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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 Jun 11. 2020

어느 날 카페를 나오면서

(그림.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 빈센트 반 고흐)


어느 날 카페를 나오면서 문득 생각했다.


혜화의 수많은 카페들 중에 나는 왜 하필 이곳에 자주 갈까.


그 날 갔던 카페는 나에게는 그저 독서실 비슷한 것이었다. 최근 들어 자주 찾는 곳인데, 집중도 잘 되고 편안한 느낌이 들어 자주 가던 참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은 공간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왜 그 카페에 모였을까.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까.


내가 그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이유는 그곳이 타인과 연결돼 있으면서도 분리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카페는 혜화 근처의 몇 안 되는 정원 느낌을 주는 카페인데, 통일성 없이 배치된 의자와 책상 사이의 화분들이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남들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신경 안 쓰고 적당히 집중하기에 좋았다.


지난주에는 7년 지기 친구와 함께 당일로 파주에 여행을 다녀왔다. 계획도 없이 무작정 나섰지만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우리는 즉흥적으로 맛집 한 곳과 유명한 빵집 두 곳, 파주 출판단지, 헤이리 예술마을 등을 다녀왔다. 유명한 빵집에는 카페가 있었고 파주 출판단지에도 카페가 있었고 헤이리 예술마을의 공방에도 카페가 있었다. 카페를 굳이 찾아 나선 것도 아닌데, 우리는 하루 여행 동안 수많은 카페를 마주쳤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카페 없는 세상에서 살기 힘들게 되었다. 카페는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에서 큰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도시의 번화가뿐만 아니라 관광지에는 어디에나 카페가 즐비해 있고 어느새 농촌에도 카페가 들어서고 있다. 이제는 집 인테리어도 카페처럼 꾸미는 게 유행이다. ‘빨리빨리’를 좋아한다는 한국인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차와 여유를 즐기고 있었던 지 놀랄 정도다.



파주에 함께 다녀온 친구와 4년 전 세계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호주와 미국, 멕시코, 콜롬비아 등지를 다니며 가난하게 여행한 터라 카페를 자주 찾진 않았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카페가 있다. 멕시코와 콜롬비아에 있는 카페였다. 호주와 미국의 카페는 모두 스타벅스 아니면 그 비슷한 것들이어서 기억에 별로 남지 않았다. 멕시코와 콜롬비아의 카페는 나름의 특색이 있었다. 멕시코의 카페는 문화예술 공간과 많이 결합돼 있어 고즈넉한 느낌을 주었다. 전통 음료를 파는 곳도 있었는데 꽤 맛있었다. 콜롬비아의 카페는 정말 맛있는 커피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만한 카페가 있을까. 한국의 카페에는 어떤 특색이 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았지만 자료가 많이 없었다. 서구의 카페의 역사를 분석한 책은 있었지만, 한국의 요즘 카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없었다. 옛 유럽의 카페는 예술가들이 즐겨 모이는 공간이었다. 과거 우리나라의 카페는 일제강점기 등장한 ‘모던보이’들이 허영심을 충족시키던 공간이었다. 이후 한국에서의 카페는 ‘다방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전화기 다방, 음악다방 등 다양하게 모습을 바꿔왔지만 모두 다방문화의 일종이었다.



현재 이런 종류의 카페는 거의 모두 사라져 가고 없다. 지금은 우리가 잘 아는 도시적인 느낌의 카페들만이 남았다. 우리가 이용하는 요즘의 카페는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우후죽순으로 생긴 것으로 짐작한다. 카페에 관해 전 국민이 알 만한 노래가 하나 있다. "Cuzz you are my girl. You are the one that I envisioned in my dreams." 2009년 끈 인기를 끌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OST, 김조한의 'You are my girl'이라는 노래다. 사람들은 이 노래를 어느 한 장면과 함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프랜차이즈 카페 '카페베네' 로고다. 그즈음 프랜차이즈 카페가 전국적으로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카페가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바람에 공급과잉으로 문을 닫는 곳도 많아졌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이후 카페 시장은 한국에서 꾸준히 성장해왔다. 카페 시장의 양적 성장은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어놓았다. 이때부터 우리는 카페 없는 한국에서 살기 힘들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 이러한 카페가 최근 들어 한 가지 뚜렷한 특징을 보이는 것 같다. 대표적인 현상이 ‘리단길 열풍’과 ‘스타벅스 굿즈 열풍’이다. 외국인에게 ‘한국의 카페’에 대해 말로 설명하자면 이 두 가지 현상으로도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 둘은 다분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리단길 열풍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넘어서 한국적인 의미가 있다.


그 두 가지가 보여주는 것은 한국의 과도한 획일주의와 유행 추구 현상이다. 어느 한 곳이 인기를 끌면 너도 나도 그곳을 따라 한다. 경주의 황리단길에 가본 적이 있다. 그곳의 카페는 서울의 여느 카페에 기와지붕만 얹어놓은 모양이었다. 그것 말고는 그곳이 전혀 경주라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좀 더 고심해서 경주다운 카페를 만들 순 없었을까. 그래도 익선동은 ‘복고’라는 느낌은 그대로 살려두었다. 황리단길이 그런 모습으로는 유행이 지나고 나면 그저 흉물스러운 골목으로 남을 게 눈에 선했다. 황리단길 바로 옆 골목에는 외할머니께서 살고 계신다. 어릴 적 사촌동생들과 뛰어놀던 어머니의 모교는 황리단길을 위한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한국에서 요즘의 카페는 여가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삼청동 카페거리, 경리단길, 익선동 카페골목. 최근 유행하는 ‘핫 플레이스’는 모두 카페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굉장히 최근에 일어난 현상이다. 이는 최근 들어 여가 활동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결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여가 문화가 그만큼 빈곤하다는 것을 표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가 시간에 ‘남들이 다 가는 카페에 가서 인증 사진 찍기’ 말고는 놀거리가 별로 없다는 말이다.



100년 뒤의 한국에는 카페가 많아졌으면 많아졌지,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때까지의 ‘핫 플레이스’들이 그러했듯, 다음 유행이 또 어떤 곳을 집어삼킬지 걱정이다. 10년 뒤 누군가가 찍은 도심 골목의 모습에 똑같은 카페들만 남아있다면 보기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이미 혜화역 주변에만 해도 5개의 스타벅스가 있다. 한국에서의 카페가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강준만 교수의 말대로, (한국 영화계에서처럼) '중박'은 없고 ‘대박’ 아니면 ‘쪽박’ 카페만 남아있을 게 눈에 선하다. ‘인스타그램에 멋들어지게 인증할 사진 찍기’를 넘어서 다른 가치가 있는 카페가 많아졌으면 한다.


카페가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다양한 느낌과 의미의 카페가 살아남아야 한국인의 여가 문화도 다양해질 것 같다. 30년 전통의 맛집이 남아 있듯이, 30년 전통 카페가 남아있었으면 한다. 그것은 ‘클래식’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어느 날 문득 발견한 좋은 카페가 30년 뒤에도 그 모습으로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좋은 곳에 위치한 근사한 카페가 유행이 지나고 나서 흉흉한 모습으로 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꽃보다 할배>에 나온 이탈리아의 100년 된 카페가 한국에도 있길 바란다.


그래서 2020년 6월 7일 카페를 나오면서 문득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카페를 기록으로 남겨보자. 평생 동안.


목표는 이것을 10년 단위로 정리해 책을 내는 것이다. 지금이 2020년이니까 앞으로 10년, 이후 2030년대, 2040년대, 2050년대의 한국의 카페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문화심리학자 허태균 교수는 한국의 문화적 가치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모두 파괴됐다고 말한다. 한국에 다양성이 부족한 원인이다. 파괴된 자리에 새로 들어선 것은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낸 성냥갑 모양의 건축물들뿐이다. 앞으로의 미래에 카페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카페가 일상화된 지금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렸다.



나는 카페 전문가는 아니다. 일부러 많은 카페를 찾아다니지도 않을 것이다. 나의 일상 속에서 카페라는 공간에 대해 자연스럽게 녹여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기록서는 카페 전문가들이 쓰는 블로그 글보다는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업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이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카페에 대해 기록으로 남기는 이는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봉준호 감독이 말했다. “개인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다.” 나는 이것을 카페에 적용해보려 한다. 누군가가 나의 완성본을 본다면, 내가 접한 카페의 일상을 통해 당대 한국의 카페 문화에 대해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카페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기록이지만, 크게 과장하면 한국 대중의 일상사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21세기 한국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기록일 수도 있다. 한국의 대중 차 문화에 대한 기록일 수도 있고, 건축 문화에 대한 기록일 수도 있다. 


어느 날 카페를 나오면서 문득 쓸데없이 거창한 포부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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