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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도담 Mar 25. 2020

아기자기한 책방은 없어도 서점은 있다!

책과 함께 차곡차곡




2019년 어느 날, 집 근처에 대형 쇼핑몰이 생겼다. 대형마트 하나 말고는 구경하거나 놀러 갈 곳이 없는 동네여서 영화관까지 있는 쇼핑몰이 생긴다는 소식을 접하고 몇 년을 애타게 기다렸던 곳인데, 일본 불매운동 대상의 대명사 중 하나인 기업 이름이 들어간 ‘○○몰’이었다. 놀 곳이 생겨서 좋긴 좋은데 왠지 가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가족끼리 “문 열어도 가면 안 돼.”, “가서 구경만 해야지.”라며 얘기하던 기억이 난다. 


2019년에 개봉을 기다리던 영화가 있어서 영화관도 좋지만, 내가 가장 기대한 것은 대형 서점이었다. 쇼핑몰 안에 교보문고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지하철로 두어 정거장 떨어진 곳에 교보문고가 두 곳이나 있으니 교모는 아니리라 합리적으로 추론하며 어떤 곳일지 궁금해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쇼핑몰은 대대적인 이벤트와 함께 화려하게 문을 열었다. 초반에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몰렸다고 한다. 나는 사람 많은 곳에서 부대끼기 싫어서 문을 열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쇼핑몰을, 정확히는 서점을 찾았다. 







그곳에 들어온 서점은 아크앤북,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서점을 표방하는 곳이다. 을지로에 크게 생겨서 핫플레이스가 됐다는데, 을지로에 마지막으로 간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흐릿한 나는 직접 보진 못했다. 그런 곳이 있다더라고, 도시 전설처럼 접했을 뿐이다. 아무튼, 그런 핫한 서점이 이 문화와 쇼핑의 불모지에 생기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신이 나서 쇼핑몰에 들어가자마자 3층 서점으로 향했다……고 하면 과장이고, 커피 한 잔 입에 물고 1층부터 영화관이 있는 5층까지 성에 찰 만큼 샅샅이 구경한 후에 서점으로 갔다. 


아크앤북에 가자, 제일 먼저 책 표지를 색감 맞춰 진열해놓은 큰 책장과 진열용인 커다란 책, 그리고 동그랗고 큰 카운터가 반겨주었다. 한쪽은 계산대, 다른 한쪽은 아이스크림을 파는 방식으로 카운터 공간을 활용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전화 부스 두 개가 나오는데, 안에는 전화기가 아니라 도서 검색대가 있다. 검색대이므로 당연히 무료다! 


서점 자체는 그렇게 크진 않다. 광화문 교보문고를 생각하면 그 반의반의 반 정도일까? 공간 감각이 부족해서 잘 모르겠지만 그보다 작을 것이다. 다른 아크앤북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진열 방식이 독특하다. 문학, 인문, 에세이 같은 장르별로 코너를 나누지 않았다. 아니, 나누기는 했는데 그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벽에 설치한 책장은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안내가 붙어 있는데 평대에는 눈에 띄게 안내를 붙여 놓지 않았다. 장르로 구분하기보다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경계를 허물어 진열하는 것 같다. 책만 팔아서는 이익을 내지 못하는 세상이므로 다이어리에 가방, 책 향수, 러그, 지갑 등 각종 소품도 있는데, 여행 서적 옆에 지도나 가방을 놓는 식으로 연관 있는 것들을 어우러지게 진열했다. 


처음에는 진열 방식이 눈에 익지 않아 어색했는데, 그 와중에 반가운 책을 발견했다. 바로 ‘한 쪽짜리 책에 문학을 담는’ 쪽프레스에서 낸, 아코디언 접지 만화 시리즈 중 내가 번역한 두 권이었다. 노란 표지가 시선을 확 사로잡는 한 권, 그리고 똘망똘망한 그림이 귀여운 한 권. 이 두 권을 본 순간, 이 서점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 넓지 않은 서점인데 한가운데에 카페가 있고 테이블이 쭉 있어서 처음에는 공간 낭비 같아 보였다. 따로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꽤 있는데 굳이 중앙에까지 테이블을 둘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앉아서 음료를 마셔 보니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이 또 좋더라. 역시 뭐든 직접 경험해야 좋은지 안 좋은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 서점과 완벽하게 사랑에 빠졌다.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며 운영하는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열 방식도 달라지고 새로운 소품도 들어왔다. 지금 내가 살까 말까 고민하는 물건이 하나 있다. 사랑스러운 고양이와 강아지, 토끼 그림을 패키지로 쓰는 홍차다. 홍차를 마신 뒤, 그림 부분은 책갈피로 쓰면 된다고 한다. 원래 책갈피를 잘 안 쓰고(손에 잡히는 영수증 따위를 대충 끼워 놓는다) 홍차도 있으면 마시지만 없어도 아쉽진 않은데 왜 노리느냐, 그림이 귀여우니까. 아직은 고민 중인데 조만간 사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이 서점, 굳이 사지 않더라도 휙휙 둘러보고 나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책을 사는 사람보다는 부가적인 물건을 사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이지만, 계속 책에 노출되면 자연히 손이 가지 않겠나. 무엇보다 15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거리이니 졸음이 쏟아질 때 훌쩍 다녀오기에 아주 적합하다. 요즘은 코로나 19로 자가 격리 중이라 방문을 자제하는 중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갔다. 책 구경은 정말 즐겁다. 


이 서점은 나를 위해 생긴 모양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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