼저 알아챈 사람에게 향했다. 그것이 조직의 본능이었다.


권력은 인사를 움직이고, 인사는 예산을 움직였으며, 예산과 판매경비는 시장을 지배하였다.

그는 여기저기 안테나를 세우고 차분히 정보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의 냄새조차 정보였고, 술자리의 침묵도 정보였으며, 창고에서 사라지는 물류도 정보였다.


다만 그는 아직 입을 열지 않았다. 조직 세계에서는 말을 아낄수록 오래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때의 말은 미소나 예의가 아니라,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 될 것이었다.


진짜 승부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일본 본사는 대륙을 기회로 보았다.

한국 지사는 대륙을 위협으로 보았다.

중국 시장은 대륙을 현실로 만들었다.


모든 장면이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되었다.

“진짜 게임은 시장이 아니라 조직에서 시작된다.”


그 순간부터 그는 관찰자가 아니라 플레이어 후보가 되어갔다.


대륙의 시장은 단순한 의료 채널이 아니었다.

병원은 시장이었고, 의사는 결정권자였다. 환자는 숫자였고, 제품은 권력의 매개였다.

그는 그 질서를 감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은 단지 중국 시장의 일상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무거운 또 다른 질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지: 구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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