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플롯에서의 수수께끼

수수께끼의 틈 속에서 순간순간 즐거워지려 한다

by 김무명

수수께끼 플롯에서는 ‘무엇’과 ‘왜’가 합쳐져야 수수께끼가 풀린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플롯에서의 수수께끼가 흥미로운 이유는 ‘무엇’과 ‘왜’가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무엇’이 ‘왜’ 일어났는지 명료하게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어떤 수수께끼는 시간이 많은 흐른 뒤에야 풀리기도 하고 또 어떤 수수께끼는 많은 시간이 지나도 풀리지 않기도 한다. 인생은 수수께끼의 연속이다. 그 누구도 미래에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고, 과거에 자신에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명료하게 알지 못한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수수께끼의 답을 찾으려 애쓰며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수수께끼 플롯은 우리 인생의 플롯과 닮아있다.


단순하고 명쾌한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에만 해도 많은 변수가 존재했고, 많은 요소들이 얽혀 어떤 것이 원인이었고, 어떤 것이 결과인지에 대한 것이 분명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와 비슷한 이런 수많은 인생들이 모여 만든 이 세상은 얼마나 큰 모호함으로 이루어진 곳일까?


내가 지금 이렇게 내 인생에 던져진 수수께끼를 풀고 있을 때 아마 찬이와 욱이도 자기들만의 수수께끼를 풀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아이들이 지금 풀고 있는 수수께끼는 ‘작은 방에 쌍둥이가 살고 있는 것은? 땅콩. 웃는 사과는? 풋사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바다는? 행복해.’와 같은 아기자기함을 지녔다.


영화 버닝에는 “없는 걸 있다고 상상하지 말고, 없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려라.” 라는 말이 나온다. 아이들과 함께 단순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면 나는 때로 내 인생에 여전히 남겨져 있는 여러 난해한 수수께끼들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되고는 한다.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수수께끼는 한 순간에 명쾌하게 풀릴 수수께끼가 아닐 것이다. 앞으로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끊임없이 내가 나에게 던질 끝나지 않는 질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매순간 정확한 답을 찾아내지는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정확한 답이 없다는 것이 답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정답이 없다는 것이 실은 우리 인생의 실체에 더 가깝다면 나는 정확한 답이 없다는 그 모호함 자체를 그저 잊어버리면 된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는 그저 지금 이 순간만을 분명하게 느끼며 내가 풀어야 될 수수께끼의 답이 없을 수도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잊혀진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없는 걸 있다고 생각하며 애쓰기 보다 없다는 그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 채 순간순간 즐거워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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