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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Oct 29. 2023

반려견과 함께한 비행

비행기 내에서의 사진이 없는 이유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글을 쓴 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의 반려견의 견주로서의 역할이 두드러졌다면, 지금의 나는 한 아이의 엄마이자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오롯이 반려견에만 집중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늘 반려견에 대한 인식과 그 변화에 마음이 쓰이는 편이다. 요 근래 뿌듯한 것이 있다면 반려견 동반이 서서히 용인되어 가서 반려인이 고립된 삶을 살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댕댕이 친구들! 이탈리아 여행 가개!>가 출간되었을 무렵, 그때까지만 해도 반려견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해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상당히 생소한 일이었다. 심지어 반려견 동반 식당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는데, 그 당시 반려견과 함께하는 장소라면 '공존'이라기보다는, '도피'에 가까운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그새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쇼핑몰과 백화점이 서서히 생겨났고, 이제는 진정한 '공존'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공존'이 불가능하던 시절, 내가 아인이와 여행을 계획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반려견 환영!'이라는 거창한 플래카드를 바라거나 반려견주에 대한 배려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눈총 받지 않고 반려견과 견주도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한 사회에 녹아들어 가는 사회였고, 이탈리아가 그렇다 하기에 그러한 사회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사실 이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반려견 동반이 자리를 잡는 과정이기 때문에 펫티켓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게다가 반려견에 대한 저마다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유로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반려견과 견주를 향한 곱지 않은 여론이 형성될 때면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인이와 함께 여행을 했다. 그래서 아인이와 함께한 모든 상황을 사진에 남겼다. 그리고 아인이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는 꿈같은 순간을, 누군가에겐 희망적인 소식이 될 사진을 남기고, 그것을 책에 담아야겠다는 꿈에 부풀어 비행기에 탑승했었다. 하지만 이런 내 계획은 11시간 비행동안의 고민으로 끝이 나버렸다. '반려견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사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과 규정을 지켜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나는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규정상 반려견은 시트 아래 좌석 아래 케이지 안에 있어야 한다. 비행을 하기 전 반려견을 기내에서 이동가방 밖으로 꺼내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한 뒤 탑승하기 때문에 아인이를 케이지 밖으로 꺼낸다면 규정을 어기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비행 내내 아인이 컨디션은 괜찮을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 케이지 안에 손을 넣어 아인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비행은 결코 편할 수 없었다. 만약 아인이를 잠시 케이지 밖으로 꺼내 행복한 듯 연출한 사진을 찍는다면 반려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는 있겠으나, 그렇게 찍는다 한들 그것은 보호자의 불안한 마음을 감춘 왜곡된 현실이라 생각했다. 나는 왕복 22시간가량 아인이의 상태를 걱정하고 사진 한 장이라도 남기고 싶다는 내적 갈등을 반복했다.


 그 결과 내 책에는 기내 안에서 편히 나와 있는 아인이 사진이 없다. 출판사 사장님께서 정말 한 장도 없는지 물으셨는데, 가방 사진뿐이라 아인이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여행을 하고자 하는 독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봐 책에 싣지 않았다. 독자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하는 대신 현실을 보여주기로 했다.


내가 너무 고지식한 걸까? 문득 온라인에서 보았던 사진이 떠올랐다. 기내에서 반려견을 무릎에 앉히고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함께 기내에 탑승해 어딘가로 떠난다는 사실에 설렌 나머지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 사진을 찍었을 거라 짐작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딱 한 번의 행동이 타인에게는 반려견과 보호자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항공사 규정대로, 그리고 서약한 대로 이동가방 밖으로 나오게 하지 않았고 외부를 경계하지 않고 편히 갈 수 있도록 이동가방을 옷으로 덮어줬다.
주변 사람들은 강아지가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탑승하는 것을 본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느덧 아인이의 존재를 잊은 모양이었다. 강아지가 비행기를 타면 시끄러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댕댕이 친구들! 이탈리아 여행 가개!> 46-47쪽


그 당시 나의 글을 보면 반려견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에 맞서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흔적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노력들이 허사가 되는 것 같을 때면 힘이 빠진다. 최근 개플루언서 관련 글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누군가는 SNS를 통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 그래서 또 다른 누군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줄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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