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으로 전화와 문자만 하던 시절이 과장 열 숟가락 보태 엊그제 같은데 요즘 세상은 지갑 없이 폰 하나 주머니에 쑤셔 넣고 나가도 아무 문제없는 휴대폰, 정확히는 스마트폰 만능시대다.
컴맹에 이어 모바일맹이라(그냥 IT맹이라고 하면 되나?) 별 세 개네 페이를 쓸 줄 모르고 교통카드 기능을 어떻게 폰에 넣는지는 모르지만, 폰케이스에 카드 하나 찔러 넣으면 세상 두려울 것 하나 없다. 잃어버리면 무섭고 울고 싶고 죽고 싶고, 그러니까 왜 폰에 쓸데없이 카드를 끼우고 다녔냐고 자괴감에 빠지겠지만 안 잃어버리면 되니까! 곁가지로 빠지는데, 이 말의 절친으로 "보험 굳이 왜 들어, 안 아프면 되지"가 있다.
계좌이체나 인터넷 결제도 폰이 편하다. 컴퓨터로 하면 맨날 뭘 업데이트하라느니 다운받으라는데 폰은 그럴 일이 자주 없고 있어도 업데이트가 초고속이다. 와이파이가 느리면 데이터로 써도 되고. 초고속인터넷내가팼어가 이젠 랜선이 아니라 데이터다, 데이터.
티켓팅도 마우스 깨작거리다 실패하기보다 작은 액정을 더듬거리다가 실패하는 게 덜 상처를 받고...이건 아니네. 어떤 도구로 실패하든 다 슬프다.
폰으로 영상도 다 보니 텔레비전도 필요 없다. 애초에 텔레비전을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보긴 한다.
또 뭐가 있을까? 아무튼 폰 하나로 웬만한 일은 다 해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폰으로 못 하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글쓰기다.
블로그나 트위터에 짧게 쓰는 글이야 폰으로도 얼마든지 쓰는데, 열 줄 넘어가는 글은 못 쓰겠다. 특히 인스타그램은 폰으로 해야 하니 정말이지 헛소리만 늘어놓는다. 공연 리뷰나 책 리뷰, 내 번역서 소개를 쓰고 싶은데 늴리리야 늴리리다.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는 자유롭게 생각하며 글을 쓸 수 있는데 폰 화면을 보면 생각주머니들이 입을 꼭 다문다. 원래도 얄팍한 머리가 더 납작해지는 기분이다. 노트북이나 폰이나 똑같은 액정 세상인데 왜일까.
글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보면, 부단히 메모하라고 한다. 예전에는 메모하려면 종이와 펜이 필수품이었는데 요즘은 메모용 앱이라는 간편한 도구가 있다. 터치만 하면 되니 손도 안 아프고, 나도 못 알아보는 내 글자를 해독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나도 열심히 메모해보려고 좋다는 앱을 깔아봤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처음 깔고서 딱 한 번 쓰고 끝이었다. 기똥찬 이야기가 떠올라서 '이거 대박이다! 베스트셀러네!' 하고 앱을 열면 반짝거렸던 아이디어가 흐릿하게 페이드 아웃된다. 의미 없는 글자만 몇 나열하다가 결국 고개를 숙인다. 역시 나는 폰과는 상극이라는, 폰에 의존해 살면서 배은망덕한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제목대로 지금 이 글은 폰으로 쓰고 있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가끔 이상한 소리 써놓고 사라질 때 제외하곤 나름 머리를 쓰고 품을 들여 노트북 앞에 앉아 쓰는 글이다. 그렇게 안 보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위에서 열심히 폰으로 글 못 쓰겠다고 투덜대고서 왜 지금은 폰으로 쓰고, 심지어 퇴고도 없이 그냥 올릴 생각을 하는가.
1. 잠이 안 와서.
2. 너무 오래 글을 안 올려서.
3. 노트북이 드디어 망가져서.(커피 쏟았어요)
4.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5. 5번까지 채우고 싶은데 떠오르는 게 없다.
뭐든 꾸준히 하면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천재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둔재는 된다고 믿고 싶으니, 폰으로는 안 된다고 체념하지 말고 종종 도전해서 익숙해지고 싶다.
지금 약간 의기소침한 시기여서 그런지, 마음속의 자그마한 '나'가 너는 둔재도 못 된다고,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는 밥버러지라고 자꾸 속삭인다.
이상한 짓 그만하고 얼른 자라는 뜻인가 보다.
그럼 이만, 안녕히 주무세요.
정말 떠오르는 대로 썼더니 이 무슨 괴상한 글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지 않나!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