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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2. 2021

‘너’라는 잠재력, ‘나’라는 잠재력

내가 블루오션이라는 망상 속에서의 자유로운 헤엄, 그렇게 항해해간다

이제 막 10대의 초반에 들어선 아이들은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온갖 잠재력과 가능성들로 충만하게 가득 차 있다. 그럼 이제 막 20대의 중반에 들어선 나는 어떤 것들로 가득 차 있을까?


누군가는 아직 20대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 역시 잠재력과 가능성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더 이상 잠재력에 기대어 있을 때가 아니라 뚜렷한 능력과 역량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정작 나는 그 틈에서 그저 막막했다.


독취사(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 카페의 단톡방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 씩 저마다의 이유로 막막하다는 사연들이 올라온다.


언제부터 우리에게는 ‘막막함’이라는 것이 기본값이 되었을까? 밀레니얼 세대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이야기 되는 것 중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당당함’이다. 막막함 속에서도 계속해서 자신을 다독여가며 두려운 와중에도 걸어가기를 멈추지 않는 우리 세대는 분명 당당하다. 하지만 그런 빛나는 당당함을 가졌음에도 우리 세대는 유독 위축된 세대이기도 하다.


자신감을 가지기에 충분함에도, 저마다 이미 한계치를 넘어선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우리는 주어지지 않는 기회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는데 익숙해져 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닌 이유들로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가지고 있던 당당함을 잃고 움츠러든다. 그렇게 작아진다.


그렇다면 더 이상 겸손함은 미덕이 아니다.


어딜 가도 레드오션이다.

이 미친 레드오션의 흐름 속에서 매 순간 과도한 경쟁을 하며 늘 ‘나’라는 사람에 대한 증명을 해나가야 하는 우리 세대가 레드오션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주식 밖에는 답이 없는 것일까?


뜬구름 잡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우리가 ‘나’라는 잠재력을 믿고, ‘내가 블루오션이다’라는 생각을 당당하게 이어나갈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저마다의 인생길을 항해해나갈 수 있게 될까?


‘내가 블루오션이다’라는 말은 다소 자심감이 과잉된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오글거리고 멋쩍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실체 없는 망상이 레드오션 속에서 나를 잃어가며 잠식되어가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느껴진다면 그 말은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처럼 혼자 있을 때만큼은 스스로에게 꼭 되뇌어주어야 할 말이 될 수 있다.

숨 막히는 경쟁과 수많은 레드오션의 정신없는 흐름 속에서 자기를 지켜나가는 방법은 결국 ‘나’라는 잠재력을 믿고 나아가는 것 밖에 없는 것 아닐까? 최후에는 결국 자기만이 자기에게 블루오션이 되어준다.


내가 헤엄쳐가는 내 바다의 고요함과 평온함은 결국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저마다의 항해 길에서 마주치게 될 파도의 억센 기세에 위축되기보다는 그런 억센 파도 속을 헤쳐가며 오늘도 부단히 헤엄치며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기세’에 충분히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근자감이라며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더라도, 자기가 알고 있는 현실만을 들이밀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이야기 하더라도. 그런 실체 없는 말들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그저 내가 내딛고 있는 이 분명한 발걸음들에 더 신경을 기울이자. 내가 발 붙이며 살아갈 내 현실은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닌 내 발걸음이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내가 블루오션이다’라는 말이 현실성 없이 다소 패기 넘치는 말로만 들리면 좀 어떤가. 스스로 너무 빨리 현실이라고 규정한 것들에 치여 과하게 위축되어 지내기보다는 차라리 이따금씩이라도 이렇게 과하게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그동안 과잉이라고 여겨 경계하기만 했던 ‘자신감의 과잉’을 한 번 느껴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끝없는 겸손이 미덕인 사회보다는 넘치는 자신감이 미덕인 사회가 적어도 지금보다는 활기찰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막막함’이라는 기본값에만 매여 새로운 설정값들을 만들어갈 기회를 잃지 않도록 나만은 나의 잠재력을 믿고 계속 내가 블루오션이라는 망상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쳐나가려 한다.


더 이상 겸손함을 미덕이라고 여기며 나를 낮추지 않고 겸손함이 아닌 당당함을 동력 삼아 나만의 항해를 해나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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