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담도담 Aug 14. 2020

2020.08.14 절찬리 덕질 중




덕질 없는 내 인생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팥 없는 찐빵, 은 요즘 팥 없는 찐빵이 많으니 옛말이네. 

번역가가 아닌 도담도담, 모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는 도담도담이나 마찬가지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좋아한 것들이 무수히 많다. 

단순히 '이거 좋아!'도 많고, 그게 덕질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부터 덕질한 것도 무수히 많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지금도 꾸준히 좋아한다. 


초등학생 때는 만화영화와 흡혈귀에 빠져서 현실과 구분하지 못했고, 

중학생 때부터는 일본 만화가 집단 클램프와 우리나라 아이돌에 빠졌다. 

이때 만난 인생 아이돌은 아직도 좋아한다. 내 인생에서 나와 엄마를 제외하고 가장 좋아하는 최애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나이 먹는 행복이란. 

고등학생 때는 BL 만화와 일본 록 밴드 GLAY에 빠져서 허우적댔다. 하필 고3때 락에 빠졌다. 수능 성적은...말하지 않겠다.


대학생 때부터는 수많은 것을 머리 풀고 미친 듯이 좋아하기 시작했다. 

이때 처음으로 코믹월드에도 갔고 온리전 스태프 일도 했다. 

절대 남 앞에 나서지 않는 소심함을 미덕으로 삼는 내가 그런 행사에 가다니 얼마나 정신을 놓았는지 알 법하다. 

 

일본어도 대학생 때 일본 성우를 덕질하면서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저작권 의식이 희미해서(저만 그랬다면 죄송합니다.) 인터넷에 드라마 CD가 많았다. 

좋아하는 성우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좋은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답답했다. 

그래도 무작정 일본어를 들었고 한 3~4개월쯤 지나니까 대충 무슨 내용인지 알 것 같았다. 이때부터 학교 선배에게 간단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만약 이때 일본 성우가 아니라 영어를 쓰는 배우한테 빠졌다면 지금 나는 영어 번역가일지도? 



약간 집착하는 성격인지, 뭔가에 지나치게 빠지면 먹지도, 씻지도, 자지도 않고 같은 것을 반복해서 보고 또 본다. 아주 사골국물을 끓인다. 

머릿속으로 상상도 한다. 이 캐릭터를 이렇게 움직이고 저 캐릭터를 저렇게 움직여서 이런 사건을 겪게 하고 저런 결말을 내면? 

혼자 드라마를 찍고 영화를 찍고 책을 쓴달까. 이걸 망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나의 캐릭터를 가지고 했으면, 어쩌면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까!

뇌세포로 그릴 때는 생생하고 재미있는데, 어째서 손가락을 움직이면 거무튀튀한 욕망덩어리만 생성하는지 의문이다. 



가끔 내가 너무 과몰입한다 싶어서 덕질을 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억지로 차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하루도 못 넘기고 다시 찾아보고 헤벌쭉 웃는다. 



철도 안 든 무렵부터 덕질이 당연한 인생을 살았으니 이제 와서 덕질을 어떻게 버리겠는가. 

무엇보다 대학생 때 성우 덕질을 안 했다면 나는 번역하는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그런대로 다른 직업을 갖고 열심히 살고 있을 테지만, 이미 번역에 발을 담근 입장에서는 더 재미있는 직업이 상상 안 된다. 번역하고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제일 재미있는걸. 

알아듣지도 못하고 무턱대고 들었던 드라마 CD가 지금의 자양분이었다고 생각하면 역시 덕질은 이롭다. 




왜 갑자기 덕질 이야기를 하느냐. 

요즘 넷플릭스의 <엄브렐러 아카데미>에 빠질락 말락 하기 때문이다. 아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이미 빠졌다. 아주 푹, 한 허리까지 잠긴 것 같다. 

어떤 드라마인가 하면, 한날한시에 태어난 초능력을 가진 남매들이 지구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히어로물이라는 설명이 제일 무난하다. 다른 뭔가를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연출이나 액션, 줄거리가 아주 독창적이거나 재미있지는 않은데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덕질용으로 판을 깔았다고나 할까. 



아무튼 재미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볼 만한 무언가를 찾으신다면 추천합니다. 

다만 히어로물이나 가족물이나 액션물에 대한 기대를 다소 낮추고 보셔야 합니다. 무엇을 바라든 다른 쪽으로 갈 드라마여서요. 




오늘의 일기는 덕질에 대한 고찰을 빙자한, 전혀 효과 없는 영업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2020.08.08 나는 내가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