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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하비 Apr 05. 2020

나는 전업맘입니다.


It's not who I am
It's what I do.


드라마 섹스앤더시티 마지막 시즌에서 캐리가 칼럼니스트를 그만두고 파리로 떠나기 전 미란다에게 한 말이다.


"칼럼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내 직업이야."


한 사람을 알 때, 직업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요즘엔 '어쩌면 인생은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엄마도 직업이 될 수 있을까


남편과 나는 잠이 들기 전 침대에 누워 대화를 나누곤 한다. 어제는 남편에게 지금 나이가 과거에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과 맞게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남편은 늘 그랬듯 뜨뜻미지근한 답을 주었고 대답과 동시에 나는 말했다. 나는 내가 31살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고, 일을 하지 않는 전업맘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전업맘이 된 지 3년이 다되어간다. 전업맘이란 육아를 업으로 하는 엄마를 말한다. 나는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쉼 없이 일해왔기에 출산 후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게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풍족한 돈보다는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택했다. 어디까지나 내 선택이었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을,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선택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르는 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튼튼한 몸으로 튼튼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많은 것이 변했다. 내 인생은 더 이상 내 위주가 아니었다. 나라는 사람은 어리석게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될 줄 알았는데, 엄마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 전과 똑같은 사람이었고 노력 없이는 '진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자식일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내 자식을 키우며 알게 된다. 경험해보기 전에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미리 알았다면 할 수 있었을까?



엄마가 직업이라면,
엄마에게 주어진 일은 아이를 잘 키우는 것.
과연 '잘' 키운다는 건 뭘까.


아이가 22개월이 되던 작년 겨울의 끝에 대기 신청을 해뒀던 어린이집에서 입소가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동네에서 꽤나 인지도가 높은 곳이었기에 연락이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신청해두었던 것도 잊고 지내던 중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갑작스레 다가온 어린이집 입소. 원장님과 상담했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요 어린것을 맡겨두고 뭘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 마음이 갈팡질팡 했다.


겁먹었던 것과는 달리 아이는 빠르게 잘 적응했다. 몇 주간의 적응 기간이 끝나면서 담임 선생님과의 첫 상담 시간이 찾아왔고, 상담 전 미리 작성해야 하는 질문지가 아이의 알림장에 꽂혀왔다. 질문지에는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도 있었지만, 곰곰이 생각해야만 적어낼 수 있는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깊이 고민해본 적은 없지만 이미 마음에 뒀던 답이 있었다. 아이를 어떤 아이로 우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답은 화목한 가정 안에서 사는 것이 인생에 있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아는, 그런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짧은 생각 끝에 칸을 채울  있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칸이 차고 넘치도록 바라는 것도 많아지겠지.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아이를 '' 키운다는 것의 답은 이거다.



내 젊은 날을 바쳐 키운 아이에게 바라는 게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도 한낱 소심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대비했으면 한다. 직업과는 완전히 달리 대해야 하겠지만, 직업을 가진 것만큼의 사명감을 가졌으면 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공부하고 나를 발전시켰으면 한다. 순간순간 온몸과 마음을 던졌으면 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나 물질적인 것을 바라지 말았으면 한다.


엄마라는 직업. 그만둘 수도 없지만 절대 그만두고 싶지 않은 일이다. 아이가 커가면서 투잡, 쓰리잡을 가지게 될 수도 있지만 나의 퍼스트 잡은 엄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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