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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도담 Feb 12. 2020

18. 뭘 해도 어설픈 인간의 뜨개질 사랑



만드는 취미가 갖고 싶었다. 손으로 조몰락조몰락 귀엽고 예쁜 것을 만들어 쓰고 입고 들고 다니는 취미, 멋있지 않은가. 그러나 내 손은 만들기보다 부수기에 적합한 손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트레이를 받기만 해도 주변에서 불안해하는 그런 손. 또 엉덩이가 무거워서 도전을 잘 안 하는 성격이다. 마이너스 손과 귀차니즘 성격을 갖춘 내게 만들기는 어렴풋한 꿈이었다. 


그런 내게 운명처럼 찾아온 만들기가 있으니, 바늘과 실로 세상을 창조하는 뜨개질이다. 


“나 요즘 뜨개질한다?” 이렇게 말하면 보통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나도 예전에 목도리 떴는데 어렵더라.” 

“그럼 나 나중에 목도리 떠 주라.”


공통으로 나오는 단어가 ‘목도리’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목도리 뜨기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람은 알 것이다. 목도리 뜨기는 쉽지 않다. 짧은 목도리라도 목에 두를 수 있어야 하니 길어야 하고, 또 재미있게도 목도리를 뜨고 싶어 하는 사람 중 대다수가 긴 목도리를 선호한다. 무늬 없이 뜨더라도 길게 뜨려면 시간이 걸리니 지치고 지루하다. 만만하게 도전하나 만만하지 않은 것이 바로 목도리다. 초보가 처음 도전하기 좋은 소품은 무엇일까? 모자다. 초보도 마음먹으면 하루 만에 완성하는 모자가 무난하다. 겉뜨기와 안뜨기에 더해 줄이는 방법도 배울 수 있고 연결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모자라면 줄무늬 배색하기도 좋아 배색 뜨기까지 배울 수 있다. 여러분, 모자를 뜨세요.


뜨개질 경력이 십 년쯤 되는 대가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뜨개질을 제대로 시작한 것은 2016년이고, 정신 놓고 실을 사재기한 것은 2017년과 2018년이다. 좀 봐줄 만한 걸 뜨기 시작한 시기는 아마도 2018년 말부터일 것이다. 나름 경력은 좀 있는 니터인데, 필 받으면 바늘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 필을 자주 받지 않는 게으름뱅이이며, 뜨개 동영상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까막눈이다. 참고로 내 첫 뜨개 작품도 목도리였다. 이야, 목도리 이 녀석, 존재감 참 대단하다. 


처음 바늘을 잡은 것은 꽃다운 학창 시절이었다. 이때는 대충 해보다가 질려서 사는 게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고, 십 년 넘게 뜨개질은 머나먼 당신이었다. 그러다가 2016년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세이브 더 칠드런’ 신생아 모자 뜨기를 홍보하는 부스를 봤다. 주먹 정도 크기의 알록달록 실타래를 쌓아 놓은 부스였다. 그전에도 겨울 냄새가 나는 계절이면 번화가에서 드문드문 봤지만 감흥이 없었는데, 그때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흥미가 생겼다.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면 운명을 느꼈다고 할까? 


통이 큰 나는 모자 뜨기 키트를 세 개나 주문하고,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뜨개질하는 법을 알아보았다. 당시 알던 사람에게 뜨개질 이야기를 언뜻 했는데, 이게 또 운명이었다. 그는 신생아 모자 뜨기를 꾸준히 해온 사람이었다. 그가 밥 한 끼에 뜨개질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해 사제 관계가 성립했다. 그에게 배워 겉뜨기와 안뜨기를 무한 반복한 고무뜨기 목도리를 완성했다. 실 연결법도 모르고 장력 조절도 못 해 어설프지만 눈물과 콧물이라는 정성을 퍼부은 첫 작품이었다. 하나를 완성한 경험은 곧 자신감이 되어 뜨개질 소용돌이에 훌쩍 뛰어들었다. 몇 달 사이에 완성한 목도리만 스무 개는 될 것이다. 만든 목도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뿌렸다. 졸작을 받아 처분도 못 하고 곤란했을 그때 그 사람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무한 목도리 공장 시절을 거쳐 지금은 주로 옷을 뜬다. 동영상이나 책을 참고하면서 뜨고 푸르고를 반복해 완성한 옷이 열 벌쯤 된다. 삐뚤빼뚤한 옷이 대부분이지만 서랍을 열면 뿌듯하다. 사실 뜨개질은 힘들다. 눈은 침침하고 어깨도 뭉친다. 양손을 움직이니까 치매 예방에 좋다지만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실 먼지를 보면 뇌보다 폐가 걱정된다. 그래도 뜨다 보면 뭔가 완성되니 보람이 있고, 무엇보다 숙원이었던 만들기 취미가 생겨 행복하다. 힘들어도 얻는 것이 더 많으니 점점 더 빠져든다. 


그래서 오늘도 기쁘게 뜨개바늘을 잡는다. 







*

공모전에서 보기 좋게 미끄러진 글인데 저는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ㅎㅎ 

아까우니까 브런치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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