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으로 내려왔습니다 10
1억 9천만 원짜리 18층 전셋집에서 탈출하던 그날은 아주 스펙터클 했다.
포장이삿짐센터에서 아침 일찍 방문해 나는 그저 전세자금을 받아 매수한 집의 잔금을 치르는 데에만 신경을 쓰면 됐었다. 남편은 전날 야근을 한 뒤 새 집으로 퇴근하기로 되어있었다.
우리 계획은 이랬다. 내가 집주인으로부터 잔금을 이체받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남편에게 바로 연락해 남편이 새집 잔금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아주 심플하고 간단했다. 하지만 그 일정은 오전 7시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다고 연락을 하려는데 갑자기 남편에게서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은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매매 계약에 불안한 나머지 나는 부리나케 새 집으로 향했다. 새 집과 전셋집의 거리는 차로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도착한 나는 남편의 등짝을 세게 때렸다.
찰싹!
분명 어제 남편은 바로 잠을 자겠다며 전화를 끊었는데, 전화를 끊은 직후 맥주파티를 시작했던 것이었다.
하필 중요한 매매계약이 있던 전날 밤이라니 맙소사. 입주청소를 끝낸 집안 곳곳에 맥주파티를 벌인 흔적이 여기저기 남겨져 있었다. 텅 빈 집 안에 맥주캔과 과자가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수 있었기에 너무도 다행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여유롭게 짐을 챙겨 대기하다가 부동산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아침부터 정신을 붙들어 매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