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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2. 2021

MZ세대, M도 Z에겐 이미 라테일 수 있다

M인 나는 Z인 아이들의 더 많은 것이 궁금해진다

96년생인 나와 09년생, 12년생인 아이들은 ‘MZ세대’라는 이름으로 함께 불리곤 한다.


마치 한 세대인 것처럼 묶여서 뭉뚱그려 ‘MZ세대’라고 불리지만 사실 우리는 비슷한 만큼 많이 다르기도 하다.


‘MZ세대’에서 M을 맡고 있는 나는 Z를 맡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미 라테일 수도 있다.


어몽어스를 즐겨하고 생일 선물로 3D펜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나와는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 나 역시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요즘애들’로 여겨지는 나이를 가졌지만, 진짜 ‘요즘애들’인 아이들을 볼 때면 ‘우리가 정말 같은 세대로 묶여 불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며칠 전, 인턴 월급이 들어왔다. 첫 월급으로 애들한테 선물을 하나씩 사주고 싶어 뭘 주면 좋을까 고민 하다가 책을 하나씩 선물해주려고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다.

고민 끝에 찬이한테 줄 ‘푸른 사자 와니니’라는 책과 욱이한테 줄 ‘바나나 껍질만 쓰면 괜찮아: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 못난이 이야기’라는 책을 골랐다.

기왕 선물이니까 예쁘게 포장을 해 주고 싶어 포장 코너에 가서 직원분께 선물 포장을 부탁드렸다.

조카들한테 주는 선물이냐고 물어보는 직원분께 어린 사촌 동생들한테 줄 선물이라고 말씀드리자 직원분은 여자 아이들이냐고 물었다. 나는 여자 아이 한 명과 남자아이 한 명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직원분은 여자 아이 책은 파스텔 톤의 연한 분홍색으로, 남자아이 책은 연한 하늘색으로 포장을 해주겠다고 하셨다.


두 색 모두 예쁜 색이고 나 역시 좋아하는 색이다. 그렇기에 직원 분이 추천해주신 색도 좋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선물하는 책을 굳이 여자 아이라는 이유로 분홍색 포장지에, 남자아이라는 이유로 파란색 포장지에 담아서 오랜 고정관념과 함께 선물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개인적으로 따뜻하고 편안한 색이라고 생각하는 노란색과 초록색 포장지를 고르며 이 색으로 포장을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나는 이내 나 역시 분홍색과 파란색 포장지를 권해주신 직원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노란색, 초록색 포장지를 고르며 조금 더 연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노란색으로 찬이의 책을, 조금 더 색감이 진한 초록색으로 욱이의 책을 포장해달라고 부탁드릴 생각이었다. 이런 나의 생각이 여자 아이에게는 연분홍색 포장지를, 남자아이에게는 연한 하늘색 포장지를 추천해주신 직원분의 생각과 뭐가 크게 다를까?


나는 색으로 아이들을, 정확히는 아이들의 성별을 구별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색으로 아이들을, 아이들의 성별을 구분 짓고 있었다.


이런 나의 모순이 우스웠다.


그저 분홍색, 파란색의 구별이 노란색, 초록색으로 옮겨간 것뿐이었다. 나는 무의식 중에 연하고 부드러운 느낌에서는 여자 아이를, 진하고 강한 느낌에서는 남자 아이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었다.  이런 모순을 발견하고 나는 다시 직원분께 욱이의 책을 노란색으로, 찬이의 책을 초록색으로 포장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사실 이게 내가 책을 사며 한 일 중 가장 우스웠던 일이었다.


색은 그저 색일 뿐인데, 나는 혼자 색에 여러 의미 부여를 하며 색으로 아이들을 더 구분 짓고 있었다. 노랑이든 초록이든. 분홍이든 파랑이든. 색은 그저 색일 뿐이지 그 어떤 의미도 담겨있지 않은데 말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주는 책 선물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담고 싶었다면, 나는 이렇게 혼자 색에 대한 쓸데없는 구분 짓기를 하며 포장지를 고를 것이 아니라 그저 아이들한테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물어봤으면 되었다. 색에는 어떤 의미도 담겨 있지 않지만 좋아하는 색에는 저마다의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을 테니 말이다.

내 마음대로 생각하지 않고 물어보는 것.

그게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이 아이들에게 라테가 되어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번에는 내 마음대로 색을 골랐지만, 다음에 아이들을 만나면 무슨 색을 가장 좋아하는지 꼭 다시 물어볼 생각이다.


M인 나는 Z인 아이들의 더 많은 것이 궁금해지고 또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 싶어진다.


예쁜 연분홍색 셔츠와 노란색 조끼를 즐겨 입는 9살 욱이에게 나는 이미 라테일 수 있다. 이 아이들에게 라테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만약 어쩔 수 없이 이미 라테가 되었다면 적어도 잘 물어볼 줄 아는 라테가 되고 싶다.


내 마음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각을 잘 물어볼 줄 아는 라테로 곁에 있어주고 싶다.

그렇게 오늘도 아이들은 내게 작은 정답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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