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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도담 Feb 19. 2020

19. 주는 것도 좋고 받는 것도 좋은


선물을 좋아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도 좋고 다른 사람에게 받는 것도 좋다.

물욕 많은 중생이니 받을 때가 조금 더 좋지만, 받는 사람이 기뻐하는 표정을 보면 받을 때와는 결이 다른 기쁨을 느낀다. 성취감? 선물 주는 게 퀘스트도 아니고 성취감은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기뻐하고 좋아하면 나도 덩달아 기분 좋고 행복하다.


대단하고 거창한 선물을 바라진 않는다. 나도 대단한 선물을 줄 깜냥이 못 된다. 숨만 쉬어도 기본으로 나가는 생활비가 있는데 수입은 불규칙한 프리랜서이니 선물에 쓸 비용이 한정적이라 자주 주진 못한다.


그래서 내가 하는 선물은 자잘하다. 콘서트나 뮤지컬을 보러 가서 만나는 덕친이라면 짐이 안 되는 간단한 주전부리나 뜨개질로 뜬 인형 같은 작은 소품이고, 출판사처럼 일 관련해서 아는 분들께는 초콜릿이나 파이처럼 양이 좀 있는 디저트류다. 학창 시절에 만나 지금도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나 자주 만나는 동네 친한 언니에게는 드립 커피 세트처럼 약간 부피가 나가도 괜찮은 것 위주이고 종종 카페 기프티콘도 보낸다.


선물 받는 사람의 취향을 고려해 달라만, 위에서 말했듯이 한정적인 비용에서 생각해야 하니 보통은 이 정도이다. 먹을 것은 너무 맵거나 달지만 않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대부분 좋아하니 가장 기본적이고 호불호가 안 갈리는 것 같다. 못 먹는 것이라도 주변에 다른 사람은 먹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책이 많이 생기는 직업이라 책을 자주 읽고 자주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내 번역서가 선물 리스트에 추가되기도 한다.


뜨개질 소품은 내 취미로 만드는 거라 거추장스럽고 궁상맞아서 싫었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뜨개질 새내기 시절, 갈 곳 없이 타오르던 뜨거운 정열 때문에 벌인 일이다. 소품 받으신 분들, 죄송합니다.

지금은 요청받은 것만 만들거나 재료비를 받고 만든다. 수고비도 받아야 하지 않나 싶은데 돈 받고 팔 실력도 아니고 만드는 게 재미있는 거니까.


아무튼, 이렇게 큰 부담 안 가는 선물을 주기 좋아하니 받는 것도 저런 것들을 좋아한다. 가끔 기분 전환 겸 집중력 환기를 위해 카페에 나가 일하니까 카페 기프티콘을 받으면 정말 행복하다. 기프티콘을 받은 날과 쓴 날은 하루 종일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왜 나는 선물을 좋아할까? 커피나 케이크 같은 것은 내 돈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고 실제로 산다.

기프티콘이 없어도 집에서 집중이 안 되면 카페에 가서 여전히 집중 안 되는 머리를 부여잡고 어떻게든 일하려고 하고,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을 잦은 빈도로 남발하며 달콤한 주전부리와 게임머니를 지른다.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욕구를 해소해주는 선물은 어떤 의미에서 가치가 낮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돈으로 뭔가 했을 때보다 다른 사람이 선물해주면 더 기쁘다.

나를 생각해서, 내가 좋아해 주기를 바라면서 선물을 고르고 결제하는 귀찮음과 통장의 마이너스를 감내해주니까 기쁘다. 그 순간에는 그 사람 머릿속에 내가 살아있다는 뜻이므로.


이렇게 열심히 의미를 부여 해도 그냥 나한테 이득이니까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선물 받은 사람이 기뻐하는 표정이나 좋아하는 카톡 메시지를 보면 내가 기분 좋고 행복하니까 다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받는 사람의 기쁨보다 내 기쁨을 우선시하는 행동이니 어떻게 보면 매우 이기적이다.

게다가 가끔은 내가 한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혼자 시무룩해서 '나는 너를 이렇게 챙기는데 너는 왜 나를 안 챙겨줘?'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은 챙겨달라는 말도 안 했고 티도 안 냈는데 나서서 챙겨 놓고선 비슷한 무언가를 바란다.

기브 앤 테이크도 아니고, 엎드려서 절받기, 억지로 줘놓고 삥뜯는 심리다. 나 양아치인가.

좋아서 했으면 혼자 좋아하고 끝내야 하는데 그게 쉽질 않다. 너무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그런 나를 깨달으면 너무 부끄러워서 어디든 숨고 싶다.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 소소한 것을 챙겨주고 싶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주는 게 좋으니까. 계속 주고 또 주다 보면 마음도 무뎌져서 아예 뭔가를 바라지 않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 무념무상의 경지에 오르고 싶다.


아아, 통장 눈치 안 보고 친구들이나 가족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무심하게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죽기 전까지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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