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지사
강남역 미아 3장 1화: 해외지사
비 내리던 초봄의 어느 날, 그는 묵직한 서류 가방을 하나 들고 사무실 로비를 나섰다. 수년간 의료사업부를 이끌며 몸으로 부딪쳐 온 시간들이 손아귀에 눌려 단단해진 듯했다.
입사 14년 4개월 만의 등기이사 선임은 그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변화를 실감하게 한 것은 퇴직금 정산이었다. 그는 더 이상 ‘사원’이 아니었다.
역할이 바뀌고, 책상이 넓어지고, 전용 차량과 공간이 준비되었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당혹스러움과 동시에 책임을 암시했다.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부끄럽기도 하고, 동시에 자랑스럽기도 한, 미묘한 감정의 무게로 다가왔다.
2002년 3월, 그는 회장과 아시아사업부 요원 두 명과 함께 일주일 여정으로 중국 출장을 떠났다. 본사는 중국 시장을 새로운 기회로 판단하고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북경공항을 처음 본 순간, 기존의 감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풍경이 펼쳐졌다. 일단 공기가 묘하게 무거웠다. 먼지가 많아서가 아니라, 이 나라가 품고 있는 어떤 큰 힘과 속도를 외부인이 한 번에 받아들이기 어려워서였다.
하늘은 미세먼지로 가려져 있었다. 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숨이 탁 막힐 듯한 공기에 그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붉은 오성홍기가 펄럭이는 거리에는 인산인해의 사람들, 자전거의 물결, 허름한 건물과 20층을 훌쩍 넘는 고층 빌딩이 뒤섞여 있었다.
첫 아침, 그는 호텔 창 밖으로 도시를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곧 뱉어냈다. 이곳의 공기는 그의 몸속에 스며들지 않았다. 샤워를 해도 개운함이 없었다. 밖은 온통 희뿌연 회색이었다.
북경과 상해가 이어지는 중국 대륙, 그 넓은 땅과 수많은 사람들이 한 나라 안에 공존한다는 사실은 그를 압도했다.
거대한 도시는 사람의 물결에 수많은 자전거와 차량으로 뒤섞여 있었다. 스모그가 낀 하늘과 황사는 도시의 일상이었다. 북경과 상해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크다’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거리에는 비포장 도로가 많았다. 검은 땅 위에 침이 가득 묻은 인도는 흑백돌이 뒤엉킨 바둑판이었다.
차량과 인파와 자전거가 뒤얽힌 횡단보도, 그는 목숨을 걸고 도로를 건너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무질서가 아니라 그들만의 방식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마치 각자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있듯, 자동차와 자전거가 얽힌 도로를 아무렇지 않게 가로질렀다. 서울의 질서 정연한 거리 풍경이 머릿속에서 아득해졌다.
그는 단정한 복장과 태도로 자신의 균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오히려 그 단정함이 외부인임을 드러내는 표식이 될 때가 많았다.
그는 곧 이곳이 단순한 시장이나 비용 구조가 아니라, 국가와 역사, 민족 감각을 그대로 실린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족이 전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55개의 소수민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중국이라는 국가의 복잡성과 그 배경을 설명하는 하나의 단서였다.
낮에는 본사와 병원, 그리고 공장을 방문하며 사업 설명을 들었다. 밤에는 환대라는 이름의 술자리가 이어졌다.
중국의 백주(白酒)는 50도를 훌쩍 넘었다.
그는 술이 식도를 태우며 넘어갈 때마다 상대가 무엇을 확인하려는 것인지 생각했다. 이곳에서 술은 단순한 음주가 아니라 관계의 방식이자 협상 기술이었다.
술에 취해 호텔 방에 쓰러진 그가 귀국 후 서울에서 중국 파견단을 맞이했을 때는 폭탄주라는 방식으로 응수했다.
서로 다른 문화가 같은 테이블에서 충돌했지만, 결론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한 달 뒤, 그는 중국 지사장으로 발령되었다. 임원이 된 지 9개월 만이었다.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지만 그는 그것이 회사 내부의 전략적인 판단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직장은 최초의 중일(中日) 합영제약기업이었다. 중국 정부 산하 의약집단유한공사(의약그룹주식회사)와 일본 본사가 각각 절반의 지분을 갖고 설립한 회사였다.
수액제를 취급하던 이 회사는, 중국 의료시장에서 새로운 치료약을 보급하려는 비전 앞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단지 이상적 목표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치료약 전문 조직을 만들라는 특수임무를 부여받고 부임하였다.
천진에 있는 중국 지사는 100년이 넘는 러시아풍 목조건물이었다. 건물은 오래됐지만 그 속에 본사 기능이 갖춰져 있었다.
시 외곽에는 대규모 GMP 공장이 있었다. 그곳의 수많은 생산직 노동자들은 천진시의 고용을 창출하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1000명에 육박하는 종업원을 수용하고 있는 중견 기업이었다.
그는 총경리실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수액제를 총괄하는 중국인 총경리(사장), 공장 기술 지도를 담당하는 일본인 부총경리(부사장)와 함께 한 방에서 삼국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첫 공식 직함도 부총경리였다.
그는 그 둘을 믿고 따르는 입장이었지만, 그들이 어디까지 마음을 여는지 알 길은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그를 감시하고 자국에 보고하는 임무까지 맡고 있었을 것이다.
그와 그들은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3인 경영자회의를 가졌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여직원들이 세숫대야를 들고 사무실 옆의 샤워실을 오가는 모습을 보았다. 수도와 전기가 원활하지 않던 시절, 그에게는 낯선 풍경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다.
숙소는 국영호텔 3성급 스위트룸이었다.
호텔에서 외국인을 볼 수는 없었다. 단순한 숙박 공간이라기보다 관리되는 공간에 가까웠다. 가끔 프런트 여직원의 친절한 미소가 스쳐 지나가곤 했지만, 그 미소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쉽게 읽히지 않았다.
중국어가 유창하지 못했던 그는 손짓과 발짓, 그리고 필담으로 소통했다. 간단한 주문이나 요청조차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도시 곳곳에 완장을 찬 인물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는 시선과 감시의 기류를 조심스럽게 감지했다.
중국 직원들은 그가 일본 본사에서 파견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워했다. 그 혼란은 단순한 민족 감각을 넘어 기업 구조와 외교적 배경까지 연결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점심시간, 그는 낯선 반찬과 국이 놓인 구내식당에 앉아 있었다. 주변의 중국 직원들은 허기를 채우듯 두 그릇씩 밥을 비워댔다. 반면 그는 절반도 먹기 힘들어했다.
식사의 풍경은 단지 음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문화의 거리, 삶의 방식, 그리고 ‘다름’의 감각이었다.
물가는 낮았지만 음식이 몸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만은 확실했다. 한국에서 늘 접하던 자장면과 짬뽕이 그리웠다.
그렇게 그는 혈혈단신으로 중국 생활을 시작했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방식, 그리고 새로운 긴장 속에서 그는 조용히 깨닫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싸움은 시장이나 제품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될 참이었다.
회식 자리에서는 늘 52도나 되는 백주가 맥주잔에 가득 부어졌다.
중국인들의 건배 제의는 축구 경기의 열기만큼 뜨거웠다. 한국이 2002 월드컵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의 술잔은 계속해서 채워졌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의 기개를 보여주러 단숨에 들이켜다 화장실 앞에서 기절하기도 했다.
그가 부임한 지 석 달이 지나자 가족이 합류했다.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아파트로 옮겨 살게 되었다.
첫날밤, 아이들은 부엌 창을 통해 밀려오는 소음에 놀라 뒤척였고, 아내는 낮 동안 겪은 언어의 벽과 문화의 강을 이야기했다. 그들의 웃음은 집 안을 채웠지만, 그 웃음 속에는 모두가 가진 각자의 ‘낯섦’이 스며들어 있었다.
날이 갈수록 그는 직원들과 소통하려 몸짓과 표정, 그리고 잘못된 통역을 통해 웃음을 나누었다. 북경 표준어는 아직 서툴렀지만, 노래를 통해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래방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직원들과 어울려 다니며 함께 부른 중국 노래는 그에게 작은 다리를 놓아주었다.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한다는 月亮代表我的心(월량대표아적심: 등려군이 부른 중국 발라드)은 따라 부르기 쉬워서 그의 애창곡이 되었다. 어느새 그의 마음속에는 조금씩 현지에 대한 이해가 싹트기 시작했다.
황하는 여전히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 강물처럼, 이곳의 시간도 느리지만 묵묵히 흘러갔다. 하루, 이틀, 그리고 몇 달이 지나면서 그는 서서히 깨달았다.
중국의 ‘질서 없음’ 속에는 나름의 리듬이 있었고, ‘다름’ 속에는 이해하려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언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문득 생각했다.
“변화를 만들려면, 이해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갈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중국 생활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꿈속에서는 여전히 가방을 들고 영업사원들과 강남역을 맴돌고 있는 자신이 흐릿하게 보였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