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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2. 2021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일 수 있을까

적기에 옆에 있어준다는 것이 때로 가장 큰 기적이 되어준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일 수 있을까?’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나온 대사이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평생 잊혀지지 않을 2020년의 끝에서 나는 나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한 해를 마무리해보려 한다.

 

많은 이들에게 어느 때보다 참 많은 변화가 있었을 지난 1년이었다. 그 1년 동안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살아가면서 나에게 기적과 같은 사람을 적기에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일까?

 

2019년 겨울, 나는 어쩌면 나에게 기적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한 친구와 헤어졌다. 그 친구와 헤어지게 된 이유를 뽑자면 아주 많지만 사실 결국엔 단 하나이기도 했다. 내가 그 친구를 마치 내 인생의 구원자인 것처럼 여기며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고 그런 나는 나도 몰랐지만 무의식 속에서 내 인생의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내 앞에 나타난 그 친구가 내게는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고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인연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용기를 다 내어 그 친구에게 다가갔고 우리는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하지만 그 사랑은 건강한 사랑은 아니었다. 나는 나를 바쳐가면서까지 사랑을 갈구했다. 그런 내 모습이 나조차 이해가 가지 않아서 너무나도 무서웠을 만큼.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내 위험한 사랑이 위험한 줄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시작됐었다.

 

그 시간을 떠올려보면 나는 분명 더 행복해지기 위해 용기를 내어 사랑을 시작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행복하기보다는 절박했고 만남을 지속할수록 비참함만이 더욱 커졌다. 나는 나를 더 이상 잃어가게 둘 수는 없었기에 나를 지키고자 그 친구에게 처음 내 마음을 고백할 때 냈던 용기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의 처절한 용기를 내어 그 친구에게 이별을 고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 인생의 구원자로까지 여겼던 한 사람에게 끝을 말하고 있었다. 그건 꽤나 절망적인 일이었고 비참한 일이었으며 무섭기까지 한 일이었다. 무의식 속에서 강하게 내 인생의 구원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한 것은 다름아닌 나에게 가장 잔인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보같이 들릴 수도 있지만 이별을 고한 이후에도 나는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서툴러서 나에게 기적일 수도 있었던 사람을 떠나보낸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단 한가지 사실만을 기억하려 했다. 그 친구와 함께 보냈던 시간 동안 내가 참 많이 비참했고 아팠으며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하는 사랑이 나에게 구원일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만남이 나에게 건강하지 않았다는 것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까지 이해가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 친구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위험한 사랑에서 큰 용기를 내어 스스로 빠져나왔다는 것, 내가 나를 잃어가지 않게끔 나를 지켜낸 것이 결국엔 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나는 내 인생을 구원하는 구원자는 결국 그 어떤 순간에도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수 있었다. 그러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홀로 무엇이든 잘 해 나가는 아이로 여겨지던 나는 한편으론 이렇게 잘 버티다 보면 그 언젠가 나를 구원해줄 구원자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다림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이 비로소 제대로 박살이 났을 때, 나는 더 확실한 답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기다리는 구원자는 없을 것이라는 것. 나만이 내 인생의 유일한 구원자일 것이라는 것. 그렇게 나는 기적일 것이라고 여겼던 사랑이 끝맺어졌을 때 비록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비로소 정말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다만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일 수 있다’고 믿었던 내 생각에는 약간의 회의감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회의감이 생각보다 길게 가지는 않았다. 기적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일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기적이 되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사실은 내게 기적이 되어주고 있었다. 애를 써서 내 모든 것을 다 드러내지 않아도, 큰 용기를 내지 않아도 언제나 한결같이 내 옆에 있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지쳐 있었다고 표현한 나의 시간 속에서 내 옆에 있어주었던 사람은 그 친구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계속 내 곁에 있어주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어쩌면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된다는 것은 그저 적기에 옆에 있어준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이들과의 만남이 나에게 기적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전혀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랬기에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내게 기적이 되어주고 있었다.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갈 때마다 잠에 든 내가 혹시라도 깰까 봐 “주식이 자잖아. 소리 좀 작게해”라는 말로 이모부에게 라디오 소리를 좀 줄이라고 핀잔을 주던 찬이의 그 작은 목소리가, 목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나에게 장난기 어린 눈을 하고 “야 김주식! 너 왜 계속 기침해! 뭐하는 짓이야!”라며 ‘지붕 뚫고 하이킥’ 속 장난꾸러기 혜리를 따라 하다 가도 내 기침 소리가 심해지면 금세 걱정 어린 눈을 하고서는 “누나 괜찮아? 아빠한테 약 사오라고 할까?”라고 말하던 욱이의 그 안절부절함이 모두 작은 기적이었다. 나는 그 기적들을 너무 늦게 발견했다. 아이들이 내 삶의 곳곳에 온기를 채워주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내 마음이 서서히 데워주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내 일상이 별탈 없이 잘 유지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너무 사소해서 기적인 줄도 몰랐던 것들이 바로 기적이었다. 

 

내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여전히 나다. 나는 여전히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된다는 말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었다. 누군가가 내 삶을 구원해주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부단히 애를 쓰며 내가 나를 조금씩 구원해가는 그 고된 과정 속에서 내가 지치지 않도록 내 곁에 조용히 머무르며, 내가 나를 살필 수 있게 내게 따뜻함을 안겨주는 사람이 내게 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내 인생의 적기에 나타나 준 이 아이들이 나에게는 기적과 같은 사람들이다. 지치고 고단한 삶의 과정 속에서 나를 웃게 만들어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에게 기적인 사람이다. 아이들이 내게 건넨 사랑을 통해 기적은 극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며들 듯이 아주 사소하게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다.

 

여전히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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