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로 사부작사부작
사부작사부작이라는 단어가 참 예쁘다.
사전 의미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계속 가볍게 행동하는 모양'인데, 내게는 '손을 꼼지락거려 어설프게나마 무언가를 만들어 기뻐하는 행위'라는 느낌이다.
나의 사부작사부작은 뜨개질이다.
2016년 겨울에 처음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5년 차 뜨개질 인간이다. 뜨개질을 시작하게 된 이모저모는 여기 '뭘 해도 어설픈 인간의 뜨개질 사랑'에서 봐주시기를.
한 2년쯤 되면 자작 작품을 한두 개쯤 만든다는데, 나는 실력이 형편없다. 5년이 되도록 자작은 꿈도 못 꾼다. 도안을 보고도 전혀 엉뚱하게 뜨다가 푸르기를 네다섯 번은 예사로 하고, 완성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한 번 있었다. 예뻐서 과감하게 시작했으나 결국 풀어서 꼬불꼬불한 실만 생성하는 나. 그러다 보니 도안을 자꾸 피하게 되는데, 이래서는 10년을 떠도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할 테니 도안 보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과연 올해 안에 완성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현재 진행 중인 옷이다.
이름은 '마쉬멜로우 풀오버'다. 바른 표시는 '마시멜로 풀오버'지만 원작자가 붙인 이름이 '마쉬멜로우'였다.
혹시 관심 있으신 분은 여기에서 패키지(도안과 실)를 구입할 수 있다. :)
원작은 예쁜 연분홍색인데, 원래 엄마 떠드리려고 산 거라 짙은 풀색을 선택했다. 그런데 디자인이 아무래도 어려 보여서 내후년이면 일흔이신 엄마에게는 안 어울릴 것 같아서 내가 입기로. 내후년에 마흔인 나에게도 안 어울릴까 싶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동안이니까 괜찮겠지.
목부터 코를 잡아 아래로 떠내려가는 탑다운 형식이다. 사진에서 실이 바늘에 걸린 쪽 말고 실뭉치와 가까이 있는 부분, 그곳이 목이다.
보통 목이나 소매단, 밑단은 고무뜨기를 한다. 고무처럼 신축성이 있는 뜨개 방식이어서 이름이 고무뜨기인데, 겉뜨기와 안뜨기를 반복하면 된다. 이 풀오버의 고무뜨기는 재미있게도 겉뜨기를 '꼬아뜨기' 방식으로 한다. 뜨는 바늘을 바늘에 걸린 실 중 앞쪽에 있는 실에 넣는 것이 겉뜨기라면, 꼬아뜨기 겉뜨기는 앞이 아니라 뒤쪽 실에 넣어 뜨는 것이다. 이번에 처음 떠봤는데, 일반 고무뜨기보다 좀 더 톡톡하게 튀어나온 편물이 완성됐다. 사진으로도 줄이 도드라진 것이 보일 것이다. 저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 다른 옷을 뜰 때도 고무뜨기는 저 방식으로 할 생각이다.
겉뜨기-안뜨기를 몇 단 반복한 후, 코 늘림을 해서 또 몇 단 고무뜨기를 뜨고, 소매를 나누는 부분까지 균등하게 코를 늘리며 떠내려간다. 이 옷은 소매에 들어간 굵은 꽈배기가 매력 포인트다. 아직 뭐가 꽈배기인지 드러나지 않는데, 어느 정도 진행하면 티가 확 날 것이다. 그때가 기대된다.
저기까지 뜬 단계가 소매와 몸통을 분리하기 한 단쯤 전이다. 이제 소매에 해당하는 코를 다른 바늘이나 실에 걸고 앞판과 뒤판만 쭉 떠내려가 마무리하고, 양 소매를 꽈배기 무늬 넣어가면서 뜨면 완성이다.
이렇게 쓰면 굉장히 쉽고 금방 할 것 같은데, 워낙 손이 느리고 더듬거리는 내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도 하고 글도 쓰고 게임도 하고 덕질도 하고 강의도 듣고 남는 시간에 뜨개질을 하니까 자주 하지도 못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을 전에는 완성해서 입고 다니고 싶다.
뜨개질은 재미있다. 재미있으니까 쉽게 질리는 내가 몇 년씩 하고 있다.
또 뜨개질은 배신하지 않는다. 뜨는 법이나 도안 보는 법을 모르면 당연히 '푸르시오~!'가 기다리고 있지만, 그건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방법만 알면, 뜨개 고수들의 작품처럼 차르르르 정갈한 작품은 아니어도 제법 괜찮은 완성품을 만들 수 있다. 또 하다 보면 실력이 늘어서 점점 만족스러운 완성품을 손에 넣는다.
공부도, 일도 열심히 하면 그만큼 보상이 돌아온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이어져 유기적으로 굴러가는 이 세상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어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도 많지 않나.
뜨개질은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변수가 없어서 좋다. 평화롭다.
아하, 나에게 뜨개질은 평화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