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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Sep 15. 2023

18층 전셋집. 나를 탈출시켜 줄 세입자 찾기.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9

저도 공범인가요?


상당히 많은 매수 희망자가 다녀간 이후 우리 부부는 부동산으로부터 계약이 만료됨과 동시에 집주인이 바뀔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새로운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해야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세입자를 위해 집을 보여주어야 한단다. 이제 좀 편안히 지낼 수 있다 싶었지만 또 다른 번거로운 일이 생겼다.


하지만 전세가가 높았는지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고, 하루는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있어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임산부와 어머니가 집을 찾았다. 임산부는 밝은 표정으로 집안에 들어섰다.


이 집 별 문제없지요?


깐깐해 보이는 어머님이 물었다.


"네 환기도 잘 되고, 해도 잘 들어서 좋아요. 저희는 다른 지역에 집을 사서 이동하게 됐어요."


나는 이 집에서 일이 잘 풀렸다는 듯이 어필했다. 잘 풀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 집 덕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우리부터 이 집에서 탈출해야 하니까.


"안방 벽 한 부분 색이 다른데 포인트로 해두신 건가요?"


그 임산부는 곰팡이를 가려둔 벽지를 만졌고, 나는 순간 흠칫 놀랐다. 이때 부동산 중개인이 답했다.


"세입자분들이라 잘 모르세요."


집주인이 한밤중에 찾아와 곰팡이를 도배지 시트로 덮었다는 사실을 말할 순 없었다. 만져보고 문제를 알게 된 것일까? 혹여나 내 눈빛에 불안함이 드러날까 걱정했는데, 시선을 돌릴 수 있어 이야기가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집을 보러 온 사람은 집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돌아간 뒤 부동산으로부터 세입자가 정해졌으니 집을 더 이상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왠지 모를 죄책감이 생겨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세입자로 들어올 사람이 임산부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곰팡이를 닦겠다고 베란다에 뿌려댄 락스도 생각났다. 아기가 태어날 텐데 곰팡이 괜찮을까?


"일단 우리부터 살고 보자."


우리 부부는 집주인의 매매사기에 일부 가담하고 있었다. 어쨌든 탈출이다.

그제야 창 밖의 18층 뷰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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