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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2. 2021

나의 ‘리틀 포레스트', 너의 ‘원더풀 라이프'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예쁜 존재들은 작은 숲을 넘어 행복이 되어준다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환대가 나에게는 작은 숲이었다.


아이들이 만들어준 작은 숲 속에서 나는 나의 하루를 잊고 또 잊으며 간신히 버텨내는 삶이 아닌 나의 하루를 소중하게 기억하며 남겨놓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 속에서는 지나간 하루를 천천히 되새겨볼 때 여러 고민들로 인해 머리가 아파왔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보낸 하루의 시간을 천천히 곱씹어볼수록 살짝 웃음이 지어졌다.


아이들은 오늘 하루도 그저 잊기 바빴던 내가 오늘 하루를 기억하고 싶게끔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이 특별히 무언가를 해준 건 아니었다. 아이들은 그저 편안하게 내 곁에 있어줬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나에게는 가장 특별한 무언가였다. 내가 하루의 끝에서 내 하루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봤다.


천국으로 가기 전 머무는 중간역인 ‘림보’라는 곳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7일간 머물며 저마다 자기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을 하나 고르면 ‘림보’의 직원들이 그 추억을 짧은 영화로 재현해 그들을 영원으로 인도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이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당신에겐 영원히 머물고 싶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 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자기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을 하나 골라보라는 말에 영화 속 인물들은 어느 한 순간을 쉽게 골라내지 못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을 하나 고르면 그 추억을 짧을 영화로 재현해주겠다는 림보 직원들의 말에 사람들은 좋아하기보다는 오히려 난처해한다. 영원히 머물고 싶을 정도로 가장 행복했던 단 한 순간을 쉽게 고르지 못하고 마치 그런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듯이 어려워하는인물들의 그 머뭇거림과 난처함이 공감됐다.

그 영화를 보며 나 역시 내가 영원히 머물고 싶은 한 순간을 제대로 생각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게 영원히 머물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나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내가 살아온 25년이라는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쯤 손꼽아보기에 짧은 시간일 수도 있고, 넘치도록 충분한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 역시 영화 속 등장인물들처럼 ‘내 인생의 한 순간’을 꼽아보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그러다가 문득 행복했던 순간 하나 손꼽아보기 힘들어하는 내가 내 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지금 이 시간들을 떠올려봤다.


내 하루를 소중히 기억하고 싶게끔 만들어 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내겐 가장 행복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러자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다름 아닌 어쩌면 바로 지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시간들을 붙잡아놓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언젠간 추억 속에만 남게 될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과 눈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아직 추억이 되지 않은 지금 이 시간들이 벌써부터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그 무엇이든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예쁜 존재들은 작은 숲을 넘어 누군가에겐 손에 꼽을 수 있는 분명한 행복이 되어준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초반에 던진 ‘당신에겐 영원히 머물고 싶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 인가요?’라는 질문 앞에서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등장인물 타카시의 대사로 또 다른 깨달음을 건네주기도 한다.


“50년이 지나서 내가 누군가의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어. 정말 멋진 일이야”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 ‘당신에겐 영원히 머물고 싶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 인가요?’라는 질문 앞에서 지금의 나처럼 머뭇거리고 있다면, 그때 꼭 이 말을 전해주려 한다. 너희들은 내게 꽤나 큰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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