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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희 Dec 05. 2022

숲보다 나무가 좋다

전체를 보는 눈, 사소한 부분을 보는 눈

나는 어린 시절부터 관찰하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대부분 작은 것을 크게 확대하여 관찰하거나

물체가 구동되거나 움직일 때, 움직임 그 자체보다는

어떤 부품들이 들어있길래 이런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물체의 부품인 기어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곳부터 시작해

전체가 돌아가는 방향을 이해할 때까지

기어 하나하나를 보면서 계속 관찰을 했다.


반면에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능력은 부족했는데,

하나하나 관찰한 스토리가 모인 과다한 양의 정보로 인해

내게 전체적인 그림을 본다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어떠한 일의 결과가 그럭저럭 잘 나왔기에

그냥 넘어갈 법한 일들도 

사소한 부분에서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생각이 들면

따지고 들거나, 머릿속에서 잊히지가 않았다.


이런 나의 특징은

인생에서 매번 다른 평가를 받았고

나에게 도움을 주기도, 그렇지 않은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천재 아이?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릴 적,

어른들은 내가 천재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슨, 발음도 제대로 못 하는 어린애가

길가에 다니는 차를 보고 이름을 다 맞췄다고 한다.

(지금은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차에 관심이 없고 잘 모른다.)


어른들이 나에게 어떤 것을 보고 차 이름을 아는지 물어보니,

차의 일부분인 바퀴를 보고 차를 맞춘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자동차 바퀴의 어느 부분까지

자세하게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내가 일부분을 관심 있게 본다는 특성을

인정하게 되는 큰 계기가 되었다.


그냥 하라면 좀 해!

대학교 4학년, 졸업 전

학교 선배가 다니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회사는 네트워크 보안 장비를 다루는 회사였다.


하루는 그 선배와 같이 기술지원으로 고객사에 방문하였다.

하지만 장비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안에 들어가 있는 세팅값도 전혀 이상이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런저런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입술을 뜯고 있을 때,

옆에서 바라보던 선배가 말했다.

"장비 껐다 켜."

나는 말했다.

"잠시만요. 테스트 몇 개만 더 해보고요. 안될 리가 없는데."

10분이 지났을까. 다시 선배가 이야기를 했다.

"그냥 장비 한 번 껐다가 켜."

"잠시만요. 이거..."

"그냥 좀 하라면 해 새X야!"


시무룩하게 나는 장비를 재부팅했고,

장비는 거짓말처럼 정상 동작하였다.


주변을 살펴봤다면,

뒤에서 초조해하는 고객사 담당자를 보고

빠르게 처리를 하는 것이 최우선일 텐데,

전체를 보고, 현장 상황 대처가 우선이 아닌

엔지니어로서의 문제 해결만을

우선시했던 나의 실수였다.


엔지니어 시절 지겹게 봤던 장비들과 랜선들


그럼에도 나는 일부분이 좋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라.',

'일부분을 보지 말고 전체적인 그림을 봐라.'

살면서 이 이야기를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나 역시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고,

매번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문구이다.


지금은 사회에 나와 일정기간 지나다 보니,

예전처럼 너무 일부분에 매몰되는 일은 적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나는 숲보다 그 숲을 이루는 나무들에,

전체보다 일부분에 관심이 더 간다.


'저 나무는 같은 땅에서 자라는데 바로 옆에 나무보다 가지가 짧네? 이유가 뭐지?'

'저 나무는 저렇게 비탈길에서 자라는데 뿌리는 어떻게 생긴 거지?'


큰 그림을 보고 숲을 보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쓸데없는 질문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쓸데없는 작은 부분의 호기심과 관심 때문에

내 순간순간의 '숲'들은 가지의 길이가 달랐던 숲이고

비탈길에 나무가 있었던 숲이며, 모두가 다른 숲이다.


사진 역시, 매번 같은 곳에서, 같은 사물에, 같은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도 작은 일부분의 다름을 느끼는 내겐

항상 다른 사진이다.


사소한 일부분에서 느껴지는 '다름'은 

매번 다른 감정과 기억을 남기며, 특별한 기억이 된다.

그렇게 기억된 특별한 기억들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전체보다 일부분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굉장히 특이하게 보기도 하고,

살면서 주변 사람과 나 모두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전체보다 일부분이 좋다.'


꽃밭의 수많은 꽃들 중 후광이 비치는 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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