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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도담 Mar 17. 2020

책방 나들이를 해볼까

책과 함께 차곡차곡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듯이 나도 서점을 좋아한다. 

세상에 책이 이렇게 많다니, 싶을 정도로 다양한 책들 사이를 어슬렁어슬렁 걷고 휘적휘적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지갑을 연다. 


집에 앉아 책을 받아 보는 편리함과 굿즈의 매력에 빠져 인터넷 서점을 주로 이용하지만, 평대와 책장에 진열된 책 표지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몇 장쯤 팔랑팔랑 넘기면서 역자 후기나 추천사를 읽는 재미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집에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스크롤을 내리다가 봤으면 힐끗 보고 넘겼을 책도 서점에서 실물을 보면 새삼 흥미를 느껴 손에 들기도 한다. 


카드 한도가 무한정이 아니고 워낙에 수입이 불규칙한 신세이니 눈에 들어온다고 다 살 순 없다. 

또 손으로 들고 가는 것도 고려해야 하니 눈에 든 책이 열 권을 넘어가면 또 고민이다. 

아아, 아무리 긁어도 한도 따위 없는 화수분 같은 카드와 아무리 들어도 아프지 않은 튼튼한 알통을 갖고 싶다! 


수북하게 쌓아 올린 책 중에서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지 추리는 시간은 고문과도 같다. 동시에 재미있기도 하다. 

소담 A와 소담 B가 이 책을 사야만 하는 이유와 저 책을 사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발표하고 논쟁하고 토론한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세상에서 가장 약한 창과 세상에서 가장 약한 방패의 무의미하고 우스운 대결이다. 

당연히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입 밖으로 꺼내서 중얼거리면 위험분자니까. 


친구와 함께 서점에 가서 혼자 심각하게 일인극을 찍고 있으면, 보다 못한 친구가, 

“그래, 넌 이런 걸 읽어야지.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잖아.”

라면서 가끔 사줄 때도 있다. 

정확히 말해서 번역으로 먹고살지 아직 글로 먹고살진 않지만, 모처럼 사준다고 하는데 이러니저러니 토 달 것 없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친구의 호의를 노려서 서점에 가는 것은 아니다. ‘절대’ 아니라고 강한 부정을 하면 긍정 같으니 가볍게 아니라고만 말하겠다. 

친구도 책을 좋아하는데 일이 바빠 대형 서점에 자주 못 가니, 임도 보고 뽕도 따려고 오랜만에 만난 김에 서점 구경도 하는 것이다. 



대형 서점은 규모에서부터 압도된다. 책이 가득하고 문구도 가득하고 기타 등등도 가득한 종합쇼핑센터 같은 공간에 있으면 머리가 좋아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시장통 같아 정신이 없어 편하게 책을 구경하지 못하는데, 그 또한 매력이다. 

사람을 피하고 싶어서 평일 낮에 일부러 간 적도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때도 사람이 많았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책을 읽는 인구가 많았던가, 아니면 출판 관련 사람들이 시장 조사를 하러 온 걸까. 

어느 쪽이든 서점에 사람이 많으면 기분이 좋다. 특히 대형 서점인데 사람 없이 휘휘하면 괜히 내가 민망하고 주눅이 든다. 너무 많아도 투덜투덜, 너무 적어도 투덜투덜, 투덜이다, 투덜이. 


규모 있는 서점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특색 있는 자그마한 동네 책방도 좋아한다. 

아쉽게도 내가 사는 동네에는 주인이 꽃 가꾸듯이 세심하게 운영하는 동네 책방이 없다. 

경기도권에 있는 책방에 한 번 가보려고 찾아봤는데, 역시 경기도답게 편도 2시간은 거뜬히 걸렸다. 게다가 서너 번 갈아타야 해서 당분간은 포기한다. 


근처에서 아기자기한 책방을 기대할 수 없는 대신에 가끔 선릉역에 있는 ‘최인아책방’을 찾는다. 

친구가 그 근처에서 일해서 친구를 만나는 김에 몇 시간쯤 일찍 가서 책을 사고, 복층 구조로 된 2층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방금 산 책 혹은 가방에 들고 다니는 책을 읽는다. 

친구와 트위터로 대화를 나누느라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더 오래 붙잡고 있긴 하지만, 1층에서 책을 고르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그냥 앉아만 있어도 좋다. 마음이 편해진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둘 혹은 셋이 와도 조용하다. 원래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들이 오나? 분위기가 그래서 자연히 그렇게 되나? 아니면 내가 갈 때마다 우연히 조용할 뿐인지는 모르겠다. 

높은 천장과 역시 높은 서가와 한두 권씩 놓인 책들, 사뿐사뿐 서가 사이를 누비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나는 아직 이용해본 적은 없지만 서재도 따로 있다고 하고, 강연이나 음악회도 연다고 한다. 

아, 이 책방에 내가 번역한 책도 있다. 볼 때마다 반갑다. 다음에 갈 때도 있을까? 계속 있으면 좋겠다. 




동네 책방 탐방을 해보고 싶다. 지금은 경기도에 살지만 20년 넘게 서울에서 살아 서울이 더 익숙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편하니 서울 책방부터 차츰차츰. 

한 달에 한 번, 하루에 두 군데, 한 곳에서 책 두 권씩 총 네 권을 산다. 네 권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앉지 못하더라도 크게 무리가 가지 않을 마지노선이다. 

책방 투어는 여럿이 가기보다는 혼자 해야 한다. 아무리 취향이 맞고 친한 사람이라도 여유를 즐기는 방법은 다르니 자칫하면 의가 상할 수도 있다. 

문제는 워낙 겁보라서 모르는 곳을 혼자 돌아다니기로 다짐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얼마나 오래 걸리느냐면, 일이나 월 단위가 아니라 연 단위다. 

책방 탐방을 해보고 싶다고 마음을 먹은 지 벌써 2년이 훌쩍 지났다. 음, 어떻게든 한 번 가보면 더 이상은 낯선 시도가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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