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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ul 16. 2021

1971년 태일의 외침, 2021년을 울리다

음악극 <태일> 리뷰

※ 다른 플랫폼에 기고한 글을 아카이빙 한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외쳤다.

2021년 4월의 어느 날 대학로 지하의 작은 극장에서도 같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 전태일 열사의 삶을 공연으로 재구성한 음악극 <태일> 이야기다.



작은 프로젝트, 장기 공연이 되다


<태일>은 박소영 연출·이선영 작곡가·장우성 작가가 모인 창작 집단 ‘목소리 프로젝트’에서 만든 첫 작품이다. 이들은 선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귀감이 될 수 있는 실존 인물들의 삶을 무대에 복원하자는 목표로 모였다. (1) 2017년 천공의 성이라는 소극장에서 <태일>의 트라이아웃 공연(시험공연)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2018년에는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통해 본공연을, 같은 해 천공의 성에서 재공연을 거친 후 2019년에는 전태일 기념관에서 공연을 올렸다.


공연제작사를 중심으로 유통되는 일반적인 공연과 달리 <태일>은 창작진과 배우들을 중심으로 작은 공연을 이어왔다. 영리적인 이익보다는 인물의 목소리를 온전히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간 공연 이력을 살펴보면 100석이 채 안 되는 소극장에서 평균 2주 내외로 공연을 올렸다. 보통의 상업극이 두세 달 정도 공연하는 것과 비교하면 짧은 기간이다. 제대로 된 마케팅도 없었지만 오직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그런 역사를 생각해보았을 때 2021년 올해의 공연은 더욱 특별하다. <태일>의 첫 장기 공연이기 때문이다. 2월 23일부터 5월 2일까지 무려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대학로의 TOM극장에서 관객들을 맞이했다. 새로운 극장의 좌석은 250석이나 된다. 규모도, 자본도, 제작 환경도 모두 이전에 비해 괄목할 만한 변화를 겪은 셈이다. 다섯 번째 공연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지만 창작진은 여전히 첫 공연 때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조심스러워한다. “처음에 생각한 색채가 변하지 않도록 소중하게 지키고 있어요. 초심을 잃지 않고, 이 작품을 귀하게 여전히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2)




열사 태일이 아닌 청년 태일에 대해 


<태일>은 뮤지컬도 연극도 아닌 음악극이라는 특이한 형태의 공연이다. 열 곡의 노래를 부르지만 대사의 비중도 크고, 배우들의 대화와 내레이션도 포함되어 있다. 무대를 채우는 것은 악기 두 대와 사람 두 명이다. 거창한 오케스트라나 세션 대신 피아노와 기타 한 대씩. 두 명의 배우는 각각 태일 역과 그 외 등장인물들의 목소리 역을 맡았다.


무대 막이 오르면 첫 넘버(뮤지컬 등에서 곡을 이르는 용어) ‘소년의 의문’이 시작된다. 어린 태일이 왜 자신은 매일 굶주리고 가난에 시달려야 하는지 질문하는 내용이다. 넘버가 끝나고 점점 극에 몰입하려는 찰나, 갑자기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제 4의 벽이 깨지는 순간이다.


공연에 대해 몇 마디 소개한 뒤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은 전태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가요?” 관객들 각자가 생각하는 ‘전태일’의 모습을 떠올리게 다. 코로나 때문에 관객에게서 직접 답을 듣진 못하지만, 대신 배우들이 각자 태일에 대해 원래 생각하고 있던 바를 들을 수 있다.


이렇듯 <태일>의 가장 큰 특징은 배우가 극 내부와 외부를 자유롭게 옮겨 다니면서 관객과 소통한다는 점이다. 한 순간 노래를 하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자신이 연기하던 캐릭터에서 빠져나와 관객에게 자신이 느꼈던 점을 이야기한다. 가끔은 해설자가 되어 대사와 노랫말로만은 전달하기 어려운 정보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당시 평화시장 공장에서 일하는 제일 낮은 직급 ‘시다’는 끼니로 1원 하는 풀빵을 사 먹기도 힘들었다는 사실 등이다. 관객과 소통하고 해설자 역할을 하는 배우들 덕분에 <태일>은 일방적인 공연을 넘어 배우와 관객이 함께 교감하며 전태일이라는 인물의 삶을 공부해나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장우성 작가는 <태일>이 배우와 관객 ‘나 자신으로부터 태일에게 다가가고 알아가는’ 형식을 취한 것은 전태일이라는 인물을 사람으로서 이해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3)  전태일은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역사적 업적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그의 삶의 한 단면만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태일>은 열사이자 노동운동가이기에 앞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 청년이었던 그의 모습에 주목한다.


특히 <태일>의 세 번째 넘버 ‘청옥이 좋아’는 전태일이 가장 행복했던 때로 꼽는 청옥공민고등학교 재학 시절을 담았다. 야간학교에서의 태일은 인기 있는 학생이자 학교 다니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해맑은 소년이었다. “청옥의 모든 게 좋아,... 수업시간이 너무 짧아. 분필 가루도 손때 묻은 책상도 너무 좋아.” 부실장(부반장) 예옥이 앞에서 부끄럼을 타고, 체육대회에서 꼴찌로 달리면서도 신나게 웃는 태일의 모습은 행복하고도 평범하다.



하나의 큰 횃불이 수많은 작은 촛불로 


행복한 시절은 잠시, 태일은 가정형편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서울로 식모 일을 하러 떠난 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자식을 때리고 세간살이를 부수었다. 견디다 못해 대구에서 서울로 상경했지만 서울살이도 녹록지 않았다. 리어카를 밀고, 구두를 닦고, 담배꽁초를 주워 팔고, 신문을 파는 등 종일 쉬지 않고 일했다. 그렇게 일하고도 몸을 뉠 곳 하나 구하지 못해 어머니와 지인 집 마루 밑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열여섯 살의 태일은 평화시장의 한 공장에 시다(가장 낮은 직급)로 취직했다. 재단사나 재봉사가 하는 일을 보조하는 역할이라 온갖 힘든 잡무를 도맡았지만 고정된 일자리와 봉급이 있다는 점에 설렜다. 그는 어서 ‘여섯 식구가 배불리 먹고 쉴 수 있게’ 돈을 벌고 싶었다. 그러나 평화시장에서 태일이 마주한 현실은 너무나도 열악한 노동 환경이었다. 한 층을 2층으로 닭장처럼 나누어 허리조차 펴기 힘든 공장에서 열서너 살의 어린 여공들은 며칠 밤을 새 가며 일했다.


“배는 비어도 마음은 꽉 찼다. 잘했다, 참 잘했다.”


태일은 버스비 30원을 아껴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다 주고, 매일 밤 먼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넘버는 그의 일기 한 구절을 소개한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자신도 넉넉지 않음에도 평화시장에서 혹사당하는 다른 노동자들을 보며 태일은 마음 아파했다. 후에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앞장서서 바보회를 결성한 것은 이러한 마음이 배경이 되었다.


노동자 모임을 ‘바보회’라고 부른 것은 근로기준법의 존재도 모른 채 기계처럼 일하던 자신들을 자조하는 의미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우직하게 바보처럼 노동운동을 하자는 의미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말에도, 태일은 ‘사람답게 사는 바보로 살자’라고 응수했다.



그러나 갓 이십 대를 맞이한 태일이 맞서야 하는 세상은 너무나도 컸다. 처음엔 정부에 부당한 노동현장에 대해 고발하기만 한다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신문에는 평화시장의 여공의 노동 현실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태일과 삼동회(바보회의 나중 이름) 사람들이 모두 취직하고 나면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다던 고용주와 정부 측은 끝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다리를 꼬고 냉담하게 앉은 근로감독관 앞에서 태일은 절규하듯 근로기준법을 부르짖는다. 고작 스물두 살인 그가 맞서야 하는 세상은 평화시장 사업주, 근로감독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였다.


곳곳에 촛불이 놓인 무대 세트 / 출처 : 개인 사진



마지막 장면에서 태일은 검정 코트를 걸치고 집을 나선다. 청옥 시절 친했던 부실장 예옥이를 찾아가 인사를 건네고선 한창 노동자들이 활발하게 시위를 벌이는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그가 구호를 외치며 무대 안쪽 백스테이지 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으로 극은 막을 내린다. 횃불처럼 타올랐을 그의 분신 장면은 오히려 무대 곳곳에 놓인 수백 개의 자그만 촛불이 일제히 켜지는 것으로 담백하게 표현되었다. 강렬한 불길은 아니지만 밝다.



<태일>은 주인공인 청년 태일을 참 따뜻하고 맑은 마음을 가진 이로 묘사한다. 그렇기에 그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인 것도 그저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결심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지는 수많은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으로 느껴진다. 태일은 하나의 불꽃이었지만, 그의 죽음 후 타오른 노동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이들은 무대를 빼곡히 채우던 촛불이었다.



unsplash




2021년에도 전태일의 외침은 유효하다 



근로기준법이 놓인 책상 / 출처 : 개인 사진

공연이 끝난 뒤 TOM 극장에서 나오면서 포털 사이트에 ‘근로기준법’을 검색해보았다. 뉴스 카테고리로 들어가니 몇몇 기사가 눈에 띄었다.



“가사근로자법 9부 능선 넘어... 68년 만에 근로자 지위 얻을까”

“한 발도 못 뗀 스태프 근로계약 ‘KBS부터 나서라’”

“'PD 극단적 선택' 청주방송 프리랜서 절반 이상이 근로자”



1970년으로부터 51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흔히 도우미 아주머니라고 불리는 가사노동자는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는 법안이 이제 막 위원회를 통과했고, 방송계 스태프 근로계약은 여전히 현장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한 PD가 자살한 뒤에야 해당 방송국에 소속된 다른 계약직과 프리랜서를 노동자로 인정해주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태일은 어떤 세상을 꿈꾸었을까. 빈한 자가 부한 자에게 종속된 세상이 아닌, 노동자가 일하면 살 만한 세상은 아직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미래인 듯하다.







1) 이솔희, “음악극 <태일>의 뜻깊은 발걸음”, <뉴스컬처>, 2021.03.04

2) “목소리프로젝트 "'전태일 마음' 전하고 싶었어요"”, <뉴시스>, 2021.03.16

3) “목소리프로젝트 "'전태일 마음' 전하고 싶었어요"”, <뉴시스>, 202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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