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차곡차곡
언제, 어디에서 책을 사랑하나요?
나는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까지 먹은 후, 주로 침대 위에서 책을 읽는다.
머리판에 베개를 두 개 겹쳐 놓고 기대앉은 자세다. 처음에는 허리가 꼿꼿하게 서 있는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중력에 이끌려 스르륵 미끄러지고, 나중에는 목만 베개에 기대고 누워서 본다. 목과 허리가 아픈 것도 아픈 것인데, 머리판이 내 몸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다면서 삐걱거린다. 안 되겠다 싶어서 침대 위에 엎드려서 읽기도 하는데, 이 자세야말로 척추 건강을 해치는 데 최고인 자세라고 들었다. 배 아래에 베개를 깔면 좀 낫다는데, 팔꿈치로 버티기 힘들어서 20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꾼다.
책은 책상에 바르게 앉아 독서대에 올려놓고 눈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읽어야 좋다고 한다. 하지만 채식이 몸에 좋고 환경에도 좋은 거 누가 몰라서 안 하나, 입이 당기는 음식에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가니까 못하지.
내 작업실의 책상과 의자는 높이가 미묘하게 안 맞는다. 의자를 높이면 어지럽고 낮추면 어깨가 아프다. 일할 때야 ‘원래 일이란 쓰디쓴 술과 같은 것이라오’라고 허세를 부리며 아프고 결려도 참지만, 종일 시달리다 보면 책만큼은 편하게 읽고 싶다. 작업실에서 일, 공부, 독서를 다 하겠다는 각오가 무색하게, 이 책 저 책 주섬주섬 들고 침실로 슬금슬금 도망친다. 그리고 위의 두 자세를 오가다가 마지막은 목을 90도로 꺾은 자세가 된다.
짧뚱한 내 목뼈가 이렇게 잘 버텨주다니 기특하다. 내 목은 정말 짧고 뚱뚱하다. 학창 시절 친구가 장난으로 내 목을 잡았다가 “아니, 야! 목이 왜 이렇게 두꺼워!”라고 진심으로 소리친 적도 있다. 그래, 짧뚱하니 이럴 땐 좋구나.
가끔은 좌식 책상을 침대에 올리기도 한다. 책에 줄을 치거나 메모할 때, 혹은 공부용으로 읽을 때는 단단한 받침대가 필요하다. 이때는 물 마시러 잠깐 일어나려면 책상을 어기영차 들어서 옆으로 밀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지만 그쯤이야 운동하는 셈 치면 된다.
책과 가까워지기 좋은 시간과 장소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아침 혹은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10분쯤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머리와 몸에 아침이 왔다고 알리는 사람도 있고, 자기 전에 침대에 기대거나 누워서 책을 읽으면서 눈꺼풀이 무거워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또 출퇴근하는 전철이 서재인 사람도 있을 테고, 부엌이든 화장실이든 방이든 길거리든 손에 책이 잡히는 그 순간이 바로 독서를 위한 최고의 환경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려서는 화장실 좌변기에 앉아서 책 읽는 게 그렇게 좋았다.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똑똑해진다는 착각이 들었다. 엄마는 변비 생긴다고 화장실에서 읽지 말라고 했는데, 정말일까? 오히려 내장 움직임이 활발해졌던 것 같은데. 책이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갑자기 화장실이 그리워지는 것과 비슷한 작용을 해준다거나?
어디에서 어떻게 읽어도 책은 재미있다. 물론 고르고 골라서 산 책 중에도 재미없는 책은 있지만, 내게는 의미가 없던 책도 다른 누군가에는 인생 책이라는 점이 묘미다.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아니, 이런 책을 내겠다고 사라진 나무가 아깝다!’인 책이 내게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어떤 책이든 그 글을 쓴 작가는 내면을 전부 쏟아부었을 테니, 취향을 떠나 우쭈쭈 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요즘 ‘집에 있는 책 70퍼센트는 읽고 새 책 사기 운동’ 중이다. 사놓고 안 읽은 책들이 어쩜 이렇게 많은지! 새 책을 사기 위해서라도, 작가의 분신이자 자식 같은 책을 물고 뜯고 씹고 맛보며 앞으로도 침대를 괴롭혀야겠다. 침대보다는 내 척추와 내 팔꿈치가 위태로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