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오래 모시면 생기는 일
강남역 미아 제2부 3장 2화
- 사람을 오래 모시면 생기는 일
"권력은 사라졌지만, 모셨던 시간은 남았다."
1. 사람을 모신다는 것
사람을 오래 모시면 이상한 능력이 생긴다.
말이 끝나기 전에 뜻을 알아듣게 되고, 대답이 나오기 전에 표정을 읽게 된다.
그와 회장의 관계도 그랬다.
처음에는 언어가 어려웠다. 영어와 일본어, 오래된 한국식 표현이 뒤섞였고 문장은 늘 반쯤 열린 상태로 끝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는 깨달았다.
그가 이해한 것은 말이 아니라 권력이었다.
2. 회장실 앞에서 배운 것
회장실 문 앞은 작은 전쟁터였다.
결재판을 든 직원들, 긴장한 얼굴의 임원들,
한 번의 사인이 하루의 운명을 바꾸는 공간.
세상이 전자결재로 바뀌어도 마지막 판단은 여전히 사람이 했다.
그는 그 문을 가장 빠르게 드나드는 사람이었다.
오래 머무르면 질문이 생기고, 질문이 길어지면 책임이 늘어났다.
그래서 그는 배웠다.
1분 안에 끝내는 법.
3. 접어두는 것들
조직에서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조금씩 접는다.
옳다는 확신.
하고 싶은 말.
그리고 자존심.
언젠가부터 그는 자신을 생각했다.
쓸개를 꺼내 책상 서랍에 넣어둔 사람이라고.
열어볼 수는 있지만, 다시 몸 안에 넣지는 못하는 것.
4. 집 앞에서 돌아선 밤
저녁은 하루의 끝이 아니었다.
회장의 식사 자리, 해외 손님, 끝나지 않는 술잔.
그는 늘 분위기의 중심에 있었지만 동시에 가장 개인의 삶이 지워진 사람이었다.
가끔 집에 가도 된다는 말을 듣는 날이 있었다.
신나는 해방감에 귀가하는 저녁이면 귀신같이 전화가 다시 왔다.
현관 앞에서 발길을 돌려 택시에 올라타던 밤들.
식어가는 된장국을 바라보던 아내의 얼굴.
그 장면은 회장과의 어떤 대화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5. 양자라는 말
회장은 종종 남들 앞에서 말했다.
“자네는 내 양자 같은 사람이야. 아니, 양자야.”
조직에서 그런 말은 칭찬이면서 동시에 경계선이었다.
그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회사는 가족이 아니었다.
약속은 다음 해로 또 다음 해로 미뤄졌고,
보상은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후배들의 연봉이 자신을 넘어선 날, 그는 처음으로 명확히 이해했다.
"충성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6. 다시 나타난 그림자
그는 회장이 물러났을 때 모든 여정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 뒤, 강남역 근처 호텔에서 다시 회장을 만났다.
장기 투숙자 명단에 올라 있는 노인.
한때 조직을 움직이던 사람은 가끔 옛사람들을 불러 식사를 같이 했다.
술은 한 잔이면 충분했고 대화는 짧아졌다.
권력이 사라지면 목소리부터 작아진다고 했던가?
그는 그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7. 마지막까지 남는 고집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느리게 만들었고, 노인의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갔다.
그가 병원에 가자고 재촉하는 말에 회장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이 사람아, 내 몸은 의사인 내가 더 잘 알아.”
그 말은 평생 회장을 지탱한 자부심이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방식이었다.
8. 사진 한 장이 알려준 것
어느 여름날, 공항 대합실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그는 사진을 보는 순간 알았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국제전화, 구급차, 병원 이송.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는 모든 일을 멈췄다.
어쩌면 그것은 의리가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이 마지막으로 요구한 책임이었는지도 모른다.
9. 가족이 아닌 보호자
병실에서 그는 가족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자주 호출되는 사람이었다.
회장 말동무뿐만이 아니었다.
입원 절차, 퇴원 문제, 해외에서 오는 사람들 안내.
누군가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래된 관계는 설명하는 순간 얕아지기 때문이었다.
10. 가장 조용한 순간
마지막은 놀랄 만큼 조용했다.
산소호흡기의 규칙적인 소리.
말 대신 숨만 남은 얼굴.
향년 아흔일곱.
한 시대를 움직이던 회장은 결국 침대 위 작은 한 인간으로 돌아갔다.
11. 마지막 얼굴
입관식에서 본 얼굴은 낯설었다.
약물 독기로 부어오른 얼굴은 기억 속의 단단한 사람과 달랐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슬픔은 종종 울음이 아니라,
말을 잃는 시간으로 찾아온다.
12. 아직 끝나지 않은 대화
회장은 가끔 그의 꿈속에 나타났다.
감색 정장, 흰 셔츠, 노란 넥타이.
언제나 무언가 말하려 들지만 끝내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그 말은, 살아 있을 때 서로 꺼내지 못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13. 시간이 남기는 것
돌아보면 그는 한 사람을 모신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통과했다.
권력의 온도, 조직의 침묵, 사람의 욕망.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함께 나이를 먹어갔다는 기억.
강남역을 지날 때마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사람은 떠나지만,
누군가를 오래 모셨던 시간은,
결국 자기 인생의 모양이 되어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가끔 궁금해졌다.
지금 그가 지나가는 이 시간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오래 모셨던 기억'으로 남게 될까.
"아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그를 모셨던 사람은 조직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진짜 이야기는, 회장이 떠난 뒤에야 시작되었다는 것을.
"사람을 모신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한 시대를 견디고 있었다."
*이미지: 구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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